버락 오바마는 '변화'를 핵심 기치로 내걸고 미국의 44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그것을 보도하는 대부분의 한국 언론의 자세는 새로움과 거리가 먼 것 같다. 한국 주류 언론에서 오바마의 당선을 다루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1. 인간극장. 2. (어쩌고 저쩌고) 흑인. 3. 부시와는 다름. 그리고 한국으로 시선을 돌려, 두 가지 정도 사안을 살펴본다. 첫째, 오바마가 당선되었는데 한미 FTA를 원안대로 통과시킬 수 있을까? 둘째, '친미 반북'을 표방하던 정치 세력에 균열이 생길 것 같은데, 어떻게 될까?

물론 앞서 말한 세 가지 보도 포인트는, 모르는 사람에게는 궁금한 것일 수 있다(가령, '아니, 흑인이 미국 대통령이 됐단 말야?'라며 놀랄 사람이 있다면 말이다). 또 케냐 이민자 출신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인종차별을 딛고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 된 남자의 '성공 신화'는 언제 들어도 가슴 설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계속 같은 정보만을 쏟아내는 국내 언론들을 바라보며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바마의 당선이 왜 중요한 일인지를 명확히 하고, 그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것과 기대할 수 없는 것을 대강이라도 나누어 보는 것이다.

▲ 뉴욕타임스 웹사이트 캡처.
여러 외신과 주요 블로그를 통해, 오바마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과 기대할 수 없는 것을 나누어보자. 'It's time'이라는 명료한 표어와, 속된 말로 대단히 '간지나는' 표지로 오바마의 당선 커버스토리를 낸 <이코노미스트>는, 오바마가 당장 이라크에서 철군할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고 한다. 애초부터 그는 '적절한 상황이 되면' 이라크에서 발을 빼겠다고 했을 뿐,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 즉시 철군하겠다는 식의 공약을 내걸지 않았다. 오바마가 일거에 이라크에서 철군할 것이라는 기대는 실현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최근 워싱턴포스트컴퍼니에 인수된 미국의 국제문제 전문지 <Foreign Policy>는, 각계 전문가 10인에게 다음 행정부를 구성할 만한 '드림팀'을 꼽아달라고 청탁했다(<Foreign Policy>, 2008년 11/12월호). 그 결과 다섯 명의 전문가가 로버트 게이츠 현 국방장관의 연임을 요청했다. 그가 이라크 파병군 증가를 통해 상황 호전에 기여한 인물이라는 점을 놓고 볼 때, 오바마가 이라크에서 당장 미군을 빼올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란 더욱 어려워진다.

11월 이후 미국 대선의 가장 큰 이슈가 된 경제 살리기는 어떨까. 역시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주를 이룬다. 2001년 경기 침체기 당시에도 소득 중 소비 비중을 줄이지 않았던 미국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국 소비자들의 신용카드가 닫혀있다.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위기로 확산되는 경로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다. 미국 경제가 겪고 있는 위기는 카리스마나 구호만을 통해 극복될 수 없을만큼 구체적이고 심각한 것이다.

그래도 영국의 <가디언>은 '대통령 오바마는 미국의 희망이며 동시에 우리의 희망이다'라고 환호하는 사설을 내보냈다. 그 희망은 구체적인 정책에 근거를 두기보다는, 그가 선거 과정에서 보여준 뚜렷한 정치적 입장에 근거하는 듯하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미국의 건강 보험 시스템, 막대한 재정 적자, 경제 위기 등을 오직 '올바른 태도'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2008년 미국 대선이 2004년의 그것에 비해 훨씬 더 건강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는 점에 주목한다. 뉴욕타임스 사이트에 있는 그의 블로그를 통해, 크루그먼은 '오바마는 당당하게 진보적인 가치를 내걸고 진보적인 정책을 내놓음으로써 승리했다'며, 그 가치는 결코 폄하될 수 없는 것이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현실은 어렵지만 나침반만은 비로소 올바른 방향을 향하게 되었다고 그는 생각한다.

▲ 가디언 웹사이트 캡처.
하지만 구체적인 차원으로 넘어가면, 역시 현실은 어렵다. 클린턴 1기 당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히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거대 기업들의 로비와 영향력이 살아있는 한 오바마가 자신의 이상을 그대로 실현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오바마가 오늘 승리한다면, 진짜 시험이 내일부터 시작될 것이다'. 요컨대 그는 희망을 걸고 있지만 낙관하지는 못하고 있다.

선거가 시작되기 전, 10월 29일 영국의 유명 칼럼니스트 사이먼 잰킨스는 <가디언>에 글을 보냈는데, 그 첫 문장이 매우 인상적이다. 그는 오바마를 주식에 빗대어, '지금 오바마를 팔아라'라고 권한다. 오바마 주식은 과대평가되어 있으며 장래 다가올 시장은 미쳐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지금 너무 큰 기대를 걸면, 나중에 안게 될 실망의 크기가 더욱 커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특히 미국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다. 우리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공화당원이 아닌 흑인 대통령 후보'라는 것 뿐이다. 오바마가 자신의 선거운동을 승리로 이끈 것은 그의 개인적 매력과 풀뿌리 조직의 결합 덕분이었다. 그 둘은 국정 운영에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매도 시기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기서 한 가지, 당연하지만 종종 간과되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오바마'를 아는 것보다 '미국' 그 자체를 아는 것이다. '오바마와 나는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같은 철학을 추구하고 있다'라는 대한민국 현직 대통령의 발언이 우스꽝스럽게 들리는 것은, 두 사람의 외모 차이 때문이라기보다는 두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시스템의 차이 때문이다. 오바마만을 놓고 아무리 궁리해봐야 우리는 미 대선과 한반도의 운명을 연관지어 생각할 수 없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버락 오바마가, 제44대 '미국 대통령'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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