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로 촉발된 돌풍이 정치권 전체를 강타하고 있다. 검찰은 특별수사팀을 꾸려 수사에 나선 상황이지만 수사 결과에 얼마나 신뢰를 가질 수 있을지는 벌써부터 회의감이 높다. 보수언론은 검찰이 특별수사팀에 자율권을 최대한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도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불법정치자금을 전달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 중앙일보 14일자 1면.

<중앙일보>는 14일 1면에 성완종 전 회장의 비망록을 입수했다며 일부 내용을 공개했다. 이 비망록은 날짜별 행적을 정리할 수 있는 ‘다이어리’ 형태로 돼있으며 여야 주요 인사와의 만남 사실이 기재돼있다. <중앙일보>는 이 기사의 부제에서 “이완구·이병기·홍문종·유정복·김한길·이해찬 등”이라고 썼는데 이는 사실상 성완종 전 회장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주요인사들과 접촉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전 대표와 이해찬 전 총리가 나란히 기재돼있는 것은 야당 내에서도 계파를 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

<중앙일보>는 이날 1면 사이드에 검찰이 이 사건 수사에 대해 성완종 전 회장의 ‘금품메모’에 등장하는 8명에 한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는 기사를 배치했다. <중앙일보>의 기사에서 문무일 경남기업 관련 의혹 특별수사팀장은 “누구를 먼저 수사할지 정해지지 않았다. 일체의 예외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대상자를 선별할 것”이라면서 “수사 대상은 한정짓지 않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중앙일보> 1면 배치를 맥락에 따라 읽어보면 결국 현재 ‘성완종 리스트’가 여권에 대한 의혹으로 집중되고 있지만 수사를 해보면 야당 역시 무사하지 않을 수 있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성완종 전 회장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로비를 했고 검찰 수사는 금품메모에 기재된 ‘친박 핵심’들에만 한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 중앙일보 14일자 칼럼.

<중앙일보>는 성완종 전 회장 사망에 대한 또다른 근거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날 <중앙일보> ‘이철호의 시시각각’이라는 코너에 게재된 칼럼에서 이철호 논설실장은 “정치권은 그의 ‘배신감’이 극단적 선택을 불렀다고 보는듯 하다.하지만 성씨와 오래 거래해 온 금융권 시각은 다르다”면서 경남기업이 방만한 경영을 통해 회사 사정을 악화시키면서 정치권을 앞세워 금융권을 압박해 대출을 받는 방식으로 회사를 유지해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철호 논설실장은 이 칼럼에서 “정치권 인맥을 동원해 두 차례 특별사면을 받고 워크아웃을 졸업했던 성씨는 이번에도 필사적으로 구명운동을 펼쳤다”고 쓰기도 했는데, 이 ‘두 차례의 특별사면’이라는 것은 새누리당이 문제삼고 있는 참여정부 시기의 사면을 말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즉, 성완종 전 회장의 경영 실패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정경유착’의 과정에 야당 역시 책임이 있다는 바를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보수언론의 이러한 관점은 지난 주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면서 “대선자금 수사에는 여야가 없다”고 발언한 이후 강화되고 있다. <동아일보>는 전날인 13일치 보도에서 검찰의 수사가 노무현-이명박-박근혜 3개 정권을 대상으로 진행될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날 사설에서는 2007년 12월 성완종 전 회장이 특별사면 된 데 대해 “성 회장이 사면을 예상한 듯 항소를 포기한 것을 보면 노 정부의 핵심인사들에게 로비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때 사면을 주도한 라인은 민정수석비서관실로 전해철, 이호철 씨가 수석비서관이었고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비서실장이었다”고 적었다. <동아일보>의 이러한 보도 이후 새누리당은 정치적 양비론 프레임을 강화하는데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 동아일보 14일자 사설.

<동아일보>는 14일에도 이런 분위기를 이어갔다. <동아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이번 사건이 소위 ‘오세훈법’ 이후에도 돈과 권력의 공생관계가 이어지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주장하면서 이상득 전 의원이 2007년 대선 직전에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에게 3억원을 받고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들이 쓴 불법자금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이라고 했는데 7분의 1이었고 안희정 충남지사 등 친노인사들이 줄줄이 구속됐다는 사례 등을 열거했다. 그러면서 <동아일보>는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479억원의 선거자금 지출을 신고하고 453억원을 보전받았고 문재인 당시 후보는 485억원 지출에 466억원을 보전받았다고도 썼다. 결국 종합해보면 여당이나 야당이나 타락한 정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주장을 제기한 셈이다.

▲ 조선일보 14일자 5면.

<조선일보> 역시 이번 사건으로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 일부를 야당으로 돌리는 데 발을 맞추고 있다. <조선일보>는 이날 5면 기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과 비서실장을 역임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여당과 ‘야당 탈당파’에서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여기서 ‘야당 탈당파’란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주도하고 있는 ‘국민모임’을 뜻한다. <조선일보>는 해당 기사의 하단에 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가 13일 비교섭단체대표연설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특검 실시를 요구했다는 점을 보도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동아일보>와 마찬가지로 참여정부 시기 성완종 전 회장의 특별사면 배경을 밝히라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같은 사람이 같은 정권 아래서 2년 간격으로 연이어 특사 혜택을 받은 것은 정말 드문 일”이라면서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역대 대통령들은 예외 없이 임기 말 같은 때에 자기 측근이나 비리 기업인을 사면해왔다”면서 “사면 때 돈을 주어야만 수사할 수 있다는 문 대표의 발언은 ‘성완종 연속 특사’의 의혹이 규명되기를 바라는 많은 국민의 뜻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 조선일보 14일자 사설.

결국 이런 흐름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조선일보>가 정동영 전 장관과 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의 주장을 부각시킨 것은 일종의 ‘이이제이’ 전술인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보수언론이 모두 이처럼 논점흐리기에 나선 가운데 이완구 국무총리가 언론에 자기 이름을 거론한 지방의원들에게 전화를 15번이나 걸었다는 사실을 질타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훈수이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자금’ 문제로부터 여론의 눈을 돌리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증거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이날 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자금 문제를 거의 거론하지 않았다. 보수언론의 이와 같은 행보가 결국 진실을 가리게 될 가능성이 있어 걱정스럽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