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이들 3명(홍문종·유정복·서병수)이 박근혜 대선 캠프에서 조직·자금을 다루는 요직에 있었던 셈이다. 성 전 회장이 남긴 정치자금 제공 리스트가 2012년 대선자금과 연관될 소지가 크다는 얘기다. 이번 사건 자체로도 정권의 도덕성이 걸렸지만, 대선자금은 정권의 정통성을 흔들 수 있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차원을 달리하는 문제다. 검찰이 과연 ‘살아있는 권력’의 심부를 겨냥하는 대선자금 의혹을 제대로 손댈 수 있을지 의문이다”_경향신문 사설

성완종 전 경남기업이 남긴 불법 정치자금 명단을 두고 방송뉴스는 이 정도 분석을 할 능력이 없는 것일까? 성 전 회장의 메모로 인해 정권의 정당성을 가를 대형 게이트가 터졌지만 방송뉴스의 보도는 그야 말로 밋밋하기 그지 없다. 지상파는 상황을 ‘성완종 리스트’로 한정지으면서 2007년 2012년 대선불법 자금과 연결은 애써 피해갔다. 특히, MBC는 성 전 회장이 노무현 정부 시절 특별사면을 받았던 사실을 강조하면서 수사대상을 ‘야권’으로 넓히는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KBS, 성완종 전 회장의 불법 정치자금 의혹 제기…‘단순전달’만

KBS <뉴스9>의 한계는 분명했다. 단순 전달이었다. KBS는 10일 <성완종 리스트…여권 핵심 8명 등장> 리포트를 배치하고 “고 성완종 전 회장의 쪽지에는 이밖에도 현 정부와 여권 핵심실세들 이름과 돈 액수까지 줄줄이 거론돼 있다”며 “당사자들은 모두 의혹을 부인했다”고 전했다. 어떤 실세인지를 규명해야 사건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지만 이런 시각은 전혀 없었다.

KBS는 그저 통칭 ‘정권실세’라는 표현을 통해 “김기춘과 허태열 두 명의 전직 대통령 비서실장 외에 홍준표 경남지사와 부산시장, 유정복 인천시장과 홍문종 국회 미방위원장 이름이 차례로 나열된 것으로 전해졌다”며 “김기춘 전 실장은 2006년 9월 26일이라는 구체적 시점도 기록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과 이완구 총리는 금액 표기 없이 이름만 적힌 것으로 전해졌다”고 밋밋한 설명만을 이어갔다.

▲ KBS 뉴스9 성완종 전 회장 대선 및 정치 불법자금 의혹 파문 관련 리포트

KBS는 <곤혹스러운 검찰…수사 가능할까?> 리포트를 통해 “고 성완종 전 회장이 김기춘, 허태열 전 실장에게 거액의 돈을 줬다고 주장한 시기는 각각 2006년과 2007년”이라며 “당시 정치자금법상 5년의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수뢰액 1억 원 이상에 적용되는 특가법상 뇌물죄는 10년으로, 시효가 남아 있다. 두 사람 다 국회의원이었던 만큼, 실제 돈이 전달됐고 대가성이 입증된다면, 기소할 수도 있단 얘기”라고 설명했다. 그러곤 “하지만 쪽지와 녹취만 남은 상황에서, 성 전 회장 주장의 진위 여부를 가리긴 쉽지 않다”고 선부터 그었다.

11일 KBS는 <[단독]검찰, 32억 비자금 포착…사용처 추적> 보도를 통해 “경남기업의 회계 장부를 분석하던 검찰은 수상한 돈의 흐름을 포착했다”며 “별도의 증빙 없이 현금화돼 빠져나간 것으로 2007년 10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7년 동안, 모두 32억 원에 이른다. 숨진 성완종 전 회장이 정치인들에게 돈을 줬다고 주장하는 시기와 자금 인출 시기가 겹친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시기상 출금된 ‘돈의 성격’이 매우 의심되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KBS 뉴스는 “검찰은 인출이 시작된 2007년 10월이 17대 대통령 선거를 두 달 앞둔 시점이라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고만 언급했다. 단독을 했으나, 의미 추적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KBS였다.

MBC 성완종 250억…노무현 정부 특별사면 ‘강조’, 왜?

MBC <뉴스데스크>는 단순전달을 넘어서 특정한 방향으로 보도를 끌고 갔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했다. 10일 <‘성완종 정국’ 정치권 일파만파> 리포트를 통해 MBC는 “‘성완종 리스트’가 앞으로 정치권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며 “야당은 대대적인 정치공세를 예고했고 했다. 새누리당은 4.29 재보선에 미칠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4·29재보선을 둘러싼 야당의 ‘공세’부터 걱정한 셈이다.

MBC는 <뇌물 혐의 적용 가능할까?> 리포트에서 “성완종 전 회장이 김기춘, 허태열 전 비서실장에게 돈을 준 것이 사실이더라도, 2007년 당시 대선 경선을 앞두고 건넨 정치자금이었다면 공소시효 7년이 지났기 때문에 처벌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반면, 성완종 전 회장의 사업 또는 정계입문을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돈을 받았다면 뇌물 혐의가 적용된다”고 전했다. 김기춘·허태열 전 비서실장에게 법적인 책임을 물을 것이라면 2007년 대선 경선이 아닌 성 전 회장의 정계입문으로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었을까? 흡사, 박근혜 전 대통령(당시 대선 경선 후보)까지 물고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처럼 들렸다.

▲ MBC '뉴스데스크' 성완종 전 회장 대선 및 정치 불법자금 의혹 파문 관련 리포트

해당 리포트에서 MBC는 “성 전 회장의 주장대로 허태열 전 실장에게 7억 원을 뇌물로 줬다면 수사 대상이 된다. 그러나 10만 달러를 줬다고 주장한 김 전 실장은 당시 환율로 1억 원이 안 되기 때문에 수사 대상에선 벗어난다”고 설명했다. 시청자 이해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검찰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인지 헷갈릴 수 있는 대목이다. <‘성완종 메모’ 법정 증거 되나?> 리포트에서 “다른 증거들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증거로 채택될 가능성은 희박해진다”고 단정적으로 설명했다.

그러면서 MBC는 <정치권 ‘마당발’ 굴곡의 역정> 리포트에서는 “정치역정도 그 못지않게 굴곡이 심했는데 과거 정부들과의 인연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면서 “노무현 정부 때는 자민련에 불법정치자금 16억 원을 준 혐의로, 또 당시 정부가 추진했던 행담도 개발 사업과 관련한 비리로 각각 유죄선고를 받았지만 두 번 모두 집행유예 이후 노무현 대통령의 특별사면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MBC의 리포트에서 불법대선 자금 의혹과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련을 언급하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MBC의 의도가 무엇인지 드러난다. 수사 대상을 ‘야권’으로 확대하려는 시도와 다름없었다.

MBC는 12일 <성완종 “대선 자금 건넸다”> 리포트를 통해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대선자금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고 보도했지만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오히려 <‘성완종 리스트’ 의문 여전> 리포트를 배치해 “휘갈겨 쓴 글씨체로 미뤄 급하게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김기춘 10만불’ 옆에 적힌 날짜 ‘9월 26일’과 신문이름은 필기도구의 종류가 달라, 작성 시점도 다르다는 추측을 낳고 있다. 먼저 명단을 작성하고, 확실한 증거를 더하기 위해 신문을 확인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고 추정을 보탰다.

12일 MBC는 <특별수사팀 250억 원 용처 수사> 리포트를 배치했다. KBS와 SBS가 ‘32억 원’을 강조한 데에 반해 MBC는 성완종 전 회장의 횡령액 ‘250억 원’ 전부 조사를 들고 나온 셈이다. 의도는 분명했다. MBC는 <“리스트 포함 모든 의혹 수사”> 리포트를 통해 “(특별수사팀은) 여야 의원을 가리지 않고 친분이 있었다”면서 “행담도 개발 시 정계 인사들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기소돼 유죄가 확정된 뒤 2007년에 대통령 특별사면을 받는 등 두 차례 특별 사면을 받은 과정에 비자금이 흘러갔는지도 조사 대상”이라고 본색을 드러냈다. 노무현 정부를 끌고 들어간 셈이다.

MBC는 <정치권 ‘엄정 수사’ 촉구> 리포트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은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라 성역 없이 엄정히 대처하라고 말했다. 앞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정면돌파 의지를 밝혔다”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 대선 당시 자금의 실체를 밝히라며 총공세를 벌였다”고 ‘공세’라는 다소 부정적인 언어를 선택했다.

SBS 불법 정치 자금일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SBS 역시 미묘한 차이 외에 특별한 건 없었다. SBS <8뉴스>는 10일 <“김기춘 10만 달러-허태열 7억 원 줬다”> 리포트에서 “성완종 전 회장은 사망 직전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구체적인 금품 전달 장소까지 폭로했다”며 <경향신문>과 성종완 전 회장의 녹취 “(김기춘 당시 의원이) 2006년 9월에 벨기에, 독일 갔잖아요, VIP(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前 대표) 모시고. 내가 10만 달러로 바꿔서 롯데호텔 헬스클럽에서 전달해 드렸습니다”라는 멘트를 배치했다. “허태열 전 실장에게 건넨 돈은 2007년 대선 경선 자금이었다고도 말했다”고 강조했다.

SBS는 <‘친박 핵심’ 겨냥 금품 메모..의도는?> 리포트에서는 “메모는 어젯(9일)밤 성 전 회장의 시신을 경찰이 검시하는 도중 윗옷 주머니 안에서 발견됐다”며 “메모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접한 검찰은 급히 특수부 검사를 보내 이 메모를 확보했다. 유족들에게도 메모를 넘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A4 용지 3분의 2 크기에 글자 수는 모두 55자에 불과하지만 이 작은 메모가 몰고 온 충격을 짐작했기 때문이다. 이 메모에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 비서실장 3명이 모두 포함돼 있고,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당시부터 친박계의 중책을 맡았던 인사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말 그대로 현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망라돼 있다”고 의혹을 전하기도 했다.

▲ SBS '8뉴스' 성완종 전 회장 대선 및 정치 불법자금 의혹 파문 관련 리포트
SBS는 2007년 그리고 2012년 대선 당시 메모 속에 있는 인물들이 박근혜 캠프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했는지 구체적인 적시한 유일한 지상파 뉴스였다. SBS는 “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 측 직능총괄본부장을 맡았다”며 “당시 성완종 전 회장이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기로 했다는 내용을 회의에 보고하긴 했지만, 성 전 회장을 박 후보에게 소개한 적도, 돈을 받은 사실도 없다고 밝혔다”고 설명했다. 또, “2007년 대선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비서실장을 맡았던 유정복 인천시장과 2012년 성완종 전 회장이 소속돼 있던 선진통일당과 합당작업을 주도한 서병수 부산시장도 돈 받은 사실을 부인했다”고 설명했다.

SBS는 11일 <“2012년 대선 때 홍문종에 2억 전달”> 리포트를 통해 “숨진 성완종 전 회장의 추가 증언이 나왔다”며 “지난 대선 때 홍문종 당시 새누리당 조직본부장에게 2억 원을 줬다는 것이다. 불법 정치 자금일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의 불길이 3년 전 대선자금으로까지 번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황당무계한 소설”..“상황 지켜보겠다”> 리포트를 이어 배치하고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과 홍준표 지사는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며 “다만 홍 지사에게 돈을 전달한 것으로 보도된 윤 모 씨는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면서도, 보도 내용(돈을 받아 전달한 사실 자체)을 강하게 부인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윤 모 씨에 대한 부분은 KBS와 MBC에서는 볼 수 없는 대목이었다.

SBS는 12일 <“성역없이 수사”..특별수사팀 구성> 리포트에서 또한 “수사팀은 대검 반부패부장의 지휘를 받긴 하지만 사실상 검찰총장이 직접 관할할 것”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은 오늘 검찰이 법과 원칙에 따라 성역 없이 엄정히 대처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사는 쉽지 않아 보인다. 성완종 메모에 이름이 기재된 현직 총리, 현직 청와대 비서실장은 직간접적으로 수사팀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자리”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치권의 주문에 떠밀리듯 수사에 나선 검찰이 얼마나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당초 수사의지를 보이지 않다가 메모지에 포함돼 있는 인사 및 박근혜 대통령·여권 인사들의 촉구에 따라 움직였다는 지적 또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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