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 사이트에서 루이스초이라는 검색어를 집어넣으면 ‘울게 하소서’라는 연관검색어가 뜬다. 그만큼 루이스초이는 ‘울게 하소서’라는 노래와 연관이 깊은데, ‘울게 하소서’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가 무엇일까. 바로 <파리넬리>다.

헨델의 ‘울게 하소서’가 이 영화의 OST임을 감안할 때, 루이스초이가 동명의 뮤지컬 <파리넬리>에 출연한다는 건 그야말로 ‘날로 먹는 것’이나 다름없었을 터. 다른 카운터테너와는 달리 높은 음역대의 카운터테너인 루이스초이가 <파리넬리>를 택한 건 그야말로 ‘신의 한 수’가 아닐 수 없었다.

▲ 뮤지컬 <파리넬리> 루이스초이 ⓒHJ컬처
- 카스트라토가 만들어진 유래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카스트라토와 카운터테너의 차이점에 대해 먼저 짚어보도록 하겠다. 카스트라토는 거세된 가수인 반면에, 카운터테너는 정상적인 남자가 가성을 가지고 고음을 낼 수 있도록 훈련받는다. 카스트라토는 중세와 바로크 시대 사이에 생긴 가수다. 당시 가톨릭은 남자만 노래를 부를 수 있고 여자는 부르지 못하게 했다. 남자아이가 변성기를 거치기 전에는 여자아이와 똑같은 소리를 낸다.

변성기 전의 여자 같은 목소리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해 남자아이로 하여금 거세를 시켜 카스트라토가 탄생한다. 남성적인 신체 특징은 가지면서 여성의 목소리를 갖게 된다. 당시에는 비주얼이 괜찮거나, 노래를 좀 한다고 하는 수만 명의 남자아이들이 거세되었다. 이런 카스트라토 중에서 최고의 인물이 파리넬리였다.”

- 뮤지컬 대본을 읽으며 기존에 알던 파리넬리와 다른 점, 색다른 면모가 있었다면.

“파리넬리는 실제 살바토레라는 아버지가 있었으며, 리카르도라는 형이 있었다. 실제와 다른 건 안젤로라는 여자친구와 래리펀치가 가상의 인물이라는 점이다. 가상의 인물을 제외하고는 파리넬리가 형과 갈등을 겪은 점은 실제 역사와 같다.”

▲ 뮤지컬 <파리넬리> 루이스초이 ⓒHJ컬처
- 뮤지컬이 동명 타이틀의 영화 <파리넬리>와 비교된다는 부담은 없었는가.

“영화 속 파리넬리는 최고의 카스트라토다. 고음을 낼 줄 알아야만 했다. 알토나 메조소프라노의 음역대를 내는 카운터테너의 비율이 90%다. 만일 보통 카운터테너의 음역대를 가졌다면 뮤지컬 제의에 선뜻 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독일에서 파리넬리 음악으로 콘서트 투어를 해본 경험이 있다.

당시 독일 선생님에게 실제 파리넬리의 음역대와 비슷하다는 평가를 많이 들었다. 당시 현지 선생님에게 들은 격려 덕에, 한국에서 파리넬리를 뮤지컬로 제작하겠다고 했을 때, 감사하게도 뮤지컬의 레퍼토리는 제가 소화할 수 있는 음역대라 ‘흥미롭다’는 반응을 할 수가 있었다.”

- 파리넬리가 형과 갈등을 겪었다면 어떤 갈등을 겪은 것인가.

“거세하고 싶어서 하는 남자는 이 세상에 없다. 부모와 형의 설득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거세당한 인물이 파리넬리다. 파리넬리는 아버지 혹은 형 때문에 거세당했다는 피해의식이 있다. 파리넬리가 유럽 투어를 다닐 때에는 거세당했을 당시의 형에 대한 피해의식과 더불어 음악적인 부분 때문에 형과 갈등이 일어난다.

같은 사람이 작곡을 하면 작곡가만의 음악 풍이 있다. 유럽을 돌면서 활동하는 파리넬리 입장에서는 형의 음악 풍이 다가 아니라, 새로운 풍의 다양한 음악이 필요했다. 파리넬리의 문제는, 항상 형과 같이 다니면서 형이 작곡한 노래만 부르다 보니 너무나도 지루했다는 점이다. 형과 갈등을 빚는 장면이 많다.

그런데 이런 파리넬리의 심정이 저와 맞닿는 부분이 있었다. ‘울게 하소서’는 너무나도 유명한 곡이다. 유럽에서 다방면의 음악을 접했음에도 제가 한국에서 많이 부르기를 원하는 곡을 ‘울게 하소서’였다. 다른 테크닉적인 해석이 들어간 곡을 부르고 싶었지만 ‘울게 하소서’만 천 번 가량 불렀다.

오죽하면 루이스초이는 노래가 ‘울게 하소서 밖에 없나요?’하는 댓글도 있었다. 다시 뮤지컬로 돌아가 보자. ‘울게 하소서’만 주구장창 부르다 보니, 뮤지컬에서 형이 만든 노래를 계속 불러야 했던 파리넬리의 심정이 그렇게도 잘 이해될 수가 없었다.”

▲ 뮤지컬 <파리넬리> 루이스초이 ⓒHJ컬처
- 음악 교사를 하다가 독일에서 음악 공부를 하게 되었다.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인가를 묻는다면, 아이들과 함께 운동장을 뛰어다니고 음악을 가르치던 때라고 대답할 수 있다. 카운터테너로 대학을 졸업했기에 음악 교사를 하면서도 카운터테너 활동을 해왔다. 못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카운터테너는 유럽이 원산지다. 유럽에서 공부해보지 않겠느냐는 추천을 매번 들었다.

당시 나이에서 조금이라도 나이를 먹었다가는 유럽에서 음악 공부조차 못할 마지노선의 나이에 다다랐다.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욕심과, 한 살이라도 더 어릴 적에 유럽에 가야겠다는 결심이 생겼다. 학교를 그만두고 처음에는 2년만 유럽에서 배우려고 했다. 하지만 처음 계획한 것보다 공부하는 기간이 점점 늘면서 모든 공부를 끝마칠 수 있었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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