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늘근도둑이야기>에서, 권력자의 물건을 훔치려던 두 명의 도둑이 잡히면서 이야기가 끝난다고 생각하겠지만, ‘끝이 나야 끝난 거다’라는 표현처럼 취조실에서 제 2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민성욱이 연기하는 수사관은 공권력을 상징하는 캐릭터다. 취조실에서 물건을 훔치려다 발각된 도둑들을 취조하며 심문해야 하는 수사관이지만, 두 명의 도둑은 수사관에게 장난치며 마음껏 조롱한다. <늘근도둑이야기>에서는 을이 갑이 되고, 수사관인 갑은 을이 되는 관계의 역전이 발생한다. 이런 갑을 관계의 뒤바뀜을 통한 통렬한 풍자로 관객은 웃음과 뒤범벅이 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게 된다.

- 코미디를 배우가 연기하면 배우는 웃지 않아야 정상이다. 그런데 <늘근도둑이야기>는 공연하는 배우도 웃음을 참지 못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늘근도둑이야기>는 배우가 웃음을 참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연기할 때 배우들끼리 생각지도 않았던 장면에서 웃음을 참지 못할 때도 있다. 더늘근도둑은 황토색 바지를 입고 등장한다. 이때 더늘근도둑은 ‘괄약근에 힘이 없어져서 만약(화장실에 가지 못하고 일을 볼 때)에 대비해서 이런 색 바지를 입고 다닌다’고 능청을 떤다.

그런데 하루는 더늘근도둑을 연기하는 박철민 선배가 ‘원래는 황토색 바지가 아니라 (요실금 때문에) 개나리 색이다’라고 즉석에서 애드리브를 하는 바람에 배우도 웃음을 참지 못하는 적이 있다. 이런 사례가 하나 둘이 아니다.”

▲ 연극 ‘늘근도둑이야기’ ⓒ나인스토리
- 수사관이 처음 등장할 때는 권위적이고 근엄하지만 극이 흐를수록 두 도둑에게 휘둘리는 허당기를 보여준다.

“도둑들이 주장하는 건 훔친 게 없다는 거다. 하지만 수사관은 ‘훔친 게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훔친 게 없다고 주장하는 도둑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도둑들은 훔치지 않았다고 결백을 주장하며 다른 이야기로 일관한다. 이런 도둑들의 태도에 수사관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처음 겪는 수사관은 허당 아닌 허당이 된다.”

- 드라마 <피노키오>를 찍으면서 <늘근도둑이야기>를 놓지 않았다.

“<피노키오> 녹화를 할 때에는 연극 회차에 많이 출연하지 못했다. <늘근도둑이야기>는 세 배우의 합이 맞아야 원활하게 흘러갈 수 있는 공연이다. 제가 녹화를 한다 해도, 한 팀으로 가는 게 중요했다. 드라마 녹화를 마치고 힘든 몸을 이끌고 무대에 섰을 때 관객이 즐거워하고 환호하는 모습을 통해 피로가 해소되는 부분이 있었다.

<늘근도둑이야기>에서 활용하는 제스처를 <피노키오> 할 때 활용한 적도 있다. 드라마에서 과자를 받아먹는 장면이 있었다. 당시 과자를 받아먹으려 ‘커피 앤 비스킷’이라는 애드리브를 했는데, 비스킷은 <늘근도둑이야기>에서 박철민 선배가 공연할 때 쓰는 단어다. 드라마에서 쓰는 동작도 공연 중에 많이 활용하던 동작을 가미해서 움직였다.”

- 당시 <피노키오>로 ‘신 스틸러’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감사한 별명이다. 작가님이 재미있게 대본을 집필하고, 감독님도 배우에게 ‘일단 해봐’ 하고 맡기는 스타일이라, ‘설마 이걸 쓰겠어?’ 하고 찍은 장면도 드라마에 반영되었다. 감독님의 배려 덕에 신 스틸러라는 별명이 붙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 작가님이 설정한 캐릭터도 재미있는 인물이었다. 제가 연기한 장현규는 반골 기질을 갖고 있고, 머리띠를 하고 있다는 작가님의 설정에 저의 연기 해석을 덧붙인 게 시청자들이 좋아하신 것 같다.”

▲ 배우 민성욱 ⓒ나인스토리
- 사람들 앞에 서면 카메라 앞에서보다 떨리는 게 보통인데, 반대로 민성욱씨는 카메라 앞에 설 때 사람들 앞에 서는 것보다 더 떨린다고 들었다.

“방송 시스템을 몰라서 카메라 앞에서 더 떨린 게 아닌가 생각한다. 요즘 방송할 때도 카메라 앞에서 떠는 걸 백프로 극복한 건 아니다. 연극은 꾸준한 연습을 통해 연기가 완성된다. 하지만 방송은 연기할 때 ‘그건 아냐’라고 하면 연기 자체가 스톱이 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방송 촬영하기 전에 연기에 대한 계산을 많이 갖고 가서, 촬영장 상황에 맞는 걸 뽑아내려고 노력한다. 장현규를 연기할 때 재미있게 연기를 풀어가도 ‘더 재미있는 게 없을까?’하는 계산을 많이 해보았다. 요즘은 연기적인 계산을 많이 하고 카메라 앞에 서서 그런지 떨리는 게 많이 사라졌다.”

- 대개의 배우는 공연이나 배우의 명연기를 보고 배우의 꿈을 꾼다. 하지만 민성욱씨는 아버지의 공연을 보고 연기에 대한 꿈을 꾸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영화 보는 걸 좋아해서 주말에는 꼭 영화를 보러 다녔다.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연기에 대한 꿈을 꾸게 될 수밖에 없었다. 연기를 하고 싶다고 아버지에게 말씀드리니, 조금 고민하시다가 ‘내가 하는 공연을 한 번 보라’고 말씀해주셨다.

아버지가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으로 무대에 오를 때, 지금은 고인이 된 이낙훈 선생님과 공연했다. 발성도 그렇고, 연기적인 기본기가 중요하다는 걸 아버지의 연기를 보며 많이 깨달았다.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모든 배우들이 무대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보면서 ‘연기를 하면 즐겁게 살 수 있겠구나. 해볼 만하겠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 민성욱씨가 찍은 독립영화 <나는 곤경에 처했다>는 베를린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도 오른 적이 있었다.

“<늘근도둑이야기>를 할 당시 오디션 제의가 와서 오디션을 보고 찍은 영화다. 생각보다 연기 분량이 많았다. 홍상수 감독님의 영화 스타일이 느껴지는 영화였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는 천 석 규모의 상영관에서 영화를 상영했다. 외국인 관객이 제 영화를 보고 웃고 즐기는 걸 보고 있으니 감동적이었고, 배우로서 행복했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