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린 당하지 않고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게 중요하다는 걸 잊지 마렴. 알겠니?"

다음 아고라에서 '경제대통령'으로도 불리는 사이버 논객 미네르바가 4일 마지막으로 남긴 인사말의 일부이다. 이전에 쓴 글에서 "사람이 헐벗고 육체적인 유린만이 유린이 아니란다.. 더 무서운 것은 경제적인 무지에서 나오는 경제적 유린이 더 가공할 위협인 것이겠지"라고 표현한 것을 보아 '유린'이 의미하는 바는 경제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 피해를 입게 되는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 11월 4일 미네르바가 아고라 경제 토론방에 올린 게시글 캡처
아고라에서 '절필'을 선언 한 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다시 쓸 뿐이라며 다시 나타난 미네르바는 또다시 독자들에게 고별인사를 전했다. 조만간 미네르바의 이름으로 다시 나타날지 마지막 '절필' 선언이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과거와 다른 점은 아고라 논객들과의 갈등 속에서 이뤄진 고별사가 아니라 정부의 '개입'이 작용 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수일전 재정부는 "미네르바 등 사이버논객에게 올바른 자료를 제공해 정부 방침을 이해시키고 소통하는 방법을 검토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또한 지난 3일 국회 본회의에서 한나라당 홍일표 의원 질의에 김경한 법무장관이 "(미네르바의 글의) 내용이 범죄 구성 요건에 해당한다면 당연히 수사를 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이처럼 정부와 한나라당의 '미네르바를 찾아라'는 의지 표명이 있고, 언론에 주목을 받자 미네르바는 또다시 고별인사를 전했다.

수만이 넘는 조회수와 수백개의 댓글이 달리는 유명 논객이긴 하지만 정부·여당이 일개 사이버논객을 주목하고 있는 것은 인터넷을 정화(?)하겠다는 인터넷통제정책 추진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지난 3일 한나라당 홍일표 의원이 국회 본회의에서 "신뢰의 위기는 정부정책이 실기하거나 잘못된 경우도 있고, 리더십 부재, 소통의 부족, 정부의 잘못도 있지만 '인터넷괴담', 찌라시정보와 같이 우리사회가 불신을 증폭시키는 구조적인 문제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발언한 데서 그 이유를 엿볼 수 있다. 미 쇠고기 수입으로 인해 터져나온 '촛불' 때와 마찬가지로 현 한국 경제위기의 주요 책임을 '인터넷괴담'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고 최진실씨의 자살사건 또한 근거로 빠뜨리지 않았다.

이어 홍 의원의 "기존 형법에 모욕죄가 있는데, 자꾸 사이버모욕죄 가중처벌을 도입하려 하느냐라는 논란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의에 김경한 법무장관은 "과거 서너 사람과 대면에서 벌어지는 모욕과 달리 사이버상에서 일어나는 모욕행위는 순식간에 수만명,수십만명에게 퍼져 돌이킬수 없는 (막대한) 피해를 주기 때문에.. 형법에 있는 징역 1년 이하, 벌금 200만원 이하로는 미흡하다는 의견이고. 형법상의 모욕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하는 데... 고소인이 역공을 당해 2차, 3차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고소가 없어도 수사를 하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명백히 표현을 한 경우에는 처벌 하지 아니하는, 반의사불벌죄의 조항으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답했다. 홍 의원은 "잘 파악하고 계시구요"라며 김 장관의 답변에 만족을 나타냈다.

▲ 3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는 김경한 법무부장관 ⓒ여의도통신
김 장관의 말처럼 인터넷은 순식간에 수십만명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매체'이다. 누구나 직접적인 의견제시를 할 수 있는 장점도 지니고 있다. 타 매체와 달리 그릇된 정보와 왜곡된 주장에 굳이 정정보도를 요청하거나 '판결'을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다. 댓글이나 트랙백 등으로 반대의견을 피력하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인터넷의 속성이자 장점인 기민한 '전달' 능력과 '쌍방향성'에 주목하고, 민주주의를 확대하겠다는 정부·여당이라면 '사이버 모욕죄', '실명제 확대' 등 인터넷 규제정책을 앞세우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인터넷의 장점을 살려 민주주의를 확대하고 강화하고자 하는 수단으로 관련 인터넷정책을 먼저 내놓았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소통'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집단지성이 발휘되는 곳엔 '부작용'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되려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홍보성 글에 악성댓글이 달리는 게 현실이다.

미네르바가 사랑받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경제'라는 주제를 현안을 통해 이해하기 쉽게 '무료강의'를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지식을 나눔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좀더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통'했다는 점이다. 미네르바의 글에는 항상 비슷비슷한 댓글이 달린다. "덕분에 경제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어렵게만 여기던 그래서 소흘히 했던, 경제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정부·여당이 계속해서 경제위기·사회혼란의 원인을 '인터넷괴담'에서 찾고, 인터넷 통제정책을 펴고자 한다면 이명박 정권과 네티즌은 항상 평행선을 달릴 뿐이다.

"그냥 예전에 밥 아저씨의 그림 그리기 하던 거 있지?... 그런 동화책 한 번 본 셈 치면 끝인 게야.."라는 미네르바의 말처럼, '신드롬'의 이면에 절대적인 경제이론이 탄생한 것도, 경제위기를 '선동'하려 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미네르바가 침묵한다면, 제2의 '미네르바'가 탄생할 것이고 그곳은 또다시 인터넷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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