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서로 다른 세 여성 릴리와 메리-마리, 클래리티의 만남으로 뮤지컬 <쿠거>는 시작된다. 뮤지컬 버전 <섹스 앤 더 시티>라고 보면 이해가 편할 듯하다. 클래리티는 남자에 의해 여성의 삶이 리드당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자주적인 여성 캐릭터다. 본인의 삶은 스스로가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마인드를 갖고 있는 여성이자, 세 여성 중에서 가장 똑똑한 여성이기도 하다.

클래리티를 연기하는 최혁주를 포털 사이트에서 입력하면 연관검색어 중 <폭소클럽>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는 방송으로 유명세를 타는 것보다 무대에서 연기로 관객에게 어필하는 게 보람되다고 말하는 배우다.

“연출이 정한 선에서 작품 안에 배우의 연기가 스며들게 만드는 배우, 주어진 상황에서 지나치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다. 분장을 지우고 내려오면 사람들이 알아보지 않는 배우가 훌륭한 배우라고 생각한다.”

최혁주는 대본에 나와 있는 캐릭터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대본에 나와 있지 않은 캐릭터의 전부를 고민할 줄 아는 배우였다. 그러면서도 뮤지컬계의 시상식 관행을 꼬집는 날카로운 일침도 잊지 않고 있었다.

“클래리티가 태어나서부터 무덤에 들어가기 전까지 어떤 삶을 살까를 제일 먼저 생각한다. <이블데드>에서 좀비를 연기할 때도 그랬다. 좀비가 어떻게 태어나서, 어떤 말로를 맞을 것인가를 생각하고 연기했다. <이블데드>로 한국뮤지컬대상 수상 후보에 올랐다. 문제는 심사위원 중 일부는 <이블데드>를 보지 않고 심사했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최혁주가 여자가 아닌 남자인 줄 알았다고 한다.”

▲ 배우 최혁주 ⓒ쇼플레이
- 클래리티는 <메노포즈>의 전문직 여성과 비슷해 보이는데?

“클래리티는 전문직 여성이라 <메노포즈>와 직업적인 면에서는 비슷한 면을 갖고 있다. <메노포즈>의 전문직 여성은 결혼해서 아이를 가졌지만 이혼을 했다. 하지만 클래리티와 다른 점도 있다. 클래리티는 아직 남자를 선택하지 않았다. 남자를 선택하지 않았으니 <메노포즈>와는 달리 배우자도 없다.

클래리티는 자신이 바라는 남자를 선택할 것이고, 내가 선택한 남자가 내가 바라는 라이프스타일을 맞춰줄 때 결혼할 것이라는 마인드를 갖고 있다. 클래리티는 <메노포즈>의 전문직 여성에 비해 좀 더 사회적이면서도 지배적이고, 여성 우월주의자다.”

- 클래리티가 만나는 남자는 연상남이 아니라 연하남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결국에는 클래리티도 뮤지컬 제목처럼 쿠거가 된다. 클래리티가 만나는 연하남 ‘골리앗’은 몸이 좋다. 그러면서도 아침마다 에스프레소 마끼아토 커피를 가져다주는 자상한 남자이기도 하다. 사업가이면서 ‘당신, 이런 게 필요하지 않느냐’며 여성의 판타지를 충족시킨다. 발이 예쁘다면서 매일 신발을 선물해 주는 식으로 여성들이 꿈에 그리는 남자다.

하지만 이 세상에 클래리티가 만나는 연하남처럼 자상한 남자는 없다. 클래리티의 연하남은 자상하면서도 클래리티의 내면을 꿰뚫어볼 줄 알기도 한다. ‘이런 남자 없는데 왜 결혼했느냐’며 관객을 향해 유도 질문도 할 예정이다.”

- 여성이 주인공이 되는 뮤지컬은 <메노포즈> 외에 무엇이 있었는가.

“<메노포즈> 이후 3년 후에 <꽃신>을 했다. <꽃신>에서는 15살에 위안부로 끌려가서는 2막에서 실성한 할머니로 등장했다. 15살에서 85세 노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극 안에서 포괄적으로 보여주었다. 윤복희 선생님 다음으로 비중이 있는 역할이었다.”

- <메노포즈> 이후 3년 후에 <꽃신>을 했다면, 공백기 동안 무엇을 했나?

“뮤지컬이 아닌 외도를 했다. 사업을 하다가 망했다. 제 성격이 극 중 클래리티처럼 진취적인 면이 강하다. 어머니가 사업가다. 주변에 사업하시는 분도 많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사업을 해보고 싶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제가 무대에 오르는 걸 바라는 뮤지컬 팬들의 성원도 있었고, 저도 뮤지컬이 하고 싶어서 <꽃신>을 할 수 있었다.”

- 예전에 방송 <폭소클럽>에도 출연한 적이 있다.

▲ 배우 최혁주 ⓒ쇼플레이
“뮤지컬 <루나틱> 초연할 때 굿닥터를 연기한 적이 있다. 원래 캐릭터는 대사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역할을 제가 맛깔나게 만들었다. 굿닥터의 비중이 커져서 나중에는 모든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이 되었다. 이러던 차에 ‘사장님 나빠요’ 멘트로 유명한 ‘블랑카’ 코너를 집필하는 <폭소클럽>의 메인 작가에게 연락을 받았다. 개그맨 외에 새로운 얼굴이 프로그램에 활력을 불어넣는다고 판단해서 섭외 연락이 온 거다.

방송은 기회다. 방송 섭외가 들어올 때 해야 다른 프로그램 출연 제의가 들어오지, 방송 섭외를 거절하면 다른 프로그램을 언제 섭외 받을지 모른다. 둘째를 낳고 산후조리를 할 때 <폭소클럽>에 출연했다. (산후조리로 출연)하기 싫을 때 나간 거다.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 되어서 몰골이 말이 아닌데, 전국적으로 방송된다는 것도 힘들었다.

<폭소클럽> 5회를 녹화할 때 방송하다가 그만둔다고 하고 무대에서 내려온 적이 있다. PD와 개그맨이 ‘조금만 더 하면 빛을 보는데, 최혁주의 샬랄라는 오늘로 끝입니다’하고 대본을 던지고 내려오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면서 쫓아 나왔다.

하지만 저는 산후조리를 하지 못해 흉한 모습이 방송에 나오는 게 너무 싫었다. 웃기려고 작정하고 웃기는 개그맨이 아니고 주어진 상황에서 역할을 충실하게 만드는 배우일 뿐인데, 개그맨이 아닌데도 ’샬랄라 음악교실에 나온 것 좀 해주세요‘ 하고 요청받을 때가 많았다.”

- 인지도를 알리기 위해서라면 방송을 놓지 않았어야 한 거 아닌가.

“경제적으로 어렵다면 아쉬웠을 것이다. 방송에 나온 저의 단면을 보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보다는, 최혁주라는 사람의 진가를 무대에서 마음껏 알리고 ‘최혁주라는 배우, 노래 잘 한다’라는 평을 듣는 게 더욱 보람된 것 같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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