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같으면 아무도 안 내릴 것 같은 5호선 끝자락 올림픽공원역에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저녁 8시로 예정된 토이 정규 7집 앨범 발매 기념 콘서트 <Da Capo(‘다시 처음으로’라는 뜻)> 공연에 가려는 이들이었다.

지난 2일,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날 처음으로 유희열의 공연에 갔다.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 진행자, SBS <K팝스타> 심사위원, tvN <SNL코리아> 크루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활약해 온 덕에 ‘방송인 유희열’의 모습이 더 익숙했지만, 이날만큼은 연주를 하고 노래를 들려주는 ‘음악인 유희열’을 만나러 간다는 생각에 두근거렸다.

게스트로 출연한 윤종신의 말마따나 ‘좋은 음향’이 갖춰져 있었고, 20년 이상 호흡을 맞춰온 능숙한 밴드의 훌륭한 연주가 곁들여져 아름다운 노래는 더욱 달콤하게, 슬픈 노래는 더욱 애절하게 전달됐다. 김동률, 김연우, 성시경, 윤하, 이적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초호화 게스트의 열창, 항상 그 자리에서 묵묵히 기다리며 자신과 자신의 음악을 사랑해 주는 팬들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은 유희열의 ‘눈물’… 그야말로 볼거리 들을거리가 풍부한 공연이었다.

여기에 특유의 입담은 공연의 재미를 배가시켰다. 뜻하지 않은 야근이 발생했더라면 놓칠 수도 있는 평일 저녁 8시라는 아슬아슬한 시각, 폭풍우가 몰아치는 나쁜 날씨에도 ‘어려운 걸음’해 준 관객들에게 유희열은 진솔한 언어로 고마움을 표했고, 능숙하게 관객들을 울리고 웃겼다. “다시 정말 처음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다. 제일 빛났었고 밝았었고 (여러분들이) 남자라고는 유희열밖에 몰랐던 그 시절!”, “김동률 씨는 소를 몇 십마리는 몰아줘야 되잖아요? 남성미 넘치는 대륙의 보컬!”, “제가 저 친구(페퍼톤스 신재평)를 보고 자신감을 가지고 노래할 수 있었어요” 등등. 게스트와 핑퐁 게임하듯 대화를 흥미롭게 끌어가는 솜씨도 일품이었다.

현란한 안무와 눈이 휘둥그레해지는 특수효과 없이 오롯이 ‘음악’과 ‘이야기’만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은 3시간 넘는 긴 공연은 말 그대로 ‘로맨틱’하고 ‘성공적’이었다. 녹음도, 사진 촬영도 금지된 공연장에서 이 훌륭한 공연을 기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기록’뿐이었다. 노래와 말소리에 귀 기울이고 떼창을 하는 와중에도 쉴 새 없이 수첩에 끼적댔던 이유다. 다음 날 어떤 일이 벌어질 줄 전혀 알지 못했고, 당연히 메모 내용을 이런 식으로 활용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공연할 때 힘 받을 수 있게 앞자리 여자분들은 다리를 벌려달라”

공연의 감동에서 헤어 나오기도 전인 3일 저녁, 눈을 의심케 하는 기사가 떴다. <유희열 콘서트서 19금입담 폭발 “여성 관객들, 다리 벌려달라”>라는 제목의 기사는 3일 공연 당시 “내가 공연을 할 때 힘을 받을 수 있게 앞자리에 앉아계신 여자분들은 다리를 벌려달라”며 “다른 뜻이 아니라 마음을 활짝 열고 음악을 들으란 뜻이다. 아시겠냐”고 한 유희열의 발언을 전했다.

유희열의 발언은 급속도로 확산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경솔하고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있는가 하면, 농담을 다큐로 받아들였다는 반박도 있었다. 결국 유희열은 6일 새벽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에 ‘모두 모두 정말 고맙습니다’라는 공연 후기를 통해 당시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아무리 우리끼리의 자리였다고 해도 이번 공연 중에 경솔한 저의 가벼운 행동과 말에 아쉽고 불편해하시는 분들도 계셨을 텐데.. 무척이나 죄송해지는 밤이기도 합니다. 오랜 시간 아끼고 간직해온 기억들도 한 마디의 말로 날려 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더 깊게 새기면서 살아가야겠단 생각에 부끄럽고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평소 ‘감성변태’라는 별명 아래 방송에서도 밉지 않은 섹드립(성적 농담)을 해 왔던 그의 캐릭터를 잘 알고 있고, 전날 공연에서도 관객들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편한 농담을 했다는 것을 감안해도 수용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명백한 성희롱성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생각해봐도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었다. 여성은 남성에게 힘을 줘야 하는 존재인가? 힘을 주는 방식은 다리를 벌리는 행위로 표출되어야 하나? 본인이 충분히 여지를 주는 발언을 해 놓고 ‘무슨 생각하시는 거냐? 사실 이런 뜻이다’ 하고 눙치면 괜찮은 건가? 혼란스러웠다. 팬의 한 사람으로 발언이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아찔했다.

▲ 4월 3일 공연 중 발언이 논란이 되자 수 백개의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유희열의 사과 이후 나온 많은 기사는, 이번 논란에 대해 ‘새삼스럽다’거나 ‘발언 전체 맥락을 짚지 못했다’거나 ‘현장 분위기는 좋았는데 기사로 옮기니 문제가 된 것’이라는 식으로만 접근하는 모습을 보였다. ‘감성변태 유희열’이니까 괜찮다는 옹호, 유희열의 사과가 현장에서 공연을 즐겼던 팬들에게는 오히려 상처가 됐다는 걱정이 주를 이뤘다. 급기야 예원-이태임 사건을 들어 이번 논란 자체가 여론의 성급한 판단 때문은 아니냐며 비난의 화살을 대중들에게 돌리는 기사도 등장했다.

정당한 ‘문제제기’를 한 사람이 저격당하는 이상한 풍경

유희열 발언이 부적절했다는 지적에 가장 많이 뒤따르는 반박 중 하나가 ‘현장 분위기는 괜찮았다. 발언 전체를 보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공연 도중 예상치 못하게 불쾌한 발언을 들었다고 해서 관객들이 당장 공연장을 빠져나갈 수는 없다. ‘그럼 당시에는 왜 불편하다고 표현하지 않았느냐’는 말에 도리어 묻고 싶다. 그럼 고함이라도 지르고 눈에 띄게 항의해 끝내 공연을 중단시켰어야 했느냐고. 애초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을 가정하며 문제제기하는 사람들을 몰아세우고 있는 셈이다.

‘뒷북’이라는 비판도 헐겁기는 마찬가지다. 듣자마자 기분이 나빴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발언을 떠올리며 성적인 수치심을 느꼈든, 며칠 몇 달 몇 해가 지나서 뒤늦게 불쾌하게 생각됐든, 그 시점은 상관없다. 타인에게 실례가 되는 위험한 발언이 그 자리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팬들과 나눈 농담에 기자들이 죽자고 달려들어 공연 분위기를 왜곡한다는 시각 역시 위험하다. 유희열의 캐릭터, 말하는 스타일을 속속들이 꿰어 그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다 받아줄 수 있는 팬들만 공연장에 오는 것은 아니다. 기자들도 취재 차 들락거리는 다분히 ‘공적인’ 자리에서 나온 말이 기사화되는 것은 비단 유희열에게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다. 막상 현장에선 화기애애했다는 옹호가 많은데 당시 그 발언을 듣고 문제가 될 줄 예상했다거나, 몹시 경악했다는 팬들의 후기도 적지 않다.

‘농담’이라는 전제도 틀렸다. 전날 공연에서만 해도 타인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면서 친근감을 살리는 재치 있는 입담을 뽐냈던 유희열은 스스로 선을 넘어 실언을 했다. 유희열이 “어른들이 계셨다면 죄송하다. 오랜 시간 함께 해 온 팬들과 함께 하다 보니 제가 (편한 마음에) 그랬다. 죄송하다”고 현장에서 즉시 사과한 점, 공연 중 발언이 가감 없이 실렸던 기사에서 문제의 발언이 빠지고 제목까지 달라진 점 등을 고려하면 본인 스스로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발언 하나를 가지고 모처럼 열린 훌륭한 공연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내비친다. 하지만 현재 벌어지고 있는 논란의 쟁점은 발언이 ‘적절했느냐, 부적절했느냐’다. 당시의 연주와 노래, 공연의 퀄리티를 문제삼는 게 아니다. 겉핥기식 우려를 가장한 이런 접근이야말로 ‘공연에 가지도 않았으면서 유난 떨지 말라’는 식으로 정당한 문제제기를 막는 ‘적극적 행위’다.

어떤 설명을 붙이더라도 ‘공연할 때 힘을 받을 수 있게 앞자리에 앉아계신 여자분들은 다리를 벌려달라’는 말의 부적절함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곳에 있던 ‘내’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고 해서 ‘해선 안 될 말’이 ‘해도 되는 말’로 변신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말의 부적절성과 이를 받아들이는 각자의 상반된 태도는 별개로 판단돼야 할 부분이라는 의미다.

유쾌하고 멋지게 마무리될 수 있던 공연에서 경솔한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킨 이는 유희열 본인이다. 그는 이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런데 숱한 기사들에서는 해당 발언을 지적한 이들이 도리어 '저격'당하고 있다. 논란을 일으킨 당사자보다 문제제기한 이들이 더 가혹한 훈계를 받고 있는, 퍽 의문스러운 풍경을 마주하고 있자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 유희열은 6일,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공연 중 있었던 부적절한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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