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이후 언론이 '기레기'라고 불릴 때, 한 다큐멘터리가 큰 호평을 받았다. 비영리독립언론 <뉴스타파>와 독립PD들이 함께 만든<세월호 골든타임, 국가는 없었다>라는 제목의 다큐였다. <세월호 골든타임, 국가는 없었다>는 2014년 대표적인 콘텐츠로 평가되며, 많은 주목과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 독립PD들이 '한국PD대상'에서 주는 상은 거부했다. 독립PD들이 영광스런 수상을 거부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4·16기록단 단장을 맡고 있는 박봉남 PD를 만났다. 박 PD는 ‘특별상’ 수상 거부에 대해 “한국PD연합회에 독립PD들도 소속되어 있다. 그런데 한국PD연합회 회장이 회원들의 단합을 도모시키고 힘을 합치는 방식이 아닌 엉뚱하게 외주제작비율 문제나 비정규직 문제로 우리를 보는 시각에 분노가 있었다”며 “현재 미디어의 위기는 정권이 압력 탓에 자율성을 획득하지 못한 것이 핵심이다. 한국PD협회에서 외주비율은 극히 부분적으로 검토할 사항이지 핵심이 아니다”는 소신을 밝혔다.

▲ 416기록단 단장 박봉남PD(사진=박봉남PD 제공)

“독립PD들, PD연합회가 주는 상 왜 받나”

“독립PD들 사이에서 ‘한국PD연합회에서 주는 건데 왜 받느냐’는 이야기가 많았다. 분명, 공로를 치하하고 격려하는 의미이다. 하지만 세월호와 관련해서는 모든 언론들이 무한책임이 있다. 특히, 지상파 보도는 참담했고 미디어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했다. 그런 모습들을 생생히 봤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 세월호 관련해선 한국PD연합회 회원들이 자성의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생각한다. ‘누가 상을 줄 자격이 있단 말인가’, ‘우리가 상을 받을 입장이 됐나’라는 생각에 수상을 거부하게 된 것이다. 상을 안 줬으면 좋겠다. 다 부담된다”_박봉남 PD

박봉남 PD는 세월호 참사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진상규명이 더욱 어렵게 되는 사태를 안타까워 했다. 그는 “세월호 수색을 종료하던 날이었다. 가족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고 종료가 선언됐다”며 “그 때 속으로 ‘당했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세월호특별법>으로 특위가 만들어졌지만 그 당시 보나마나 굴러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새누리당 특위 사람들의 작전은 ‘시간끌기’, ‘조직축소’ 등으로 나올 것”이라며 “지금 상황은 그 예측 그대로이다”고 개탄했다. 그는 현장 취재 경험을 바탕으로 “아직 가족을 찾지 못한 가족들은 아이들의 뼈 하나 찾는 것이 모든 관심”이지만 정부는 이를 헤아리지 못한 채 아직 인양에 대해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봉남 PD는 세월호 진상규명에 대해 “이 정권에서는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정권의 아킬레스건이기 때문”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유가족들이 누군가로부터 ‘종북’, ‘빨갱이’라고 매도 당하더라도 끝까지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독립PD들이 집단적으로 세월호 참사를 기록하는 이유 또한 거기서 찾았다. 시간의 흐름과 그 것을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후일을 위한 기록이었단 얘기였다.

▲ 다큐멘터리 '세월호 골든타임, 국가는 없었다'

박봉남 PD가 4·16기록단 단장을 맡고 있어 세월호 관련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사실 이날 인터뷰는 정부의 ‘외주정책’이 주된 이야기 꺼리였다.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는 <방송법> 제72조(외주제작 방송프로그램의 편성) 2항 삭제를 담은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상임위를 통과해, 4월 임시국회 통과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이 개정안을 외주제작사를 비롯한 독립제작사협회 등은 극렬히 반대하고 있다. 열악한 외주제작 현실을 외면한 정책이라는 주장이다.

“KBS <추적60분>에서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다룬 적이 있다. 대규모의 기업이 배급사와 극장을 장악하면서 독과점 문제가 커진 탓이다. 미국의 경우, 배급사와 극장 겸영이 분리돼 있다. 이 같은 문제와 관련해 오동진 선생이 ‘이제 지긋지긋하다. 이 이야기를 10년을 했다. 뭔가 이야기를 하면 뭔가 반영이 되던가 해야 할 게 아니냐’라고 이야기를 한 인터뷰를 봤다. 정부의 외주정책 또한 마찬가지다. 정말 지긋지긋하다”_박봉남 PD

“72조 2항 삭제?…핵심은 2차 저작물에 대한 쉐어”

▲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박봉남 PD는 “72조 2항이 삭제되더라도 큰 차이는 없을 것”이라며 “과거에는 외주제작 정책이 지상파 대 독립제작사의 대결구도로 단순했다. 지상파의 지위가 굉장히 컸고 ‘그 독과점 구조를 좀 내놔라’라 하면 상생 차원에서 대응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지금은 지상파의 위치가 내리막을 걷고 있고 종편이라는 기형아도 생겼다. SNS 등 스마트 미디어 환경이 변하고 있고 복잡해졌다”고 설명했다.

박봉남 PD는 외주제작비율 상향 및 프라임타임 편성 등과 관련해 “그것이 핵심은 아닌 것 같다”며 “오히려 핵심은 2차 저작물의 권리를 쉐어(공유)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물론, 그는 지상파에서 지급하는 제작비를 늘리는 것 또한 중요한 문제다. 근 10년 가량 제작비가 거의 오르지 않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당장 할 수 있는 2차 저작물에 대한 권리 문제를 해결해야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인 셈이다.

박봉남 PD는 “작가협회는 지상파와 협약을 맺어 재방료와 VOD, IPTV 판매료 등을 다 받고 있다”며 “그러다보니 작가로서 창작자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하게 된다. 하지만 PD들의 입장은 다르다”고 토로했다.

“2차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공유해야 한다. 현실 가능한 것부터 해야 한다. 다큐멘터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원래 KBS <인간극장>에 나갔던 것이다. 그 소재를 진모영 감독이 아이템을 재활용한 것이다. 방송사에는 좋은 아이템들이 굉장히 많다. 그런데, 2차 판권 100%는 방송사가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케이블 PP에 좀 팔고 그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해당 아이템이 영화화되고 470만 명의 관객들이 동원되는 작품으로 탄생한 것이다. 만일, <인간극장>을 찍을 당시 2차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공유했다면 해당 외주 독립PD는 <인간극장> 뿐 아니라, 영화화 하거나 해외판매 등 다른 활용방안을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나 2차 저작물이 모두 방송사에 있기 때문에 확장되지 못한 측면이 크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서 KBS가 가지고 있던 영상물이 들어갔다면 더 풍부한 내용을 담았을 수 있을 거라는 점은 아쉽다”_박봉남 PD

2차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공유한다면 어떻게 될까. 박봉남 PD는 “촬영본과 소재를 이용한 권리를 같이 갖는다면 그것으로 영화도 만들고 멀티융합형 5분짜리 영상으로 재편집해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도 있다”며 “그것을 방송사들이 가둬놨기 때문에 결국, 수많은 창작의 가능성들이 KBS(대표)에도 이득이 되지 못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만일, 2차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공유한다면 독립PD들에 의해 새롭게 탄생되는 콘텐츠에 대한 이득 또한 공유될 것이란 설명이다.

물론, 지금도 2차 저작물이 공유되는 일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 방송사에서는 제작비를 줄여서 지급하는 등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계약을 해야 한다는 것이 박봉남 PD의 설명이다. 제작비에 허덕이는 외주제작사와 독립PD들의 입장에서는 울며겨자먹기로 2차 저작물을 포기하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박PD는 방송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 부분이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독립PD들을 ‘하청’이 아닌 ‘동료’로 인정해달라”

박봉남 PD는 과거 KBS가 2차 저작물을 공유했던 일을 일화로 설명했다. 아예 불가능한 요구는 아니라는 얘기다. 지난 2008년 정연주 전 사장이 있던 시절(방송 시점은 2009년), 현재 KBS 이규환 이사가 현직 팀장으로 일하고 있던 때였다. 당시, 박 PD는 KBS에서 방영된 <인간의 땅> 5부작 중 한 편(철 까마귀의 날들)을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 ‘아이언 크로우스(Iron Crows)’로 암스테르담 국제 다큐멘터리영화제(IDFA)에서 중편부문 대상을 받은 바 있다. 이 같은 쾌거가 가능했던 이유는 KBS가 대기획이라는 점에서 큰 돈을 댔을 뿐 아니라, 계약서에 ‘원본에 대한 권리는 을에 있다’는 한 구절이 들어갔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 PD는 “당시 KBS 내부에서도 큰 반대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이규환 당시 팀장이 결단을 내리면서 가능했던 일”이라고 강조했다.

▲ 박봉남 PD가 연출한 KBS '인간의 땅'이 암스테르담 국제 다큐멘터리영화제(IDFA)에서 중편부문 대상을 받았다(사진=KBS홈페이지 캡처)

지난 2013년 SBS에서 방영됐던 다큐멘터리 <내일도 꼭, 엉클 조>의 사례도 그렇다. 해당 다큐는 국내 방송이 아닌 해외 방송사를 타깃으로 제작됐지만, 국제 공동제작 형태로 완성되면서 국내 방송사에서도 방송할 수 있었던 사례다. 방송사가 권리를 독점하지 않음으로 배급에 시너지 효과를 낸 사례이다. 박봉남 PD는 2차 저작물 권리에 대한 공유와 관련해 “다 풀자고 하면 방송사 내부에서 반대가 큰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부터 해보자는 제안”이라며 “KBS가 선도적으로 나선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저작권 공유로 다큐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와 같은 것들이 만들어진다면 KBS에도 이득이 됐을 게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결국, 윈윈전략이 될 것이란 얘기다.

“문제는 여전히 방송사에서 저희들을 ‘하청’으로만 대한다는 사실이다. 만일, 이 같은 상황에서도 방송사가 발전한다면 문제가 아닌데, 현재는 방송사들도 망하고 있지 않느냐. MBC는 완전히 망했고 KBS 또한 다르지 않다. 방송사들은 그들의 생태계를 튼튼히 해줄 수 있는 파트너가 독립제작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하청’이라는 인식이 열악한 독립제작사 현실을 만들었고 무한한 가능성 또한 덮어버리게 됐다”_박봉남 PD

미디어 환경이 변화하면서 이제 방송과 영화의 구분이 사라지고 콘텐츠가 국내와 해외의 경계 없이 유통된단 점에서 2차 저작물에 대한 권리 공요 필요성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박봉남 PD는 “독립영화판에 유능하고 젊은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며 “이 사람들이 먹고 사는 방법을 마련해주는 것이 결국에는 우리나라의 미디어 영향력을 키우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 KBS 등 방송사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봉남 PD는 “이해관계에 따른 주장이 아니다”라고 강조한 뒤, “만일, 우리나라 영상 콘텐츠가 발전하기 위해서 독립PD들이 다 사라져야 한다고 한다면 100% 찬성하겠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지 않느냐”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인터뷰를 마치며 박봉남 PD는 <방송법> 제72조 2항 삭제 골자로 한 개정안 처리에 골몰하고 있는 국회와 방송사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일침을 가했다. “같이 망하지 말고 같이 살자”고 말이다. 더 이상 슈퍼갑으로서 위치하지 말라는 설명이다.

“중국 자본에 의해 우리나라 영화판이 다 넘어가고 있다. 프로덕션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제작 2억 원이 넘는다. 규모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시청률 1%만 나와도 광고비로 충당되기도 한다. 임순례 감독을 만났었는데 다음 영화를 중국과 합작을 한다고 하더라. 그런데 감독과 주요스텝만 한국 시스템을 쓰기로 했다는 것이다. 아직 중국에서는 그에 대한 노하우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고급 인력이 용병으로 팔려가는 것이다. 독립PD들 입장에서는 (더 많은 제작비를 보장하는데)안 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 이렇게 해서 한국사회 저널리즘이 앞으로 계속 발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외주제작사가 죽고 살고의 문제는 오히려 부차적이다. 같이 망하지 말고 같이 살자. 우리를 ‘하청’이 아닌 ‘동료’로 인정해달라. 그리고 KBS가 먼저 제작비를 깍지 않을 뿐 아니라 2차 저작물을 공유하겠다고 선언해 달라. 그리고 국회에서 논의 테이블을 만들어 달라”_박봉남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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