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취임한 국가기간 뉴스통신사 연합뉴스의 박노황 신임 사장의 행보는 '이례'의 연속이다. 인사 및 직제개편이라는 보통 언론사 사장이 하는 업무도 있었지만, 현충원을 참배하고 간부들을 동원한 국기게양식을 여는 등 흡사 ‘정치인’스러운 모습을 보여 빈축을 사고 있다.

매체 비평에 인색한 한국적 풍토에서, 신문이 박노황 사장의 ‘나라사랑 행보’를 문제 삼는 사설까지 썼을 정도이다. “언론사 사장의 애국주의는 위험하다”고 비판이다. 언론시민단체들 역시 “난데없는 애국행보로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고 조소하고 있다. <미디어스>가 뜬금없이 ‘나라사랑의 아이콘’을 자처한 박노황 신임 사장의 취임 일주일을 정리해 보았다.

3월 25일 :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회사’ 첫 손 꼽은 취임사

▲ 3월 25일 취임한 박노황 연합뉴스 신임 사장 (사진=연합뉴스)

연합뉴스 대주주이자 관리감독기구인 뉴스통신진흥회(이사장 이문호, 이하 진흥회)는 지난달 10일 박노황 연합인포맥스 특임이사를 연합뉴스 새 사장으로 내정했다. 25일 주주총회에서 최종 선임된 박노황 사장은 <뉴스통신진흥법>에 규정된 ‘국가기간 뉴스통신사’라는 점을 강조하며 특별한 취임사를 선보였다.

박노황 사장이 제시한 3가지 경영 목표 가운데 가장 앞자리를 차지한 것은 바로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회사’다. ‘경쟁력을 갖춘 회사’, ‘사우들이 행복한 회사’가 그 뒤를 이었다. 인사치레로나마 ‘보도의 공정성’이나 ‘콘텐츠’, 혹은 ‘사회통합’ 등을 내세우는 언론사 취임사와 달리, 정부에 종속되어 있는 공기업 취임사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법에 정해진 바대로 신속 정확하며 불편부당한 뉴스를 중단 없이 공급함으로써 그 책무를 다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히긴 했으나, 2012년 ‘공정보도 쟁취’를 내걸고 103일 간 파업을 해 내부 구성원들이 얻어낸 편집권 보장 장치인 ‘편집총국장제 폐지’를 예고함으로써 ‘공정보도의 의지가 있는지’를 의심케 했다. (▷ 관련기사 : <박노황 연합뉴스 사장 취임 “국가에 기여하는 회사 만들겠다”>)

3월 26일 : 첫 출근 ‘보여주기 식’ 고성

박노황 사장은 첫 출근날부터 ‘인상적인 장면’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미디어전문지 <미디어오늘>이 지난달 26일 보도한 <박노황 연합뉴스 사장, 노조 향한 ‘고성’으로 첫 출근길>에 따르면 박노황 사장은 ‘편집총국장제 사수’를 내걸고 항의 피케팅을 진행 중인 전국언론노동조합 연합뉴스지부(지부장 오정훈, 이하 연합뉴스노조)에게 큰소리를 질렀다.

<미디어오늘> 보도를 보면 편집총국장제 논의를 대화로 잘 풀어갔으면 한다는 오정훈 지부장의 이야기를 듣고 웃음으로 화답하던 박노황 사장은 대뜸 “근무시간에 뭐하고 있어!”, “근무시간엔 일을 해야지”라며 몇 차례 고성을 질렀다고 한다. 결국 싸늘한 분위기 속에 피케팅을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현장에 있던 <미디어오늘> 기자는 자신이 취재 목적으로 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박노황 사장이 연합뉴스노조 노조원을 향해 목소리를 높인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었을 것이라 추론했다. 이날은 ‘국기게양식’ 행사가 예고됐던 날이기도 했다. 연합뉴스는 보직부장 이상에게 국기게양식에 참여해달라는 공지를 했다. (▷ 관련기사 : <연합뉴스 박노황 사장의 첫 행보, ‘국기게양식’ 개최>)

3월 27일 : 구성원 의사 무시한 채 ‘편집총국장제’ 폐지, 새로운 직제 마련

취임사에서 “회사의 경영권과 인사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는 편집총국장제와 같은 불합리한 요소들은 과감히 개선할 것”이라고 말한 지 이틀 만에, 직제를 개편에 나섰다. 박노황 사장은 지난 30일자로 조직개편을 하면서 ‘편집총국장’ 자리를 없앴다.

기자직 사원 모두가 공유하는 ‘편집권’을 대표하고 책임지는 편집총국장을 두는 ‘편집총국장제’는 편집과 경영의 분리 원칙 아래 지난 2012년 만들어진 제도다. 이사직을 수행하는 임원들과 별도로 독립된 위치에서 편집국장 자리를 겸임하는 편집총국장은 그동안 두 제작국장(지방국장, 국제국장)을 비롯한 편집국 전체를 총괄 지휘해 왔다. 연합뉴스 기자들 2/3 이상이 참여한 투표에서 유효투표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임명될 수 있고, 면직 시에도 구성원들의 ‘동의’가 필요한 이 제도는 노사 단체협약에도 명시돼 있다.

하지만 박노황 사장은 편집총국장 대신 ‘편집인’ 역할을 할 콘텐츠 상무이사라는 자리를 부활시켰다. 편집국장, 지방국장, 국제국장이 수평적 관계를 유지했던 구조를 깨고, 콘텐츠 상무이사-편집국장-각 분야 에디터(부국장급)로 이어지는 수직적인 체계를 새롭게 만든 것이다.

연합뉴스 구성원들의 ‘동의’가 있어야만 가능했던 편집총국장을 콘텐츠 상무이사로 대체해 사장이 임명할 수 있는 구조로 바꾸고, 편집총국장(편집국장 겸임)과 지방국장, 국제국장이 거쳐야 했던 ‘임면동의’ 투표를 없애버린 것이 핵심이다. 이 과정에서 박노황 사장은 지방국장, 국제국장은 ‘국장’ 지위가 아닌 부국장급 ‘에디터’로 바꾸고, 편집국장은 ‘직무대행’을 앉혀 모두 임면동의 투표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꼼수’를 썼다. (▷ 관련기사 : <‘편집총국장 무력화’ 시작한 박노황 연합뉴스 사장>)

박노황 사장은 면접 당시부터 ‘편집총국장제 폐지’를 밝혀 왔다. 2012년 ‘공정보도 쟁취’를 내걸고 103일 간 파업해 얻어낸 편집권 독립 장치를 폐지한다는 계획에, 연합뉴스노조는 크게 반발했다. 그러나 박노황 사장은 취임사에서 “(경영을 할 때) 일일이 노조의 동의를 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회사 경영의 궁극적인 책임은 노조가 아닌 저를 비롯한 경영진에 있기 때문”이라며 ‘일방 강행’ 의사를 피력한 바 있다.

3월 28일 : 국립현충원 참배

▲ 3월 28일 국립현충원 참배 모습 (사진=뉴스Y 캡처)

국기게양식 시행 계획이 공개된 지 이틀 후인 3월 28일에는 연합뉴스, 연합뉴스TV(뉴스Y), 연합인포맥스 등 3사의 새 임원들과 함께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국립현충원을 참배했다. 이는 박노황 사장의 첫 ‘대외 일정’이었다.

박노황 사장은 현충탑에 헌화하며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넋을 기렸다. 방명록에는 “신속정확하고 불편부당한 뉴스로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국가기간뉴스통신사로서의 책무를 다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이 모습은 연합뉴스TV를 통해서 보도되기도 했는데, 언론 사유화를 지적할 수 있을 법한 대목이었다.

3월 30일 : 간부 동원한 국기게양식 강행

정점은 ‘국기게양식’이었다. 박노황 사장은 3월 30일 오전 7시, 태극기와 연합뉴스기를 거는 국기게양식을 강행했다. 이른 시간임에도 80여명이 몰려 당시 보직간부들 대부분이 참석했다.

박노황 사장은 “오늘 게양된 국기는 마치 연합뉴스가 24시간 365일 불철주야 기사를 공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우리 사옥 앞에 우리와 함께 할 것”이라며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서 사원 여러분들과 함께 언제나 신속 정확하며 불편부당한 뉴스로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국가기간 뉴스통신사로서의 책무를 다할 것을 당부드린다”고 밝혔다.

‘부끄럽다’, ‘황당하다’, ‘이해가 안 된다’… 안팎에서 비판 목소리

이 같은 박노황 사장의 행보에 내부 구성원들은 황당하다는 분위기다. 현충원 참배, 국기게양식으로 이어지는 ‘나라사랑’ 움직임에 사내 게시판에는 부끄럽다, 이해가 안 된다, 황당하다는 내용의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취임사에서 “회사의 이익에 반하는 어떠한 해사 행위도 하지 않기 바란다”고 했던 것과 달리, 오히려 ‘해사행위’는 사장 본인이 하고 있다는 따끔한 질타도 나왔다.

연합뉴스노조는 편집총국장 무력화에 대해 “현행 단체협약과 직제에 편집총국장직이 명시돼 있는데도 편집총국장과 편집국장 자리를 공석으로 놔두고 편집국장 직무대행을 임명한 것은 누가 봐도 비정상적인 조치다. 게다가 편집총국장을 면직할 때 동의 여부를 묻지 않은 것도 단체협약을 위반한 것”이라며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단 입장이다.

밖의 ‘눈총’도 매섭다. <한겨레>는 지난달 28일 사설 <연합뉴스 새 사장, 관영통신 되길 바라나>에서 “국기게양식을 해서 안 될 것까진 없지만, 모든 권위를 비판하고 의심함으로써 자유로운 정신을 높여야 하는 언론기관으로서는 어색한 게 사실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자주 입에 올리는 ‘나라사랑론’에 코드를 맞추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마저 든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연합뉴스는 국가 기간 통신사라고 정부 구독료 형태로 350억여 원의 지원금을 받는다. 언론사에 뉴스를 공급하는 뉴스 도매상의 역할을 인정하여 활동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보장해주자는 취지에 따른 것”이라며 “박 사장의 행태는 민영 언론기관의 대표자로서도 부적절하다. 뉴스통신진흥법에 따라 엄격한 공적 책임을 규정하고 있는 연합뉴스의 대표자로선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박 사장이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이 회사에 대한 정부 지원금부터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일에는 김종구 논설위원이 <언론인 출신이 ‘언론 문외한’보다 못해서야>라는 칼럼으로 기자로 잔뼈가굵은 박노황 사장이 ‘금융맨’ 외길을 걸어 온 조준희 YTN 사장보다 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직격했다.

언론시민단체인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연합뉴스는 해마다 300억원의 국민세금이 지원되는 공공의 재산이다. 국민이 연합뉴스에 요구하는 것은 애국맹세가 아니라 정론보도의 실천”이라며 박노황 사장에 “쓸데없는 충성심 과시를 중단하고 주권자인 국민 앞에 공정보도를 맹세하라. 공정보도 장치인 편집총국장제를 즉각 원상 복구하기 바란다”고 요구했다.

연합뉴스는 최근 박노황 사장의 행보가 ‘정부여당과 코드 맞추기’가 아니냐는 해석에 대해 “정말 ‘순수하게’ 대내외적인 위기상황에 있는 연합뉴스 직원들의 각오를 다지기 위한 것이었을 뿐, 특별한 의도가 있던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연합뉴스의 한 구성원은 “사장은 국민들이 연합뉴스가 국가기간 뉴스통신사라는 점을 잘 알지 못하니 ‘공적 언론’이라는 점을 이런 이벤트를 통해 과시하고자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4월 중 진행되는 정부 지원금 협상을 의식해 돌발 행동을 한다는 해석도 있다. 연합뉴스는 <뉴스통신진흥법>에 따라 구독료를 포함해 매년 350억원의 정부 지원을 받는다. 특히 뉴시스, 뉴스1 등 민영 뉴스통신사들 사이에서 ‘정부 지원’에 대한 반발이 높고, 포털에 뉴스를 공급하는 문제로 다투다 가장 큰 고객사에 해당하는 조중동이 전재계약을 해지하는 등 대외적으로 난관에 빠진 상황에서 정부 신뢰를 받기 위한 ‘시그널’을 보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의도도 없고’, ‘국가기간 뉴스통신사로서의 정체성 강조’에 방점을 찍었다는 해명은 박노황 사장이 며칠 사이에 보여준 ‘광폭 행보’를 보건대, 액면 그대로 믿기 힘든 상황이다. 이제 일주일, ‘해명’을 ‘사실’로 만드는 숙제를 박노황 사장이 풀어야 한다.

▲ 3월 30일 연합뉴스 국기게양식 당시의 모습 (사진=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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