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숙 작가의 <시크릿 가든>으로 신드롬을 일으켰던 현빈, 그의 TV 드라마 복귀작이었던 <하이드 지킬, 나>. 하지만 현빈의 출연이라는 화제성이 무색하게, 같은 소재를 다루었던 동시간대 <킬미, 힐미>에는 물론, 평균 시청률 4.3%(코리아 닐슨 기준)이라는 저조한 시청률로 그간 수목드라마의 아성을 지켜오던 SBS에 패배를 안겨 주었다. 조용히 종영한 <하이드 지킬, 나>의 바톤을 이어받은 작품은 이희명 작가와 박유천의 <냄새를 보는 소녀>이다. 이 드라마는 몇 년이 지났음에도 그 300년의 시공간을 달리하는 운명적 엔딩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옥탑방 왕세자>의 전설을 이어갈 수 있을까?

2012년 방영 당시 <더 킹 투 하츠>, <적도의 남자>등과 함께 이름 그대로 수목드라마 대전의 한 축을 이뤘던 <옥탑방 왕세자>. 9.7%(코리아 닐슨 기준)의 동시간대 꼴찌로 시작하여, 마지막 회 14.8%의 동시간대 1위로 수목드라마 대전의 승리자가 된 <옥탑방 왕세자>. 하지만 당시 거의 비슷한 시기에 출발한 드라마들과 달리, 이미 <착하지 않은 여자들>이 승기를 잡은 가운데 <앵그리 맘>이 그 뒤를 추격하고 있는 상황에서, 저조한 시청률로 종영한 <하이드 지킬, 나>의 후발주자인 <냄새를 보는 소녀>의 상황은 여의치 않다.

하지만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이 봄에 걸맞은 로맨틱코미디 <냄새를 보는 소녀>의 합류로, 다양한 장르, 다양한 내용을 선사하는 수목 드라마의 선택에 즐거움을 더해졌다. 진수성찬과도 같은 수목드라마, 그런데 그 속에 서로 얽히고설킨 인연들이 짚어진다. 새로운 수목드라마 대전에 앞서 그 숨겨진 인연, 혹은 악연을 살펴보고자 한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새로이 기대되는 수목드라마 대전에서 이미 승기를 잡고 있는 쪽은 KBS2 <착하지 않은 여자들>이다. 채시라, 김혜자, 장미희 등 중견 연기자들의 호연을 힘입어 주부들의 공감을 얻고 있는 이 드라마는, 10%를 넘기 힘든 최근 시청률 환경에서 12.9%의 선전을 보이며 일찌감치 기선을 제압했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김인영 작가는 2012년 <적도의 남자>를 썼고, 이 <적도의 남자>는 이희명 작가와 박유천이 출연한 <옥탑방 왕세자>와 동시간대 경쟁했었다. 12회 자체 최고 시청률 15%를 갱신하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적도의 남자>는 마지막 회 14.1%라는 높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동시간대 1위의 자리는 <옥탑방 왕세자>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더 킹 투 하츠>와 함께 그 어떤 때보다 풍성한 선택의 기쁨과 갈등을 안겨주었던 시간이었지만, 숱한 화제에도 불구하고 유종의 미를 <옥탑방 왕세자>에게 넘겨주었던 김인영 작가에게는 씁쓸한 기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이후 MBC <남자가 사랑할 때> 역시 용두사미란 평가를 받았던 김인영 작가는 칼을 간 듯 채시라, 김혜자 등 출중한 중견 연기자들의 출연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착하지 않은 여자들>로 현재 동시간대 1위는 물론, 중년 시청자들의 공감과 호응을 얻고 있다.

과연 이렇게 안정적 1위를 고수하고 있는 김인영 작가의 <착하지 않은 여자들>과의 경쟁에서 <옥탑방 왕세자>의 콤비 이희명, 박유천이 다시 한번 2012년의 성취를 이루어낼 수 있을지, 그것이 수목드라마 대전의 관전 포인트 첫 번째이다.

김인영 작가는 <적도의 남자>에서 미스터리 스릴러를 선보였었다. 김인영 작가가 미스터리의 요소도 가미했지만 가족극의 형태를 띤 <착하지 않은 여자들>로 돌아온 데 비해, 이희명 작가는 역시나 기업물 <야왕>을 통한 외도를 끝내고 그의 장기인 스릴러를 가미한 로맨틱코미디로 돌아왔다. 300년 전 조선에서 현대로 온 왕세자를 독특한 말투와 절묘한 연기로 코믹하면서도 애절하게 그려냈던 박유천은 이번에는 동생을 잃고 감각을 잃은 경찰로 변신했다. 박유천의 연기 변신과 두 작가의 장르적 대결, 시청자들의 선택이 궁금하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으로?

<착하지 않은 여자들>과 <냄새를 보는 소녀>의 작가들이 2012년의 수목드라마 대전의 주인공이었다면, 이제 4회를 선보인 <앵그리 맘>의 주인공 김희선과 <냄새를 보는 소녀> 이희명 작가의 인연 또한 만만치 않다.

김희선으로 하여금 20대 시절 90년대 대표 청춘스타로 자리매김하게 해준 작품에 바로 이희명 작가의 <미스터 Q(1998)>와 <토마토(1999)> 등이 있다. 김희선은 <토마토>를 시작으로 <미스터 Q>, <팝콘(2000)>, <요조숙녀(2003)>까지 남자 배우만 김민종, 김석훈, 송승헌, 고수로 바꾸며 이희명 작가의 작품을 통해 전성기를 구가했었다. 이희명 작가 역시 김희선을 여주인공으로 한 갖가지 버전의 로맨틱코미디를 통해 로코의 킹으로 군림해 왔다. 그러던 두 사람이 12년 만에 동시간대 경쟁작으로 대결을 벌이게 되었다.

<불량 가족> 이후 개인적 사정으로 작품 활동을 쉬었던 이희명 작가는 <옥탑방 왕세자>를 통해 로코 킹의 저력을 다시 한번 선보였고, <야왕>으로 외도를 끝내고 다시 이 봄 로맨틱코미디 <냄새를 보는 소녀>로 돌아왔다. 반면 <요조숙녀> 이후 12년 만에 돌아온 김희선은 이제 한 여고생의 엄마가 되었다. 고등학생으로 변신해도 동급생은 물론 선생님조차 절대 의심을 하지 않는 미모는 여전하지만, 10여년의 세월은 로코퀸이었던 그녀에게 거친 사투리와 내 아이는 내가 지킨다는 사명감 하나로 뭉친 엄마 역을 맡긴다. 장르도 거칠다.

학원물이지만 그 학원의 그림자는 짙다. 학생은 교사와의 관계에서 임신을 하고, 폭력이 일상사가 되는 비리의 온상이다. 그 비리의 온상인 학교에 오로지 내 아이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한때 일짱이었던 엄마 조강자(김희선 분)가 학교 폭력으로 다친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 돌진한다. 학교 폭력과 비리를 둘러싼 사회고발 드라마인 <앵그리 맘>의 시청률은 선발 주자인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 밀려 8.7%로 저조하지만, 매회 종영 후 검색어 순위에 오르듯 그 이야기의 여파는 만만치 않다. 물론 80%의 로맨틱코미디에 20%의 스릴러의 지분을 지닌 <냄새를 보는 소녀>의 숨겨진 사연도 만만치 않다. 무감각한 경찰과 초감각인 여자의 숨겨진 사연도 깊다.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원수이건(<착하지 않은 여자들>과 <냄새를 보는 소녀>), 어제의 동지가 원수가 되어 만났건(<앵그리 맘>과 <냄새를 보는 소녀>), 그저 시청자들은 행복할 뿐이다. 2012년 김인영 작가와 이희명 작가가 충돌했던 그 수목드라마 대전, 마지막에 웃은 건 <옥탑방 왕세자>이지만 <적도의 남자>의 평균 시청률이 12%를 상회했고, 또 하나의 경쟁작 <더킹 투 하츠> 역시 12%를 넘은 시청률을 보였듯이 드라마의 진수성찬이었다.

이제 새로이 시작하는 <냄새를 보는 소녀>의 합류로, 마지막에 누가 웃든 혹은 매회 누가 일희일비하든 시청자들은 학원물에서부터 가족극, 그리고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룬 로맨틱코미디까지 이 봄의 풍성한 드라마의 식탁에 행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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