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노동 무임금을 자본가에게’ 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다. 보통 ‘운동권’들이 집회현장에서 잘 부르는 이 노래의 가사에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적용을 거부하는 기업에 대한 반발심이 반어적으로 표현돼있다.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 자본가여 먹지도 마라”라는 구절이 대표적이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것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적용을 거부하는 전형적인 기업의 논리인데, 이것이 실상 자본가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비꼰 것이다.

기업은 끊임없이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의 적용을 거부해왔다. 2003년 한 LCD모니터 공장에서 남성 노동자의 일급은 1만9천700원, 여성 노동자의 일급은 1만7천700원이었다. 이들은 사실상 같은 일을 같은 방식으로 같은 시간 동안 하기 때문에 임금이 달라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음에도 사측에서는 다양한 이유를 들어 여성에 대한 차별을 적극적으로 고수했다. 오늘날에는 정규직과 계약직, 파견직 등의 비정규직 간 임금격차가 문제가 된다. 같은 라인에서 같은 업무를 감당하고 있지만 단지 고용형태에 따라 임금이 다른 경우를 발견해내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부정은 임금체계 전체의 혼란과 양극화를 상징하는 하나의 예일 뿐이다. 진보적 지향을 가진 노동조합 단체나 정당 등에서는 앞서 설명한 예와 같이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이를 부각하면서 임금 차별의 개선을 위해 이러한 원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반대편에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으로 연공서열제를 공격한다. 우리나라처럼 직무가 기준이 아닌 연령에 따라 달라지는 임금지급기준이 일반화돼있는 상황에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기계적으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일반적 반론은 동일임금 지급을 문자 그대로 요구하겠다는 게 아니라 같은 임금체계의 적용이라는 차원에서의 요구로 봐야 한다는 것과 사회적 안전망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해고를 쉽게 하도록 해달라고 주장하면서 연공서열제까지 개편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조건을 조성하는 지름길이 될 뿐이라는 거다.

▲ 31일 오후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민주노총이 연 노동시장 구조개악 저지 노사정위 규탄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상징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사정위원회에서 노동시장의 구조개편에 대한 ‘대타협’이 쉽게 이뤄지지 않는 상황 역시 이런 식의 논란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해석해볼만하다. 그나마도 민주노총은 참여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뤄진 이 논의에서 노사정은 통상임금 등 일부 현안에 대해 의견 접근을 이뤘으나 노측이 저성과자에 대한 근로조건 조정 및 해고를 위한 절차 기준 마련, 취업규칙 변경을 위한 가이드라인 제정 등에 대한 수용불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고, 사측 역시 비정규직 노동자 계약기간 4년으로 연장, 제조업의 파견업종 업무 확대 등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어 원칙적 합의문 정도만 도출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노동자와 기업이 자신들의 이익을 둘러싸고 대립한 결과라기 보다는 기업이 노동자들에게 그들이 일한 만큼의 충분한 몫을 배분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결과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앞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둘러싼 논란에서 드러난 것 역시 마찬가지다. 기업은 끊임없이 어떤 노동자를 열등한 존재로 낙인찍기 위한 수많은 방법을 고안하고 이를 근거로 자신들이 지급해야 할 임금의 액수를 축소하기 위해 노력한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직후 민주노조들의 연속된 임금인상투쟁 때문에 잠시 주춤했던 재계는 1997년 노동법 개정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노동자를 차별하기 위한 합법적 틀을 만드는데 온 신경을 집중해왔다.

이 결과는 오늘날 우리 앞에 더욱 적나라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31일 2014년도 상장사 등기이사들의 개인별 보수가 금융 당국에 제출됐다. 여기에 따르면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현대차, 현대건설, 현대제철 등 계열사 3곳으로부터 215억7천만원의 보수를 받아 국내 기업인 연봉 1위에 등극했다. 2위는 178억9천700만원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며 3위는 92억3천100만원의 장상돈 한국철강 회장이다. 이 자료에서 김승연 회장의 연봉에는 집행유예 확정 후 등기이사에서 물러나면서 받은 퇴직금 143억8천만원이 포함돼있다.

이러한 내용이 공개된 것은 2013년 11월 대기업 등기이사들의 연봉 공개가 의무화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법률이 제정된 직후 11개 그룹의 오너일가 구성원이 등기이사직에서 사퇴했다. 등기이사에서 사퇴한 오너일가의 구성원이 받아가는 임금 수준 역시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추측된다. 재계는 등기이사들의 연봉 공개 의무화를 ‘마녀사냥’이라며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는 악법이라고 주장한다. 많은 국민들이 등기이사들의 고액연봉 수령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리라는 걸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재계와 기업들은 임원들, 특히 오너일가의 구성원들이 많은 연봉을 가져가는 것에 대해 배아파할 필요가 없다는 식의 논리를 펼친다. 그들이 늘 현명한 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대기업이 생존할 수 있는 것이며 기업을 이만큼 키워온 역할에 대해서도 평가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단지 연봉 액수가 많다는 것만으로 비난을 가하는 것은 비합리적이지 않느냐는 게 이들의 항변이다. 이들의 이런 주장에는 일리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모든 사정을 감안해도 현재의 연봉 수준이 합리적인 것인지에는 의문이 남는다. 1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는 시가총액 30대 기업 소속 전문경영인의 최고연봉과 일반 직원의 평균 연봉이 최고 142배 차이가 난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문경영인의 경우가 이 정도이니 ‘총수’라고 불리는 대기업 오너일가 구성원들과 일반직원의 격차를 비교한다면 이 숫자는 더욱 커질 가능성이 크다.

과연 전문경영인과 대기업의 오너일가가 일반직원이 하는 일의 150배 가량의 일을 하거나 그에 맞먹는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또, 기업의 성장이 단지 대기업 오너의 혜안과 실력에 의해서만 이뤄진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견이 제출될 수 있다. 기업의 성장과정에서 저임금과 장시간근로를 감당하며 버텨온 노동자의 역할이 분명히 있었고 고도성장 시기에는 국가의 적극적인 정책적 지원이 이들의 부흥을 뒷받침한 것 역시 사실이기 때문이다.

고액 연봉 그 자체를 문제삼자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기업과 기업인이 그러한 연봉의 숫자에 걸맞는 역할을 지금 하고 있는 것인지를 되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10대그룹의 사내유보금은 공식통계로 500조를 넘겼다. 일부 기업은 정부가 사내유보금을 배당이나 임금에 투입하라는 취지의 법을 만들자 무상증자의 실시와 현금배당을 통해 오너일가의 사재를 늘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은 참여하지도 않은 노사정회의에서조차 타협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고용유연화만을 주장하는 재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과연 그것을 ‘탐욕’이라고 부르지 않을 방법이 있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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