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가 늦바람이 났다. 상대는 박근혜 정부의 흘러간 레파토리 ‘창조경제’다. 한국일보는 지난 18일 ‘창조경제 거점 충청’이라는 제목의 별지를 냈고, 27일에는 ‘창조경제 우리가 살린다’는 제목으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총정리하는 별지를 발행했다. 그리고 31일자 신문 18~19면에는 ‘창조경영과 사회공헌’ 특집지면을 내보냈다. 한 달에 세 번이나 한국일보는 창조경제를 거하게 대우했다.

내용을 보자. 18일자 ‘창조경제 거점 충청’ 별지에는 세종시 천안시 청주시 등 충청지역 지방자치단체와 삼성디스플레이 성광창호디자인 같은 기업, 관세청 산림청 특허청 코레일 같은 국가기관 및 공기업, 청주대 단국대 백석대 등 대학의 창조경제 관련 내용이 실렸다. 지자체장과 기관장, 대학총장 인터뷰도 실렸다.

27일자 별지에는 전국 17개 창조경제혁신센터와 연계기업의 사업내용을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다. 한 면에 2~3개의 기업이 등장했다. 한국일보는 삼성/대구‧경북, 현대차/광주, SK/대전‧세종, LG/충북, 롯데/부산, 포스코/포항, KT/경기, GS/전남, 한화/충남, 현대중공업/울산, 한진/인천, 두산/경남, 효성/전북, CJ/서울, 다음카카오/제주, 네이버/강원 등이다.

31일자 지면에는 무기명으로 홍보기사가 대거 실렸다. 한국일보는 “개방과 공유를 바탕으로 한 ‘정부 3.0체제’가 구축되면서 기업들에도 경영혁신 바람이 불고 있다”며 LG유플러스 롯데백화점 아모레퍼시픽 한국가스공사 한국남동발전 한국산업인력공단 신한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IBK기업은행 한화생명 삼성생명 한국토지주택공사 등 12개 기업 및 기관이 창조경영과 사회공헌에 앞장서고 있다고 소개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한국일보 3월 18일자 별지 1면, 3월 27일자 별지 1면, 3월 31일자 19면, 3월 31일자 18면.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기업의 경영을 ‘창조경영’으로 포장하고,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특집으로 다루는 것은 한국일보만은 아니다. 매일 별지를 발간하는 메이저신문의 경우, 지면을 통해 창조경제를 홍보하고 기업을 대신 홍보하며 광고나 협찬금을 따낸다. 그러나 십여 일 동안 두 차례나 별지를 내면서 창조경제를 띄우고, 본지에까지 기업특집을 싣는 것은 이례적이다. 한국일보가 최근 창조경제를 집중 조명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30일 오후 한국일보 편집국에서 만난 고재학 편집국장은 최근 잇따른 창조경제 별지에 대해 “창조경제 특집 별지를 내지 않은 일간지가 거의 없다”며 18일자 별지는 충북지역본부가 자체적으로 판단해서 진행했고, 27일자는 편집국 차원에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27일자 별지 기획의도를 “박근혜 정부가 집권부터 ‘창조경제’를 밀었고 이것을 정리하는 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지역별로 있는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모아 정리하자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고재학 국장은 ‘지자체와 기업의 스폰(지원)을 받은 것 아니냐’는 <미디어스> 질문에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광고국에서 ‘특집이 나간다’며 영업했을 수는 있다”고 말했다. 그는 “메이저는 매일 별지를 내고, ○○신문 같은 마이너도 한 달에 서너 번 특집 별지를 낸다”며 “한국일보도 별지를 더 많이 내고 싶지만 광고가 붙지 않아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동화기업 인수 이후 ‘한국일보의 보수화’를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고재학 국장은 “창조경제 별지를 냈다고 한국일보가 우경화됐다느니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우리는 조건이 안돼 한 달에 2~3번 별지를 내지만 광고가 붙는다면 별지를 더 내고 싶다. (창조경제 별지가) 왜 기사거리가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30일) KT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열렸다. 다들 기사를 쓸 것이다. 이것도 문제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문제다. 고재학 국장 말대로 “창조경제론에 우호적이지 않은 신문”이 생존을 목적으로 별지를 발간하고 기자들에게 무기명 홍보기사를 쓰게 한면 꽤 심각한 문제다. “광고만 붙는다면 더 내고 싶다”는 편집국장의 태도는 그래서 위험하다. 별지와 기업특집을 광고영업의 결과나 수단으로 삼기 시작해선 곤란하다. 그러나보면 기자들은 어느새 자기검열을 하는 광고영업사원으로 전락하게 된다.

한국일보 신문을 보는 독자들에게 창조경제 별지는 어떤 도움이 될까. 한국일보의 늦바람이 하루 빨리 멈추기를 바란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한국일보가 걸어가겠다는 ‘언론의 바른 길’이 창조경제 띄우기는 아닐 것이다. 한국일보가 거하게 대우해야 할 사람, 파고 들어야 할 지점은 따로 있다. 한국경제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지면에 등장시켜야 하고, 창조경제로 포장한 각종 특혜를 분석해야 한다. 분투하고 있는 한국일보 기자들에게 ‘진짜 별지’를 내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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