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자원외교 및 기업 비리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이명박 정권의 관계자들을 향한 수사 방향이 보다 분명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검찰이 손대고 있는 사건의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정권이 의지만 가지면 전형적인 ‘전임 정권 수사’ 국면으로 넘어갈 조건들이 갖춰졌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상황이다.

검찰은 지난 27일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이로써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에 대한 수사가 눈 앞에 다가왔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검찰은 비자금 40억원 횡령 혐의로 24일 구속된 박모 전 상무의 혐의를 근거로 25일 해외토목공사 업무를 담당했던 최모 본부장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해 추가 증거를 확보했고 27일 비자금 조성 등의 의사결정에 관여할 수 있는 직책에 있는 김익희 전 부사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했다. 여기에 정동화 전 부회장 자택 압수수색을 더하면 정준양 전 회장에 대한 수사도 멀지 않았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정준양 전 회장은 이명박 정권 주요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있다. 특히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의 비자금 관리인으로 알려진 이동조 제이엔테크 회장과의 친분이 언론 지상에 오르내린다. 박영준 전 차관은 주지하다시피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이상득 전 의원의 최측근이다. 포스코건설에 대한 수사의 칼날이 이명박 정부 핵심인사들에까지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혹여 정준양 전 회장이 부실기업이었던 성진지오텍 등을 무리하게 인수·합병하는 과정에 정권 실세들의 입김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인정되면 박영준 전 차관이나 이상득 전 의원 등 소위 ‘영포라인’들에 대한 추가 구속 수사 등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된다.

이와 함께 화제가 되고 있는 건 동국제강의 비자금 조성 혐의에 대해 29일 검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는 소식이다. 동국제강에 대한 검찰수사는 회사 차원의 불법행위와 장세주 회장 회장 일가의 개인비리에초점이 맞춰졌다. 장세주 회장이 조성된 비자금으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도박을 해 50억원을 땄다거나 동국제강의 국내외 계열사가 일감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거래대금을 부풀렸다는 의혹 등이 제기된다. 재계 일각에서는 동국제강에 대한 수사 착수는 전임 정권과의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수사 대상을 일반 기업들까지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경남기업 역시 이명박 정권의 자원개발 사업에 대한 수사를 받고 있다. 경남기업이 러시아 석유개발 탐사사업 등 사업에 330억원, 아프리카 광산 사업에 130억원을 각각 융자한 과정에서 정부 지원금 일부가 엉뚱한 계좌로 흘러들어가 100억대 비자금이 조성된 정황이 있다는 의혹이다. 검찰은 이와 관련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지난 18일 경남기업을 압수수색한 바 있다. 검찰은 29일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을 조만간 검찰에 소환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남기업은 최근 수사선상에 오르면서 채권기관으로부터 추가 지원을 받지 못해 법정관리에 들어간 상태다.

▲ 이명박 전 대통령. (연합뉴스)

수사당국은 방위사업 비리를 향해서도 칼을 겨누고 있다.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은 지난 26일 경기 의정부시 도봉산 인근 임대용 컨테이너 야적장을 압수수색해 은닉돼있던 무기 중개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고 29일 밝혔다. 해당 자료에는 500억원 상당의 사업비를 부풀린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공군전자전훈련장비(EWTS) 관련 서류뿐 아니라 ‘불곰 사업’ 등 방위사업 관련 10년치 자료 등이 포함돼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규태 회장은 이 자료들을 숨기기 위해 자신의 사무실 책장 뒤편에 ‘비밀공간’ 까지 마련해뒀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결국 이러한 자료들의 존재가 드러남에 따라 이규태 회장을 중심으로한 방위사업 비리 수사는 상당한 탄력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수석을 지낸 인사의 개인비리에 대한 수사도 심상찮은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 검찰은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2011년 당시 교육부에 몸담고 있던 이모 전 청와대 교육비서관을 통해 모교인 중앙대의 본교-분교 통합, 적십자간호대 인수 등에 개입한 혐의를 잡고 중앙대와 교육부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박범훈 전 수석이 청와대 근무를 마친 이후 뭇소리재단 대표로 있으면서 재단 운영비 등 수억원을 횡령한 혐의와 학교 측 관계자들이 박범훈 전 수석에게 안건 승인 등을 청탁한 혐의 등에 대해 이 과정에서 대가를 제공됐는지 여부와 박범훈 전 수석의 딸이 중앙대 조교수로 채용된 과정, 양평 중앙국악예술원 토지 소유권 논란 등에 대해서도 수사를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위까지 거론하고 나섰다. 새정치민주연합 홍익표 의원은 지난 19일 검찰이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의 해외자원개발 관련 미공개 정보 이용 혐의를 검찰이 무혐의 처분한 것을 두고 ‘부실수사’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조현범 사장이 지난 2007년 2월 자신과 친한 김모씨가 경영자인 엔디코프의 주식 7억원어치를 본인과 일가 명의로 매입했는데, 이 당시 앤디코프가 해외자원개발업을 사업목적으로 추가했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 증권선물위원회는 2008년 6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부당이득 취득 혐의로 조현범 사장을 검찰에 수사의뢰했다. 검찰은 이에 대해 조현범 사장이 투자자문사를 통해 간접투자를 했고 해당 자문사는 투자포트폴리오에 따라 앤디코프에 분산투자를 했을 뿐이라고 보고 무혐의로 처분한 바 있다.

일부 시민단체의 경우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 기록물을 사저에서 열람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29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회고록인 <대통령의 시간 2008~2013>을 집필하면서 임기 마지막날 사저에 설치한 대통령 기록 온라인 열람 장비를 이용해 ‘대통령지정기록물’을 들여다본 정황이 있다고 주장했다. 해당 내용을 집필하기 위해선 국가기록원에 공식적으로 요청한 상태에서 기록물을 열람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접촉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인 검찰은 중앙대 등 주요 거점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연합뉴스

이 단체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 비밀기록 및 대통령지정기록으로 관리됐을 것으로 유추되는 내용이 직접적으로 언급돼있다면서 회고록을 통해 사실상 비밀을 누설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이 단체는 특히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날인 2013년 2월 24일 서울 강남구 사저에 대통령 기록물 열람을 위한 장비를 설치한 것으로 드러났다고도 주장했다.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해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은 법 위반 사항이 없도록 회고록을 집필했다는 취지의 반론을 내놓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이명박 정권 시기 노무현 전 대통령 등과 대통령기록물 열람에 대한 충돌이 벌어졌던 과거를 상기시키기 때문에 논란은 식지 않고 있다.

수사당국의 자원외교, 방산비리, 대기업 비자금 등에 대한 전방위적 수사와 야당 및 시민단체들의 움직임으로 이명박 정권의 주요 인사들을 향한 칼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가운데 세간에서는 이명박 정권 실세들이 어느 수준까지 피해를 볼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런 저런 추측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지나치게 수사내용이 방대해 오히려 ‘용두사미’로 상황이 끝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박근혜 정권과 수사당국의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나온 의혹들을 어떤 형식으로든 정리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이명박 정권의 주요 인사가 구속되는 등의 사태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눈길은 이명박 전 대통령 본인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쏠리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