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결국 4·29 재보궐선거에서 서울 관악구 을 지역구에 출마하기로 했다. 정동영 전 장관은 올해 하반기 창당을 예정하고 있는 국민모임에서 인재영입위원장을 맡고 있으나 선거법상으로는 ‘무소속’인 상태로 출마하게 됐다.

정동영 전 장관은 30일 오전 여의도 ‘대륙으로 가는 길’ 사무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4·29 재보궐선거를 “이대로가 좋다는 기득권 정치세력과 이대로는 안 된다는 국민 간의 한판 대결”로 규정하며 “저를 도구로 내놓겠다. 정면승부를 벌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선후보였던 정당 떠나고 '불출마' 번복 모양새, '구태'인가 대안 만드는 '혁신' 과정인가

정동영 전 장관은 기득권 보수정당 체제를 깰 것이라면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을 싸잡아 비난했다. 이는 최근 새정치민주연합이 중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중도 공략’을 근거로 진보정치의 정당성을 내세우면서 자기가 대선후보로 몸 담았던 정치세력을 떠난 이유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동영 전 장관은 자신의 출마가 야권의 분열로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 야권의 분열이 아니라 야권의 혁신을 이루겠다며 국민모임이 4·29 재보궐선거에 사실상 후보를 내지 못할 경우 대안야당을 건설하겠다는 자신들의 계획이 무력화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렇게 보면 그간 ‘불출마’ 의사를 반복해서 피력하던 정동영 전 장관의 말바꾸기는 국민모임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상황 자체가 기성 정치권의 구태를 반복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는 것 또한 명백하다. 정동영 전 장관 측의 관계자들은 출마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서울 관악구 을 선거구에 출마한 새정치민주연합 정태호 후보가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에게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언급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의 경쟁력에 의문이 제시되는 상황에서 야권의 승리를 위해 정동영 전 장관의 출마가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 국민모임의 정동영 전 의원(왼쪽 둘째)이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자신의 사무실에서 가진 4ㆍ29 재보선 출마 기자회견에 참석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층 상당수 정태호 지지 않는 현실 반영?

일부 여론조사 결과를 고려하면 정태호 후보는 서울 관악구 을 선거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정당지지율보다 낮은 지지를 얻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업체 비전코리아가 28~29일간 해당 선거구 유권자 741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무작위 추출 유선ARS방식, 유선전화 84% 핸드폰 패널 16%, 인구통계기준 가중 보정,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7%p, 응답률 3.4%)에서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는 45.7%를, 새정치민주연합 정태호 후보는 29.8%의 지지를 획득했다. 이 조사에서 정당지지도는 새누리당이 42.9%, 새정치민주연합은 34.7%로 조사됐다. 즉,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층의 상당수가 정태호 후보를 지지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후보 개인의 특성이나 인지도라는 요소에 의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조직적 문제’라는 틀에서 바라볼 필요성이 있다. 정태호 후보는 새정치민주연합 내 경선에서 김희철 후보를 0.6%차로 꺾고 승리한 바 있다. 김희철 후보는 2012년 총선에서 통합진보당과의 단일화에 불복해 무소속 출마를 강행한 바 있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야권연대의 피해자였던 셈이다. 정태호 후보는 ‘친노’로 분류되고 있다. 즉, 이런 구도를 보자면 경선에서 김희철 후보를 지지했던 흐름이 정태호 후보를 온전히 지지하거나 적극적인 선거운동에 나설지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여론조사 결과로 표현되고 있는 것 아닌가 분석할 수 있단 얘기다.

정동영 전 장관은 과거 대통합민주신당 창당 때부터 이른바 ‘친노그룹’과 대립해왔고, 전북 전주에서 무소속 출마로 당선된 이후에도 복당 여부를 놓고 당시 ‘범친노’로 분류됐던 정세균 대표 체제의 인사들과 충돌한 바 있다. 이런 전력 덕분에 정동영 전 장관은 ‘비노 정치인’으로 규정되고 있고 호남에 주요 정치기반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에 서울 관악구 을이라는 지역구의 정치적 특성상 정태호 후보보다 나은 확장성을 주장할 수 있는 게 사실이다.

'비노·호남'출신 확장성 감안해 출마 결정한 것이라면 그 자체가 '대안'과 어울리지 않아

그러나 이런 구도 자체가 ‘대안야당’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인데다 정동영 전 장관의 출마가 이후 진보정치의 재편 구도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인지는 미지수라는 게 문제다. 정동영 전 장관과 국민모임은 최소한 현재 서울 관악구 을에 출마를 선언한 상태인 정의당 이동영 후보와 노동당 나경채 후보를 주저 앉혀야(?) 한다. 문제는 국민모임 입장에서 이들의 선거 포기에 대한 반대급부로 내밀 수 있다는 게 많지 않다는 것이다.

정의당은 정동영 전 장관의 출마가 가시화되자 “국민모임과 동지적 연대로서 제3대안세력에 대한 국민 열망에 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는데 이는 정의당 후보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출마를 강행한 정동영 전 장관을 비난하기보다는 서울 관악구 을 선거구를 양보하더라도 광주 서구 을 선거구나 인천 서구·강화군 을 선거구에서의 협력을 요구하는 모양새로 해석된다. 그러나 국민모임이 이들 지역에 출마할 후보군조차 제시하지 못한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선거전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는 미지수다.

결국 정동영 전 장관의 출마는 ‘정동영·천정배’라는 상징적 인물들의 국회 입성을 통해 ‘국민모임 이후’를 도모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어 진보정치의 개편 기획에는 그리 큰 긍정적 영향을 주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이러한 행보는 과거 ‘천신정’을 떠올리게 하는 제1야당 개혁론이나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에서 제기되는 ‘호남신당 창당’ 주장에 이들이 호응하는 것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점치게 한다.

정동영·천정배 국회 입성 상징성 택한 국민모임, 잘 해야 '제1야당 개혁론'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의 입장에서는 정동영 전 장관이 진보정치를 개편하는 것보다 이러한 행보를 걷는다면 더 비판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 쉽게 말하면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의 분열이 가속화되는 더 골치아픈 상황이 전개될 것이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주요 인사들이 정동영, 천정배 전 장관이 당의 수혜를 많이 입은 정치인임에도 신의를 저버리고 무소속 출마를 선택했다는 점을 맹비난하고 있는 점에는 이런 맥락이 반영돼 있을 것이다. 특히 정동영 전 장관은 2007년 대선에서 제1야당의 대통령 선거 후보였다는 점에서 더욱 어떠한 행보를 하더라도 '이탈'의 정당성을 말하기 어려운 처지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정동영 전 장관의 출마 강행은 결국 두 가지 점에서 그의 이후 행보에 장애물로 작용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진보정치의 개편이라는 측면에서도, 제1야당이 포괄하는 영역의 한 분파라는 측면에서도 내세울 명분이라는 게 크지 않다. 이런 난점을 뻔히 알면서도 출마를 강행하는 정동영 전 장관이 앞으로 어떤 ‘묘수’를 통해 어려움을 타개할 지 관심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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