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 간 키스씬을 방송한 JTBC <선암여고 탐정단>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를 받았다. 지난 3월 25일 방송심의소위원회에서는 <선암여고 탐정단>의 11화(2월 25일 방송)와 12화(3월 4일 방송)를 대상으로 방송심의규정 제25조(윤리성) 1항과 제27조(품위유지) 5호, 제28조(건전성), 제35조(성표현) 1·2항, 제43조(어린이 및 청소년의 정서함양) 1항 등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심의했다. 심의에는 방송심의소위원회 소속 위원 5인 전원(김성묵 부위원장(소위원장), 장낙인 상임위원, 고대석·박신서·함귀용 위원)이 참석했고 의견진술을 하기 위해 JTBC 여운혁 책임프로듀서도 참석했다.

▲ JTBC '선암여고 탐정단' 홈페이지
<PD저널>은 25일 심의 현장의 모습을 보도했는데, 여운혁 PD는 의견 진술에서 “시청자들을 즐겁게 할 의무가 있는데 방송을 보고 많은 분들을 불쾌하게 한 것 같아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표현 방법이 잘못됐고, 사과한다”와 같은 말을 하며 연거푸 사과했으나 세 명의 위원(김성묵 부위원장, 고대석·함귀용 위원)에게 법정 제재인 ‘경고’를, 박신서 위원과 장낙인 상임위원에게 행정지도인 ‘주의’와 ‘권고’를 각각 받았다(합의는 되지 않아 전체회의에서 다시 논의될 예정이다).

심의 위원들이 연출한 코미디는 이미 많은 언론에서 다뤘으니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 이 글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심의 위원들이 <선암여고 탐정단>이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상 위반한 게 아닌지 심의하고 있는 몇 개 안 되는 조항(제25조(윤리성) 1항과 제27조(품위유지) 5호, 제28조(건전성), 제35조(성표현) 1·2항, 제43조(어린이 및 청소년의 정서함양) 1항)이 아니라, 오히려 여고생 간 키스씬을 내보냄으로써 다른 방송이 지키지 못한 수많은 규정들을 얼마나 잘 지켰는가 하는 점이다.

JTBC <선암여고 탐정단>은 ‘방송의 공적책무’를 가장 잘 지켰다

먼저 <선암여고 탐정단>은 제7조(방송의 공적책임)를 아주 잘 지켰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잘 지킨 항은 다음과 같다.

제7조 1항: 방송은 국민이 필요로 하고 관심을 갖는 내용을 다룸으로써 공적매체로서의 본분을 다하여야 한다.

국제 여론조사 연구기관인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에서 조사해 발표한 보고서 <동성애에 대한 국제적 인식차(The Global Divide on Homosexuality)>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3년까지 6년 동안 “사회가 동성애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대답한 비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증가한 나라는 바로 대한민국이라고 한다. 2007년 18%에서 2013년 39%로 무려 21%나 증가했는데, 2위인 미국(11% 증가), 3위인 스페인(10% 증가)과 큰 격차가 있는 숫자다. 연령별 분석은 더욱 놀랍다. 한국의 경우 50대 이상은 16%만이 동성애자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대답했지만, 30대-40대는 절반 정도가(48%), 20대(18~29세)는 무려 71%가 동성애자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대답했다(이 통계를 보면 “대다수가 혐오감을 느꼈다”는 함귀용 위원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오늘날 한국에서 성소수자인 친구를 가진 사람은 여운혁 PD 뿐만이 아니다. 국민이 동성애자를 포함한 성소수자의 사회적 포용에 대해 갖는 관심은 급격히 커지고 있고, 그 내용을 방송에서 다뤄야 할 필요성도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동성 간 사랑에 대해 방송하며 “공적매체로서의 본분”을 다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별로 없다. 반면 <선암여고 탐정단>은 이 규정을 참 잘 지켰다.

▲ JTBC '선암여고 탐정단' 키스신 장면 캡처
제7조 3항: 방송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고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를 유지하는데 이바지하여야 한다.

유엔은 2013년 7월부터 성소수자(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차별을 없애기 위한 캠페인 ‘Free & Equal’을 진행하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은 자유롭고 평등하며, 온전한 존엄성과 권리를 갖고 태어난 사람들이며, 보호와 존중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심의 회의에서 장낙인 상임위원이 말했듯, <헌법> 제11조(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 한다)와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가 누구든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 받지 않을 권리가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성소수자가 시청자로서의 권리를 누리는데 차별을 받지 않도록 성소수자의 삶의 모습도 방송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되거나 삭제되지 말아야 한다. <선암여고 탐정단>만큼 이 규정을 잘 지킨 프로그램이 요즘 몇이나 되는가.

제7조 4항: 방송은 국민의 화합과 민주적 여론형성에 이바지하여야 한다. / 제7조 10항: 방송은 다양한 의견과 사상을 적극적으로 다루어 사회의 다원화에 기여하여야 한다.

볼테르는 “나는 당신의 견해에 반대한다. 하지만 당신이 그 견해를 말할 권리를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4항이 말하는 ‘국민의 화합’은 심의위원들이 재차 말하듯 “나는 동성애에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해서 반대편의 목소리를 삭제하고 억누르는 식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민주적 여론형성’이란 오히려 논란이 일고 사회적 파장이 생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사실 여운혁 PD는 질의응답 과정에서 이러한 의도를 말했다. 심의위원들은 싫어했지만.

“방송은 상대적으로 소수 계층의 이익을 충실히 반영해야 한다”

제7조 8항: 방송은 상대적으로 소수이거나 이익추구의 실현에 불리한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을 충실하게 반영하여야 한다.

더 말이 필요한가?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2014)’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성소수자의 93.4%가 한국 사회가 성소수자에 대해 적대적이라고 느끼며, 87.3%가 공적 영역에서 성소수자 혐오적인 말을 듣고, 73.7%가 커밍아웃 이후 차별과 신체적 폭력을 경험한다. 이래도 성소수자가 소수자가 아닌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심의하지 않는 수많은 프로그램들은 과연 소수자의 이익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가?

제 7조 뿐만이 아니다. <선암여고 탐정단>은 다음 두 조항도 잘 지켰다.

제9조(공정성) 5항: 방송은 성별․연령․직업․종교․신념․계층․지역․인종 등을 이유로 방송편성에 차별을 두어서는 아니된다. 다만, 종교의 선교에 관한 전문편성을 행하는 방송사업자가 그 방송분야의 범위안에서 방송을 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제30조(양성평등) 1항: 방송은 양성을 균형있고 평등하게 묘사하여야 하며, 성차별적인 표현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2013년 tvN <몬스타>라는 드라마에서 청소년들의 이성 간 키스 장면을 청소년 보호시간대에 30초 정도 방영했을 때는 행정지도인 ‘의견 제시’ 조치를 내렸는데, 청소년 보호시간대도 아닌 시간에 방영된 동성 간 키스에는 그보다 더 높은 수준의 법정제재인 ‘경고’를 주는 것이 차별이 아니면 무엇인가. “논란이 되는 동성애를 굳이 소재를 써야 했나?”하고 묻는 고대석 심의 위원은 이 규정을 과연 알고 있을까. 그가 내린 ‘경고’조치가 이 규정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성소수자를 다루지 않아 이 규정을 어기고 있는 수많은 방송들은 과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가?

제9조 5항의 차별 금지 사유 항목에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이 빠져 있기 때문에 이 규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국제인권규범에서는 이미 ‘성별’이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여긴다(자유권규약 일반논평20, 2009). 그렇기 때문에 제30조 1항의 ‘양성’ 또한 성소수자를 포함하는 것으로 볼 수 있고, “균형있고 평등하게” 성소수자의 삶도, 사랑도, 성적 표현도 비성소수자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묘사해야 한다.

심의 위원들은 <선암여고 탐정단>이 제43조(어린이 및 청소년의 정서함양) 1항(방송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좋은 품성을 지니고 건전한 인격을 형성하도록 하여야 한다)를 어겼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두 칸 아래의 제43조 3항(방송은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사회의 관심과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이바지하여야 하며, 특히 경제적․사회적․문화적․정신적․신체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도록 노력하여야 한다)은 참 잘 지켰다.

한국은 성소수자 청소년의 두 명 중 한 명이 자살을 시도하는 나라다(강병철·하경희, 2005; 강병철·김지혜, 2006).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또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해서, 자신을 정의할 ‘동성애자’ 혹은 ‘트랜스젠더’라는 용어를 알지 못해서 오랜 세월을 어둠 속에 갇혀 지내야 하는 성소수자 청소년이 셀 수도 없이 많다. 방송에서 자신과 같은 사람을 볼 수 있다면, 그 모습 그대로도 괜찮고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걸 안다면 적어도 두 명 중 한 명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진 않을 것이다. 과연 이렇게 “어려운 처지”에 있는 성소수자 청소년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도록 하지 않는 다른 방송들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심의하고 있는가? 성소수자 청소년에 대해 이례적인 관심을 기울인 <선암여고 탐정단>은 제재가 아닌 상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닐까?

JTBC <선암여고 탐정단>, 이 정도면 상을 받아야 하진 않을까?

함귀용 위원은 동성애가 “정신적 장애”라고 당당히 말했지만(그 자리에 있던 기자들은 실소를 내뿜었다), 학계에서는 이미 몇 십 년 전에 동성애가 정신 질환이 아님이 밝혀졌다(<정신 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에서는 1973년에, ‘국제질병분류(ICD)’에서는 1990년에 삭제되었다). 얼마 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렸던 “탈동성애 인권포럼”에 참가한 사람들은(이들과 심의 요청 민원을 넣은 사람들이 과연 다른 사람들일까) “동성애자를 치료하는 것이 동성애자를 위한 진정한 인권”이라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미국정신의학회와 미국심리학회는 소위 “동성애 치료”로 불리는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성적지향을 바꿀 수 있다거나 그러한 치료가 정신/심리학적으로 안전하다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둔 어떠한 신뢰할 수 있는 연구도 나온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으며, 오히려 성소수자에 대해 부정적인 사회 분위기를 조장하고 편견을 강화 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하고 있다.

동성애자가 이성애자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이성애자도 동성애자가 될 수 없다. 만약 TV에서 동성 간 키스 장면을 보여준다고 그걸 본 이성애자가 동성애자가 된다면, 평생 TV에서 이성 간 키스 장면만 보고 자란 한국의 수많은 동성애자들은 어떻게 설명할 텐가? 그들도 이성애자가 되었어야 하는 게 아닌가?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어떤가? 한국에서 방송되는 프로그램 중에 이 만큼이나 방송심의규정을 잘 지키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을까? 그렇다면 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 규정들을 지키지 않는 프로그램은 심의하지 않으면서 청소년의 동성 간 키스씬에는 이토록 민감하게 구는 것일까? 김성묵 부위원장이 말하듯 어떤 “의도”가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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