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2시 30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한국언론정보학회가 주최한 <종편채널과 외주제작 환경 변화> 세미나가 열렸다. 2011년 말, 빛나는 청사진을 내걸고 TV조선, 채널A, JTBC, MBN 종편 4사가 개국한 이후 과연 외주제작 환경이 얼마나 변화했는지를 알아보는 시간이었다.

답은 싱거웠다. ‘실패한 정책이라고 볼 수 있는 지상파 중심의 외주제작 정책이나 방송 독립제작 관행이 그대로 이식돼, 종편 역시 여러 문제점에 봉착해 있기’ 때문에, 종편과 외주제작사 상생을 위해서는 △외주 공모 및 저작권 배분을 명시한 동등한 협력관계의 표준계약서 확립 △안정적·자율적 외주제작 시스템 도입 △방송환경 변화에 따른 외주제작사의 콘텐츠 비즈니스 모델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 24일 오후 2시 30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한국언론정보학회 주최로 <종편채널과 외주제작 환경 변화> 세미나가 열렸다. (사진=미디어스)

최선영 서울디지털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초빙교수, 한희정 국민대 교양대학 조교수는 △종편 출범 이후 외주제작 환경 변화 △지상파와 종편의 제작 여건 비교 △언론사 조직관행과 외주제작 △종편 프로그램 획일화에 대한 현장 종사자들의 인식 등을 주제로 인터뷰를 진행해 <종합편성채널 출범 이후 독립제작 환경의 변화>를 발제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외주제작 환경의 문제점과 개선 사항이 변하지 않았다는 자조가 나오기도 했으나, 이날 세미나는 종편 관계자,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 독립PD, 프리랜서 방송작가 등 종사자들이 직접 말하는 ‘현장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공개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예고 없는 조기종영 ‘폭탄’에 초기 부침 심각

연출경력 14~22년차 독립PD 4명, 경력 15~20년차 프리랜서 방송작가 2명, 경력 15~20년차 드라마제작사 관계자, 외주제작 업무를 맡고 있는 종편 4사 종사자 5명 등 총 13명이 인터뷰에 참여했다.

우선 종편 프로그램 기획과 연출에 참여했던 독립PD들은 개국 초기 종편에서는 예고 없는 조기종영 혹은 폐지가 이어져 어려움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종편은 초기 평균 시청률이 0.3~0.6%대에 그쳤고, 종편 4사는 시청률 부진을 이유로 개국 한 달 여만에 25개 프로그램을 조기종영해 도마에 오른 바 있다. 당시 독립제작사협회에서는 “일방적인 조기종영 통보, 들쑥날쑥한 편성 등 종편 횡포에 독립제작사들이 빚더미에 나앉았다”며 종편 4사에 피해보상 및 불공정 계약 개선을 요구하기도 했다.

“보통 지상파에서는 파일럿 제작을 하고 정규 편성을 결정하면 최소 4회분에서 3개월을 제작하는 것으로 계약하죠. 그런데 종편채널 초기에 별의별 황당한 일을 다 겪었어요. 파일럿 프로그램을 만들고 나서 정규편성이 확정되어 3회차 프로그램을 녹화하려고 출연자까지 대기실에 다 왔는데, 갑자기 종편채널 책임 프로듀서가 전화로 ‘프로그램 폐지되었으니 녹화하지 말라’고 해서 황당했었죠. ‘와, 정말 종편사3(채널명)스럽다’라고 하면서 그냥 웃었죠”
- 14년차 독립PD D씨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종편사1 같은 경우에는 방송 준비하고 있는데 스튜디오 바로 빼는 경우도 있었고 종편사2도 마찬가지였죠. 초창기는 좋게 이야기하면 시행착오라지만 양아치 짓 많이 한 거라고 볼 수 있죠. 처음에는 종편에서도 큰 제작사들만 상대를 했죠. 종편사 2 같은 경우에도 개국하기 1년 전부터 기획안을 모집했죠. 하지만 끼어들었다가 다 엎고…”
- 22년차 독립PD B씨

시청률에 민감한 종편, 제작비 현실화 이뤄냈지만 ‘계약 해지 합의서’도 탄생시켜

외주제작 종사자들은 종편 출범 이후에도 “외주제작 시스템은 절대 변한 게 없다”(경력 15년차 프리랜서 방송작가 F씨)거나 “여전히 온에어(방송) 되는 날까지 기약 없는 밤샘 작업을 한다”(경력 14년차 독립PD 씨)는 반응을 보였으나, 종편이 지상파에 비해 제작비 현실화를 이뤄냈다는 점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독립PD B씨는 “지상파도 요 몇 년 동안 제작비를 많이 주는 건 아니기 때문에 비교해 보면 지상파 수준의 110~120% 정도까지 될 수 있다”며 “종편 프로그램 만드는 제작사는 솔직히 형편이 좋아졌고 거기도 못 들어간 회사는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목표 시청률을 넘기면 격려금을 지급하는 인센티브제에 대한 평가도 긍정적이었다. 일부 종편은 목표 시청률을 넘기면 회당 300만원, 500만원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종편 평균 시청률이 높아짐에 따라 목표 시청률도 같이 높아지고 있지만, 열악한 외주제작 환경에서 ‘고무적’이라는 것이다.

경력 15년차 독립PD A씨는 “목표 시청률을 넘긴다고 해서 종편이 사업적으로 광고가 더 붙고 하지는 않다. 어떤 면에서는 자기 출혈을 감수하는 것”이라며 “전체적인 시청률을 부양시키기 위해서 인센티브, 말 그대로 당근을 던지는 것이다. 종편 내부 직원들 옆에 현금 세는 계수기가 있는데 그걸로 세서 현찰로 정말 바로 준다”고 말했다.

▲ 종편 4사 로고

하지만 이는 ‘상대적인 만족’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최선영·한희정 교수는 “2000년대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지상파의 외주제작비 삭감이 시작됐고, 이후 지상파와의 관계 하에 외주제작시장이 교란됐다”며 “그동안 지상파가 외주제작 예산과 제작비를 지나치게 삭감하고 낮게 책정한 것에 기인한 것으로 해석되고, 이에 따라 기대치가 낮아진 탓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청률에 민감한 종편은 좋은 성과를 냈을 때 ‘당근’을 주는 한편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경우 조기종영할 수 있는 ‘계약 해지 합의서’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종편사3 관계자는 “1, 2회 정도 방송했는데 도저히 (시청률 때문에) 못 가겠다고 판단이 들면 계약 해지 합의서를 미리 쓴 다음에 해지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저희가 갑이지 어떻게 제작사가 갑이겠나”라면서도 “대신 그걸 쓰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보면 된다. 저희 프로그램은 100회 돌파한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외주제작 종사자가 바라보는 종편의 순기능과 역기능

독립PD A씨는 “제작사 입장에서 굳이 종편의 순기능을 말하자면 제작사하고의 관계가 유연해지고 협력적으로 바뀌었고, 저작권을 바라보는 틀이 바뀐 것이다. 종편이 균열을 일으켜 분위기는 만들었다. (제작사와) 협상해서 어느 정도까지는 너희 저작권, 어느 정도까지는 우리 저작권 이런 것이 있다”고 밝혔다.

또한 “종편이 ‘융합’을 시킨 것은 있다. 수직적인 위계질서를 없애버린 건 있다. 제작사와 협력하지 못하면 방송을 못하니까…”라며 “결국 사람이 인프라라는 것을 아니까 그런 건데 종편은 제작 환경에서 ‘사람’이 약한 구조라 어쨌든 제작사를 끌어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많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종편 4사 모두 출범 당시 내세웠던 ‘종합편성채널’을 통한 방송 다양성 확보를 이뤄내지 못했고, 전체적인 프로그램의 질 저하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종편 편성 담당자가 원하는 소재는 단순해요. 미장원 잠담 같은 중년 여성 대상의 포맷을 요구해요. 이걸 우리는 이른바 ‘떼샷, 떼토크’라고 하죠. 특히 검증되지 않은 몸에 좋은 것에 대한 소재는 자극적일수록 좋아해요. 자연에서 사는 사람들이나 특이하게 사는 노인, 귀신, 심령, 엽기 사건… 이런 것들을 가져가면 좋아하죠”
- 20년차 방송작가 E씨

“사실 지상파에서 한 다큐, 기록물 등 전통적으로 (교양)PD들이 해 오던 것들을 종편이 살려줬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오히려 종편은 정통 다큐멘터리나 진지한 기록영상 그런 류는 더 손을 안 대죠”
- 22년차 독립PD B씨

한 곳을 제외한 종편 3사는 채널 정체성이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독립PD D씨)는 업계의 반응을 종편 4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종편 관계자 대부분은 ‘종합편성채널’이라는 방향을 유지하거나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종편사3 관계자 K씨는 “경영적 판단으로 보도 비중이 일부 늘어난 거지만 앞으로 계속 보도를 유지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며 “제작 비율도 늘어나고 있고 시청 타깃도 계속 올드한 건 아니고 젊은 층까지 흡수할 수 있는 그런 부분을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종편사4 관계자 M씨는 “외부에서 봤을 때는 다 (편성) 해야되겠지만 저희 입장에서는 시장 자체가 여물지 않았는데 몇 천억씩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겠나. 적자도 줄이고 시청자 습관도 잡히고… 지금은 죽기 아니면 살기다. 지상파도 드라마 10% 시청률이 힘들다. 규모의 경제에 맞게 써야 하는데 허투루 마구 쓸 수 없다”면서도 “적자 규모가 줄고 있으니 올 하반기에 (드라마를) 시도해 볼 것도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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