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자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4차전에서 결정전 MVP로 선정된 박혜진 ⓒ연합뉴스
우리은행이 적지 청주에서 여자프로농구 통합우승 3연패를 달성했다. 동시에 신한은행과 동률을 이루는 통산 우승기록도 함께였다. 우리은행은 비록 가장 중요하다는 1차전에서 패배했지만 강력한 수비와 체력을 무기로 가용, 식스맨이 부족한 KB스타즈의 약점을 통렬하게 파고들어 대업을 이룰 수 있었다. 원정의 무덤이라는 청주 홈팬들의 뜨거운 응원도 우리은행의 기세를 꺾지는 못했다.

우리은행의 승리에는 박혜진이라는 얼음보다 냉철하고 강철보다 단단한 선수가 있었다. 물론 우리은행의 득점 1위는 외국인선수 휴스턴이었지만 상대팀 KB스타즈에 심리적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힌 선수는 또치 박혜진이었다. 챔프전의 마지막이 된 4차전에서만 중요한 시기마다 삼점슛 3개를 성공시키며 KB스타즈의 추격을 저지했다. 박혜진이 챔프전의 MVP가 된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이로써 박혜진은 정규리그와 챔프전 MVP를 모두 거머쥐며 2014-2015 시즌 최고의 선수임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그러나 이번 챔프전의 진정한 주인공은 KB스타즈 변연하였다. 플레이오프부터 챔프전까지 부상으로 잠시 공격을 쉬고 있었던 변연하의 득점본능이 깨어난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득점이라는 것이 아무 때나 원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큰 경기에 강한 변연하의 존재감이 빛났던 경기들이었다.

비록 팀이 우승 도전에 실패했지만 살아있는 레전드 변연하의 위엄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1차전부터 마지막 4차전까지 변연하는 어린 선수들보다 더 열정적으로 코트를 누볐다. 유독 슛감이 좋지 않았던 3차전을 제외하고는 모두 고득점을 올려주었다. 특히 4차전에서는 불꽃같은 삼점슛 5개를 꽂아 넣으며 절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겠다는 투혼을 보이기도 했다.

2,3차전에서의 무력한 패배 후 마지막에 몰렸던 4차전의 변연하는 경기 전 서동철 감독에게 40분을 다 뛰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했다. 그렇지만 감독으로서 노장 변연하를 풀타임을 뛰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휴식을 위해 잠시 벤치로 불러들이기도 했지만 1분도 채 쉬지 못하고 다시 코트에 서야 했다. 그 잠깐의 시간에도 팀이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변연하는 4차전에 뛴 양팀 선수들 중에서 가장 오랜 시간 코트를 지켰다.

▲ KB스타즈 변연하 ⓒ연합뉴스
80년생, 올해 36살의 노장선수의 눈부신 투혼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챔프전의 가치는 충분했다. 단지 투혼만 보인 것이 아니다. 변연하는 이를 악물고 우리은행의 찰거머리 수비를 따돌리며 슛을 쏘아 올렸다. 삼점슛을 10개를 던져 반을 성공시켰다. 한 명 터지면 모두 다 터진다던 KB스타즈의 양궁농구의 법칙은 그러나 오작동됐다. 오직 변연하만 터졌다. 특히나 변연하와 함께 터져줬어야 할 홍아란의 부진이 무엇보다 아쉬운 결과였다.

승부가 정해진 상황에서도 변연하가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 것은 아마도 레전드의 자존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한 정규리그에 부상으로 10경기를 빠지면서 후배들이 자신의 자리를 메우느라 고생했던 것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더라도 후회 없을 경기를 하고 싶었을 것이며, 후배들에게 기술이 아니라 농구혼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변연하의 눈빛에는 우승보다는 홈에서 우리은행의 축포를 터뜨리게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번득였다. 그의 결연한 투혼에 열광적인 응원을 보냈던 홈팬들 역시 패배의 아쉬움을 덜 수 있었을 것이다.

올 시즌 부상으로 결장도 많았고, 거기다가 리딩이 약한 팀 사정으로 공격보다 조율에 더 힘을 썼던 변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00경기 출장, 2000어시스트, 정규리그 최다시간 출장 등 여자프로농구의 기록을 새로 쓰게 했다. 다음 시즌에 변연하는 삼점슛 1천개(현재 962)와 8천득점(현재 7544) 등에 도전한다. 살아있는 레전드 변연하의 농구는 계속될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