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효종, 이하 방통심의위)가 웹툰사이트인 레진코믹스를 음란사이트로 규정해 ‘접속 차단’했다가 논란이 일자 하루 만에 철회하면서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방통심의위는 그동안 정부 비판적 방송프로그램에 대한 표적·정치심의로 끊임없이 논란이 됐다. 종편의 정부편향 시사보도 프로그램 봐주기 심의를 비롯해 MBC <무한도전> 등 코미디 프로그램에 대한 ‘꼰대심의’ 논란도 많았다. 그런데, 레진코믹스 사태는 '통신 심의'라는 점에서 이들과는 또 차원이 다른 문제다. 방송심의는 홈페이지를 통해 안건이 공개되는 등 상대적으로 투명하게 드러나지만 통신심의는 그렇지 않다. 어떤 사이트들이 차단되고 난 이후에나 어떤 이유들로 접속 차단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레진코믹스도 그랬다.

▲ 레진코믹스 블로그 화면 캡처

방통심의위는 지난24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7(불법정보의 유통금지 등) “음란한 내용의 정보를 유통해선 안 된다”, <정보통신에 의한 심의규정> 제8조(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 위반 등)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를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는 남녀의 성기 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정보를 유통해선 안 된다”는 근거를 들어 레진코믹스에 대한 접속차단을 의결했다. 하지만 자신들이 심의대상인지 조차 몰랐다는 것이 레진코믹스의 설명이다.

레진코믹스는 회원을 700만명이나 되는 사이트로 접속 차단이 사회적 ‘화제’가 되어 그나마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소리 소문 없이 접속차단되는 다른 사이트들과 비교해 운이 좋은 편이라고 봐야 할 상황이다.

레진코믹스 ‘접속차단’ 그리고 번복, 방통심의위의 뻘짓…끝나지 않은 논란

레진코믹스는 레진엔터테인먼트가 운영하고 있는 웹툰사이트이다. 700만명의 회원이 가입돼 있는 레진코믹스는 ‘창조경제의 모범사례’라는 이유로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국무총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레진코믹스는 신인작가들이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공간과 기회를 제공해 정부와 업계에서 호평을 받아왔다. 특히, 신인작가들의 등용문이면서 재정적인 부분까지 해결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모델로서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그런 사이트가 방통심의위에 의해 하루아침에 ‘음란사이트’로 규정되고 접속차단 결정이 내려졌던 것이다. 논란이 일자 방통심의위는 결정은 번복해 25일 곧바로 ‘접속차단’ 결정을 취소했지만 방통심의위로서는 내상이 깊지 않을 수 없게 됐다.

▲ 레진코믹스 사이트 홈페이지 캡처

 

방통심의위 홍보팀 관계자는 레진코믹스 접속차단과 철회에 대해 “그동안 음란만화에 대해 심의를 진행해왔고 레진코믹스 또한 민원이 들어왔었다”며 “언론에서 이야기되는 수준이 아니라 해당 웹툰에는 구체적인 성기와 가학적 성행위 묘사가 드러난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심의과정에서 부분적인 (음란)요소요소만 차단했으면 좋았을 텐데 (사이트 자체를 접속차단하는) 과잉부분이 있어서 일단 철회를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방통심의위는 규정에 따른 것으로 레진코믹스 심의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면서 “유통되는 웹툰 중 명백한 음란물이 있다는 점에서 사업자 협조를 구해 ‘자율규제’ 혹은 ‘부분차단’ 등 방법들을 검토해 시정요구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해당 웹툰 장면이 명백한 ‘음란물’이라는 것이 방통심의위의 입장이라는 얘기다. 레진코믹스 심의 논란은 끝나지 않은 셈이다.

레진코믹스를 둘러싼 논란은 정치권에도 튀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유승희 최고위원은 방통심의위가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법률> 제25조(제재조치 등) “심의위는 시정요구를 정하려는 때에는 미리 당사자 또는 그 대리인에게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조항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유 의원은 성명을 통해 “정부가 인정한 기업이 음란사이트가 됐다. 이게 진짜 코미디 아닌가”라며 “그러니 프리덤하우스 등에서 우리나라를 인터넷 자유지수에서 ‘부분자유국’으로 전락한 것”이라고 쓴 소리를 던졌다. 하지만 방통심의위는 레진코믹스 측에 ‘의견진술’ 기회를 주지 않은 이유 또한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동법에서는 “공공의 안전 또는 복리를 위하여 긴급히 시정요구를 할 필요가 있는 경우는 의견진술 없이 조치(접속차단)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조문 그대로 해당 웹툰들이 긴급히 시정을 요구하는 상황이었는지는 납득하기 어려워 보인다.

레진코믹스는 ‘왜’ 충분한 검토 없이 접속차단이 결정됐을까

그렇다면 방통심의위는 왜 충분한 검토 없이 레진코믹스에 대해 접속을 차단했을까. 야당추천 방통심의위 장낙인 상임위원은 레진코믹스 심의와 관련해 “쓸려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시다시피 통신심의는 하루에 천여 건 이상이 상정·의결된다. 그날 또한 900여 건의 안건이 처리되는 과정에 포함돼 있었기 때문에 정교하게 들여다보지 못했다”고 방통심의위의 잘못을 인정했다. 장 상임위원은 통신심의위원장을 맡고 있다. 특히, 심의위원들에게 제공된 것은 레진코믹스 내에 유통되고 있는 문제의 작품 몇몇 장면들이었다고 한다.

장낙인 상임위원은 “웹툰 일부에서 남녀 성기와 말풍선 등을 통해 음란물 수준의 내용이 포함돼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학부모들이 봤다면 기절할 내용들”이라며 “하지만 나중에 확인해보니 사이트 전체가 문제가 아니라 일부였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26일 레진코믹스 측 변호인들이 찾아와 ‘인증문제’, ‘19금 표시제’ 등에 대한 협의를 진행한 것으로 안다. 문제소지가 있는 부분들을 자체적으로 해결한다면 굳이 다시 심의에 올릴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장 상임위원은 “사실 사업자 자율적 조치가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레진코믹스 접속차단 결정 과정을 돌아보는 것은 현 시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방통심의위 내 구조적인 문제를 찾고 그를 개선하기 위함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레진코믹스와 달리 소리 소문 없이 방통심의위의 시정조치로 인해 접속차단되는 사이트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 포쉐어드 접속차단돼 홈페이지 접속 시 이 같은 화면이 뜬다

실제 방통심의위는 지난해 10월 문화체육관광부의 신고에 따라 포쉐어드(4shared.com) 사이트에 대해 접속을 차단한 바 있다. 해당 사이트에서 불법복제물이 유통되고 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포쉐어드의 경우, 음원 파일 뿐 아니라 이용자들이 다양한 콘텐츠를 자체 제작해 서로 공유하는 등 다른 형태의 이용들이 활성화되고 있는 사이트였다. 이용자들 입장에서는 방통심의위의 접속차단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방통심의위의 통신심의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반증이다. 결국, (사)오픈넷은 지난 11일 방통심의위의 포쉐어드 접속차단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포쉐어드 접속차단 회의에서 장낙인 상임위원은 유일하게 반대한 인물로 알려졌다. 그는“심의 당시 8대1로 깨졌다”면서 “(사)오픈넷이 소송을 제기했으니 법원판결을 받아 봐야할 것 같다. 그래야 내부적으로도 ‘접속차단’에 대한 자각과 개선이 이뤄질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방통심의위, 음란성 기준은 법 판례보다 포괄적

방통심의위의 ‘통신심의’와 관련한 구조적인 문제를 봐야 한다는 얘기다. 그만큼 방통심의위의 통신심의는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레진코믹스 사태가 벌어지면서 네티즌들로부터 ‘패륜 논란을 빚고 있는 일베사이트는 왜 그대로 두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동안 ‘사이트의 70% 이상일 경우 사이트를 폐쇄한다’는 내부 기준을 밝혀왔던 방통심의위라는 점에서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방통심의위는 현재 일베와 관련해서는 논란이 되는 게시물을 중심으로만 삭제를 해왔다.

(사)오픈넷은 27일 <레진코믹스 차단 사건으로 드러난 방통심의위 통신심의 문제의 모든 것>이라는 입장을 통해 “방통심의위는 불법정보만을 삭제, 차단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방통심의위라는 사실상 행정기구에서 ‘불법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월권이라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돼 오기도 했던 사항이다. 이 가운데, (사)오픈넷은 “방통심의위의 ‘음란성’ 판단기준도 판례보다 넓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방통심의위는 해당 웹툰들을 ‘음란물’로 규정했지만 해당 규정 자체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사)오픈넷은 “음란의 개념에 대한 대법원 판례는 ‘단순히 저속하다거나 문란한 느낌을 준다는 정도를 넘어서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인 방법에 의해 성적 부위나 행위를 적나라하게 표현 또는 묘사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방통심의위는 그동안 관행적으로 단순 ‘성행위 묘사’ 혹은 ‘성기노출’이 있는 경우를 음란성 정보로 분류해왔다”고 비판했다. (사)오픈넷은 “‘건전한 통신윤리 함양’이라는 추상적인 심의기준에 따라 그동안 수많은 사이트들이 규제를 받았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번 사건으로 통신 심의에 대하 제도 개선의 발판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의원은 “방통심의위의 통신심의가 충분한 심사 없이 마구잡이로 운영되고 있다”며 무분별한 접속차단을 제한하는 <방통위설치법> 및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과연, 법 개정을 통해 방통심의위의 통신심의 개선이 이뤄질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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