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제보자가 없었다면, '워터게이트 사건'도 없었다. 언론계에 유명한 얘기다. 취재원을 어디까지 보호해야 하느냐는 언론의 역할과 의의를 둘러싼 오래된 논쟁꺼리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취재원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면 언론이 수행할 수 있는 공익적 역할이 줄어들 수밖에 없단 점이다. 많은 국가들이 취재원 보호를 언론의 포기할 수 없는 책임으로 보는 까닭이다.

하지만 지난해 있었던 ‘정윤회 문건’ 파동은 한국 사회에 다시금 '취재원 보호'에 관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청와대 비선실세의 국정개입을 폭로한 <세계일보>를 청와대 비서관과 행정관 8명이 명예 훼손으로 형사 고소했다. 고소장이 접수되자 사법당국은 <세계일보>를 압수수색 할 것처럼 움직였다. 취재원이 누구냐는 논란이 뜨거웠다.

26일 오전 국회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 배재정 의원실 주최로 <대통령도 알아선 안 된다-‘취재원보호법’ 왜 필요한가> 토론회가 개최됐다. 배 의원은 <취재원보호법>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배 의원은 <세계일보> 사태와 관련해 “권력 내부의 불편부당한 문제들을 고발하시는 분들에게 입 다물라는 시그널이 아닌가 생각된다”며 “국회가 나서서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3월 26일 새정치민주연합 배재정 의원 주최로 '대통령도 알아선 안 된다-취재원보호법 왜 필요한가' 토론회가 열렸다ⓒ미디어스
“<취재원보호법>, 언론 취재활동 보호위해 반드시 필요”

이날 토론회 발제를 맡은 최진봉 교수는 “뉴스 취재원은 부정부패나 비리가 연루된 뉴스의 취재와 보도에 실마리를 제공해 주는 제보자로 권력기관의 어두운 면을 폭로하고 사회의 건강성을 회복시키는데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며 “권력의 특성상 내부 비리는 공익적 제보가 아니면 쉽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언론의 취재원 보호를 위해 <취재원보호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취재원보호법>의 핵심은 △제3자에게 취재원이나 제보자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권리, △압수수색 등의 수사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 등이 꼽힌다. 최진봉 교수는 우리나라 역시 “언론인은 제보자 등의 신원 등에 대해 진술을 거부할 수 있다”, “기사내용 기초가 된 사실 확인 또는 수사 목적으로 압수수색할 수 없다”고 명시된 <언론기본법>이 제정(1980년)된 바 있으나, 언론의 검열과 등록취소 규정 독소조항으로 폐지됐다고 설명했다. 이 후, 취재원보호를 위한 법 제정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진봉 교수는 “취재원 보호를 명문화 한 법적 규정이 없는 공백상태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는 수사기관의 언론사 압수수색이 여러 차례 시도 됐다”고 지적했다. △서경원 전 의원 방북 사건 관련 <한겨레>(1989년), △양길승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 몰래카메라 SBS(2003년),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위험 보도한 MBC <PD수첩>(2009년), △비선실세 국정개입 문건 <세계일보> (2014년) 등이 그러하다.

최진봉 교수는 “취재원과 제보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인 <취재원보호법>은 권력기관을 감시하고 견제하기 위한 언론의 취재활동을 보호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취재원보호법>에 △언론사나 기자에게 취재원을 공개 강요 금지, △언론보도로 인해 취재원이나 제보자가 불이익 당하지 않도록 보호할 수 있는 방안 및 시책 마련, △취재원에 대한 정보 취득을 위한 수사·압수수색 금지, △취재원 관련 정보와 기사 기초 사실에 대한 증언 거부권 보장, △수사기관이 취재원 정보 요구 시에는 취재원 보호를 위한 공익보다 더 큰 공익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때로 제한 등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현행법, 취재원 보호 위해 공개거부 시 허위보도 판단될 가능성 높아”

토론회에서는 취재원보호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었다. 특히, <세계일보> 변호를 맡고 있는 허윤 변호사(법무법인 예율)가 토론자로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허윤 변호사는 “사회적 부패나 조직비리 제보 관련 대부분의 취재원들은 언론의 신변보호 약속을 받고 정보를 제공한다”며 “이 때문에 취재원 보호는 언론의 자유를 넘어 국민의 알 권리 차원으로 봐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허 변호사는 <취재원보호법>이 없는 현재, 언론사들이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사나 기자가 소송으로 인한 명예훼손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는 언론보도가 공공의 이익과 관련된 사안으로 보도 내용이 진실한 경우라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언론사 입장에서 보도된 내용이 진실이라는 점을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 문서 등이 존재한다면 이를 법원에 제출해 보도 내용의 진실성을 입증할 수 있으나, 의혹 보도 또는 범죄 보도의 경우에는 취재원의 진술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경우, 언론사가 보도 내용의 진실성을 이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취재원을 공개하는 것이 된다. 만약 언론이 취재원을 보호하기 위해 취재원 공개를 거부한다면 그 보도는 허위 보도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 <허윤 변호사>

허윤 변호사는 “취재원을 공개해 민·형사상 책임에서 벗어나느냐 아니면 취재원을 보호하고 법적 책임을 질 것인지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행법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KBS 조준상 이사는 취재원보호와 관련해 “그 대상이 굳이 사람과 동일시 될 필요는 없다”며 “언론사를 거치지 않고 공표하는 것에 대한 가치 또한 같이 보호되어야 한다”며 <취재원보호법> 제정은 물론 후속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보통신망법> 상 이의제기를 통한 블라인드(임시조치) 처리와 <공익신고자보호법> 등을 같이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준상 이사는 ‘언론의 윤리적 책임의식’ 또한 함께 강조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전원구조’ 오보와 관련해 조 이사는 “어떤 방송사(MBC)는 ‘왜 자신들에게만 그러냐’면서 국회의 자료제출 요구를 언론탄압이라고 이야기를 했다”며 “언론의 책임의식에 회의적”이라고 비판했다.

취재원보호, “언론사들 악용 가능성” VS “정치수사 악용사례 더 많아”

토론회에 참석한 문화체육관광부 노점환 미디어정책과장은 “취재원 보호라는 긍정적인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재판의 공정성 확보라는 헌법적 가치와 충돌할 때가 있다. 정보제공자 공개로서 얻게 되는 형사사법정의와 취재원 보호로 얻게 되는 언론의 자유에 대한 비교형량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부 잘못된 언론보도로 피해를 받고 있는 기업들은 해당 법이 악용되지 않을까 하는 현실적인 우려를 하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언론노조 김동훈 수석부위원장은 “언론사가 취재원 보호를 남용해 악용한 사례보다 검찰이 정치적 수사에 악용한 사례가 더 많다는 점을 착안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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