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연치 않은 퍼즐 조각들

뭔가 석연치 않았다. 찜찜했다. 무언가 정확하게 들어 맞지가 않았다. 비웠는데 다 비우지 못한 느낌. 나만의 느낌이었을까.

작년 말의 일이다. 언론은 박태환이 도핑을 했다는 사실과, 국제수영연맹이 도핑양성 반응을 통보했다는 것, 지금 현재 청문회에서 소명할 자료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까지 세세히 보도했다. 그리고 도핑에 관여되었던 특정 병원에 대해 박태환 선수측이 소송을 준비한다고도 했다. 검찰은 수사에 들어갔다. 또 한 가지 보도내용은 청문회에서 최종 결정이 이루어지기까지 모든 진행사항은 비밀로 부쳐져야 한다는 것이다. 선수보호차원에서 말이다. 그런데 왜 그리고 어떠한 경로를 통해 외부, 특히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는지는 모른다.

▲ 이기흥 대한수영연맹 회장이 국제수영연맹(FINA) 도핑위원회 청문회를 마치고 25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 회장과 수영연맹 관계자들은 금지약물 검사에서 양성반응이 나타난 박태환을 돕기 위해 함께 청문회에 참석했다. 박태환은 국제수영연맹으로부터 18개월 선수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다. ⓒ연합뉴스

도핑양성반응은 팩트 자체였다. 크던 작던 세간에 충격이었다. 그러면서도 우리 모두는 궁금했다. 아니, 그가, 다른 누구도 아닌 박태환이 왜 도핑을 했을까하는 질문이었다. 테스토스테론이라는 남성호르몬제를 그가 왜 맞아야만 했을까? 박태환은 그러한 사실을 몰랐던 것일까? 확인에 확인을 했지만 의사가 아무런 문제없다고 한 것을 믿고 맞았단 말인가? 네비도라는 제품의 외부에 크고도 명확하게 위험성을 주지시키고 있음에도?

변호인으로는 유럽의 도핑전문 변호사를 고용했다. 청문회도 연기되었다. 박태환 선수측에서 자료 준비의 이유로 연장신청을 했다는 것이다. 결국 3월23일 청문회 일정이 잡혔다. 그 동안 박태환은 자신이 맞은 주사가 도핑에 걸리는 물질이거나 양이었다는 것을 전혀 몰랐으며, 이는 전적으로 의사의 과실로 결론 내려졌다. 결국 청문회에서 박태환 선수는 1년6개월의 선수자격정지의 징계를 받았다. 선방한 셈이다. 자격정지가 2016년 3월2일에 끝나니, 리우올림픽에 출전하는 것도 문제되지 않는다. 흥미롭게도 청문회가 끝나자마자 국제수영연맹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바로 홈페이지를 통해 이 결정을 공지하였다.

박태환, 수영연맹, 아시아 수영, 성공적?

퍼즐 조각들은 산발적이었을까. 서로 관계가 없었을까. 뭔가 석연치 않고 찜찜한 기분은 이 퍼즐 조각들을 맞추어 보고자하는 욕구를 자극해 왔다. 1년6개월과 청문회 바로 뒤에 공지가 이루어진 점에서 나는 무릎을 쳤다. 언론에 유출된 시점, 전혀 몰랐다는 박태환 선수, 도핑전물 변호사, 모든 것은 의사의 과실과 책임이라는 검찰, 연기된 청문회, 국제수영연맹의 이례적으로 빠른 공지가 퍼즐을 자연스럽게 조립시켜 주었다.

최소한 표면적으로 2년의 징계에서 1년6개월로 경감된 이유는 박태환 선수가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 그가 성실한 선수였다는 것, 한국과 아시아에 수영선수로써 기여하고 공헌한 점이 크다는 것, 변호와 청문회를 위해 대한체육회와 대한수영연맹과 함께 최대한의 준비와 적극적인 소명이 이루어졌다는 것들이 이번 결정의 주요 요인들이었다. 물론 여기에 네비도 주사를 놨던 의사에게 전적인 책임이 있었다는 검찰의 결론도 분명 한 몫 했음은 물론일 것이다.

국제수영연맹도 부담이었을 것이다. 최대한의 징계를 주자니 박태환 선수에 대한 애틋한 정과 그동안의 고마움에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징계로 인해 그의 몇몇 최근 기록과 상금이 박탈되는 것뿐 아니라 선수생명까지 그 결정의 여파가 미친다면 그나마 화젯거리였던 아시아 수영 인기상승에 제동을 거는 격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리우는 그나마 마지노선이었을 것이고, 최소한 옛정을 생각해서라도 도와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니 적정한 수준에서 상생의 길을 찾고자 했을 것이다.

최소한 이 그림에서 박태환 선수는 명분일지라도 리우를 벌었고 국제수영연맹은 부담을 더는 동시에 박태환 충격을 최소화했다. 대한체육회와 수영연맹도 이제 생색 낼 수 있는 위치에 서 있으며, 검찰은 이를 완성시켜주었다. 최대한 재량 범위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각 위치에서 수행한 것이다. 의사를 제외하고 아무도 손해 보지 않은 결과에 이르렀다. 박태환 일병 구하기(?)는 이렇게 막을 내리는 듯하다.

일반인은 잘 도핑의 '큰' 세계

일반인들은 도핑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냥 대략적으로 ‘나쁜 것’ 또는 ‘공정하지 못한 것’ 정도로만 인식한다. 도핑은 이보다 훨씬 더 크다. 크다는 말은 단지 약을 하거나 규제되는 성분을 섭취하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도핑은 그저 그 행위가 아닌, 그 행위의 원인과 과정을 포함한다. 결과의 짜릿함과 희열은 해본 사람만이 안다. 육체적인 상승효과는 물론 정신적인 만족까지 동반한다. 도핑은 그래서 스포츠 세계에서 만연하고 있다.

선수들은 도핑의 유혹에 항상 노출된다. 주위 선수들이 약을 한다는 것에 직간접적으로 소문을 듣는다. 심지어 제안을 받기도 한다. 갑자기 별것 아니었던 선수가 월등하게 성장한 기량으로 등장한다. 서로 알 듯 모를 듯 도핑은 비밀이면서도 공공연하다. 국제반도핑기구(WADA)는 약 2%의 선수들이 도핑을 하는 것으로 보고한다. 그러나 이 바닥의 사람들은 웃는다. 대략적으로 도핑을 하는 선수가 20-40%까지 될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도핑을 하는 선수들은 도핑검사에 걸리지 않도록 철저하고 치밀하게 준비한다. 국제반도핑기구는 이를 잡기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한다. 또는 최대한의 노력을 하는 것처럼 활동한다. IOC는 선수들로부터 채취된 검체(또는 시료)를 10년까지 보관했다가 기술적으로 검출할 수 있는 때가 되면 추후라도 검사를 실시한다. 이는 지금은 잡지 못해도 나중에라도 잡을 것이라는 메시지인 셈이다. 동시에 도핑방법이 검사방법의 머리 꼭대기에 있다는 것의 방증이기도 하다. 그러니 걸리지 않는다면야 선수들에게는 도핑의 유혹과 가능성이 더 커지는 것이다.

이 모든 혼란의 원인이자 책임자인 대한체육회

박태환 선수의 리우로 향하는 발길은 이제 대한체육회의 몫으로 돌아왔다. 논란은 <국가대표선발규정> 5조 6항에 있다. 복기하자면 ‘체육회 및 경기단체에서 금지약물을 복용, 약물사용 허용 또는, 부추기는 행위로 징계처분을 받고 징계가 만료된 날로부터 징계 기간이 끝나고 3년이 경과하지 아니한 자’는 국가대표선발에서 제외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최초의 두 단어, ‘체육회’와 ‘경기단체’에 문제가 도사린다. 단어만으로는 국내 단체만에 한정한다. 다시말해 박태환 선수와 같이 국제기구에서 징계를 받는 선수는 해당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법리적 해석이 필요하지만 이미 논란이 분분하다.

문제는 단지 법리적 해석에만 있지 않다. 5조6항의 경우 ‘징계를 받는 것’과 ‘선발에서 제외’라는 두 징계가 연속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한번의 사안에 대해 두 번의 제재가 가해진다는 것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중제재라는 논란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이 규정을 2011년 삭제하도록 각국의 올림픽위원회(NOC)에 하달하였다. 그런데 대한체육회는 이 항목을 2014년 7월 15일에 규정하고 말았다. IOC가 2011년 버리라고 한 것을 2014년에 넣어 놓은 것이다.

박태환 선수는 규정에 해당이 없을 수도 또는 해당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중제재 규정이 원천 무효라는 측면에서 규정을 피해갈 수 있는 측면도 있다. 이 모든 혼란은 대한체육회의 졸속, 엉터리 규정 때문에 불거지는 것이다. 대한체육회가 모든 논란을 자초한 것이다.

박태환 선수의 이번 에피소드는 이 규정이 햇빛을 볼 수 있게 했다. 이번 에피소드가 없었더라면 이 규정은 고요히 숨어 있었을 것이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대표선수 발탁을 가로 막았을 수도 있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살짝 드러난 스포츠 세계의 속살, 웰컴 투 스포츠 월드!

이번 에피소드는 스포츠 세계의 민낯을 살짝 보여주었다. 국제스포츠사회가 도핑에 대해 골머리를 썩고 있다는 사실. 박태환 선수가 단지 우리들의 영웅이 아닌 세계수영 바닥에서도 먹힌다는 사실. 도핑이 아주 희소적이지 않으며 어느 정도 요행의 선을 타는 행위라는 것. 대한체육회의 대표선발에 희한한 규정이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는.

어쩌면 박태환 선수가 리우에 갈 수 있는지 갈 수 없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미 박태환 일병 구하기는 성공했으며, 이해 당사자들은 모두 만족해하고 있을테니 말이다. 대한체육회가 규정을 개정하건 하지 않건 마지막 임무를 수행해야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우리사회는 또 소모적인 논란과 논쟁에 빠질 것이다. 누구의 이익을 떠나 규정은 없어져야하고 그 결과는 누구든 얻어갈 것이다. 웰컴 투 스포츠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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