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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문으로 들었소 9회- 유준상의 우매한 대중론, 권력을 움직이는 비서열전이 흥미롭다[블로그와] 자이미의 베드스토리
자이미 | 승인 2015.03.24 11:55

이야기의 실체로 들어서기 시작한 <풍문으로 들었소>는 흥미진진합니다. 이들의 이중성 안에 담긴 허세와 가식, 속물근성은 블랙 코미디로 진중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두 집안과 한정호 회사를 배경으로 풀어가는 <풍문으로 들었소>는 우리 시대 새로운 창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한정호 집안을 움직이는 진정한 힘;
제왕적 권력에 맞서는 자들, 그들을 움직이는 진정한 힘을 가진 비서 열전이 흥미롭다

집안의 혹 같은 존재라 여겨 거액을 써서 떨쳐버리고자 했던 봄이, 알고 보니 대단한 가능성을 지닌 원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분위기 반전은 시작되었습니다. 떨어질 대로 떨어진 위상을 회복하기 위한 최고의 카드는 모두가 숨어서 비웃던 봄이가 화려하게 비상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반고를 다녔고 수포자에 4등급인 아이가 사시를 본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는 주변의 의견과 달리, 인상을 가르치는 선생과 그에게 이야기를 듣고 아침마다 책읽기를 하는 정호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봄이가 진정한 원석이고 잘만 다듬는다면 한방에 그동안 만들어진 모든 문제들을 털어낼 수 있을 것이라 믿기 시작했습니다.

   
 
탁월한 능력을 거침없이 보여주는 봄이로 인해 한정호와 최연희는 다른 고민을 해야만 했습니다. 봄이가 최연소 수석이 되고 자신의 아들인 인상이 떨어진다면 이는 상상도 할 수없는 최악이 될 수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될지 알 수는 없지만 고액 과외로 태어나면서부터 철저한 엘리트 수업을 받아왔던 인상과, 흔한 과외나 외국 한 번 나가본 적이 없는 봄이의 존재감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섭니다.

아침마다 책읽기를 통해 주입식으로 아이들에게 자신의 세계관을 투영하려는 한정호의 모습은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우리 시대 지배층이라는 자들이 지닌 속성과 가치가 어디에서 기인하고 어떻게 발현되는지에 대한 적나라하게 풍자였기 때문입니다.

16세기를 묘사한 책을 읽으며 현재에도 그와 같은 사상을 견지해야 한다는 정호와 시민사회에서 그런 생각은 위험하다는 인상과 봄이의 대립 관계는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대립과 갈등의 한 단면이기도 합니다. 특권의식을 강조하고 승자의 논리를 강요하는 정호는 '미개한 대중론'을 설파하고, 인상과 봄이 그런 시각 자체가 문제라며 대립하는 과정은 우리 사회의 복잡한 듯 단순한 갈등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욕망을 품고 있으면서도 입 밖으로 내는 것은 금지이고, 권력을 휘두르지 않으면서도 권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이들의 이중성은 이번 방송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한정호는 자신에게 대항하는 여자 변호사 유신영을 상대로 갑질을 하기 시작합니다.

아이 문제부터 시작해 사사건건 자신에게 도전해오는 유신영을 웃으며 공격하기 위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녀에게 사건 배당을 하지 않거나 은근히 소외되도록 만들어 그녀 스스로 정호의 강력한 힘에 굴복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려는 갑질은 우리 사회에서 일상으로 벌어지고 있는 생활 밀착형 갑질이었습니다.

정호의 갑질을 더욱 정교하게 만드는 것은 그의 아버지 시절부터 일해왔던 비서 양재화의 덕이기도 합니다. 누구보다 한정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탁월한 그녀는 반은 갑의 위치에서 타인을 바라보는 시각을 몸에 담은 존재이기도 합니다. 정호의 마음을 읽어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길을 터 자신의 생각을 교묘하게 섞어내는 방법은 능력 좋은 비서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처세술이자 존재가치였습니다.

한송에서 정호의 슈퍼 갑질을 이끄는 비서 양재화와 달리, 은근히 을의 위치에서 그들을 돕는 인물은 민주영이었습니다. 한송과는 처음부터 맞지 않았던 그녀이지만 어쩔 수 없이 그곳에서 일하게 된 그녀는 갑과 을 사이에서 줄을 타며 을에게 갑에 대처하는 방법과 반격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웠습니다.

   
 
권력을 휘두르지 않으면서도 권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한정호의 이중성은 자신의 일터인 '한송'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는 합니다. 집에서는 제왕적 지위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본심이 잘 드러나는 공간일 뿐이기 때문에, 한정호의 본질은 모두 그의 일터에서 보이는 행동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욕망이 존재하지만 그 욕망을 밖으로 표출해서는 안 된다는 귀족 코스프레에 최적화된 연희 역시 정호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가진 자들의 사랑방에서 화를 다스리는 방법 중 하나를 이야기하다 야할 수도 있다는 말에 귀를 막으며 자신은 그런 것 정말 싫어한다는 연희의 모습과, 집으로 돌아와 곧바로 정호를 사로잡을 '사랑의 묘약'을 준비하는 모습은 재미있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이 가지는 이중성은 모두가 이런 식이었습니다. 인상과 봄이에게 아침 책읽기를 통해 가르치고자 하는 가치 역시도 스스로 귀족이라고 여기는 그들의 이중성이었습니다. '우매한 대중'을 위해 그들은 최고 스펙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정호는 최고라는 수식어가 우매한 이들을 제압하기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확신에 차 있습니다.

실제 우리 사회는 스펙 사회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외형적으로 보이는 것에 모든 것이 집약되어 있습니다. 내면의 가치와 가능성은 무의미하고 외부로 드러나는 것만이 모든 가치의 척도라고 여겨지는 현실 속에서 창의적인 사고와 진정한 가치를 만들기는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경직되고 보수화된 사회일수록 이런 외형적 모습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현재의 대한민국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단어는 '우매한 대중'이었습니다.

서울시장 후보 아들이 던진 '미개한 국민들'이라는 발언에 많은 이들이 분개했지만, 스스로 자신들이 미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하게 만드는 일련의 상황과 사건들은 우리 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무너져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사건 사고가 터지고 제대로 된 정치가 사라진 사회에 미개하기를 원하는 정치꾼들에 현혹되어 미개함이 미덕이라 착각하는 이들이 늘어난 상황에서, 대한민국은 극중 한정호가 설파하던 '우매한 대중'의 틀에서 결코 벗어날 수는 없어 보입니다.

   
 
인상과 봄의 아들인 진영이의 백일을 맞은 두 집안의 서로 다른 모습은 그들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수수팥떡을 만들어 새벽에 그 집 앞에 놓고 집으로 향하는 봄이 엄마와 상속 절차로 진영이의 백일잔치를 대신하는 정호의 집안은 그렇게 달랐습니다.

진영이의 백일 날 풍경은 그래서 흥미로웠습니다. 수수팥떡을 보고 경기를 하는 연희와 달리, 모든 이들은 봄이 어머니가 해다 준 떡에 행복해 합니다. 정호와 연희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은 뒤이어 진행된 경건함을 강요하는 듯한 정호와 연희식 백일과는 명확한 차이를 두었습니다.

아이를 위한 마음을 선물하는 봄이 엄마와, 아이의 미래를 재산 가치로 여기는 정호의 사고의 차이가 곧 우리사회 갑과 을을 구분한다는 점에서 이 장면은 <풍문으로 들었소> 9회의 핵심적인 장면이었습니다.

극중 정호는 시청자들에게 중요한 화두를 던졌습니다. 우매한 대중론을 통해 합리적인 사고로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귀족 코스프레를 하는 한정호에게 반론을 펼 수 있는 이는 누구일까? 하는 고민 말입니다. 극중 지영라가 한정호를 공격하며 자존심까지 무너지게 만드는 힘 역시 그녀가 거대한 부를 가진 존재이기에 가능한 갑과 갑의 대립일 뿐이었습니다.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우매한 대중론'을 깨트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 그 우매함을 강요하는 지배 논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는 책이 왜 위대한지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95세의 나이로 지난 2013년 고인이 된 그가 남긴 그 책은 과거 레지스탕스 시절만이 아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는 점이 아이러니하기까지 했습니다. 과연 우리는 현재의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분노하고 살고 있는 것일까요?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자이미  mfmc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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