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두말할 나위 없이 한국 문단의 거목이다. 어떤 상징이다. 작가 황석영이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했다. 바야흐로 오늘의 문화는 절대 예능과 그 밖의 나머지들로 구성되고 있다. 황석영은 어제의 작가가 아니다. 현재도 책을 가장 많이 팔고 있는 현역이다.

그런 그가 <무릎팍도사>에 출연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출판과 인문학이 맞고 있는 위기가 간단치 않은 것임을 시사한다. 뉴스에 어울릴 법한 황석영은 왜 <무릎팍도사>에 나온 것일까? <개밥바라기별>을 네이버에 연재하며 동시대 익명의 ‘집단지성’을 존경하고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의 고백대로 출판사 마케팅 팀장의 권유 때문이었을까? 연유가 무엇이든 성공적이다. 나도 낚여서 끝까지 보게 됐으니.

▲ 조선일보 앞에서 조선일보에 기고한 황석영씨의 사과와 반성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충북 민예총 소속의 어느 활동가.
스스로 거리낌 없이 한국 현대사의 한복판을 살아냈다고 구라를 까대는 그가 <무릎팍도사>에 나온 것은 그만큼 전격적인 일이었다. 더욱 충격적이었던 건 그런 그의 고민이 “나이를 먹어도 인품이 들어 보이지 않으니, 도대체 어떻게 하면 지식인처럼 보일까요?”였다는 것이다.

어떻게 문학하는 사람이 그런 프로그램에 나갈 수 있느냐고, 황석영 나이에 무슨 주책이냐는 고리타분한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나갈 수 있고, 때때로 주책도 필요하다고 믿는다. 이른바 순수하다고 오해되는 어떤 문화들과 또 이른바 대중적이라고 여겨지는 잡스런 문화들이 지나치게 섞이지 않는 것이 우리 문화의 낙후성 가운데 하나이다. 나이 들면, 폼만 잡으려는 것도 마찬가지로 후진 풍경이다.

그리고 지금은 강조하건대, 아무리 안타까워해도 절대 예능의 시대이다. 현실에서 중요한 건 생존이다. 아무리 책을 많이 팔더라도 <무릎팍도사>에 비할 수는 없다. 지금 황석영의 글을 읽는 대부분들은 황석영이 북한에 갔는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어디에 있었는지에 전혀 관심이 없다. 아예 모른다. 소비되는 것은 어제의 황석영이 아니라 오늘의 황석영이다. 오늘을 사는 황석영은 오늘의 소비 문법을 따르는 것은 필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황석영이다. 강호동과 시시껄렁한 얘기를 나누고, 유세윤에게 욕심쟁이란 질타를 당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황석영만 팔 수 있는 무엇이 아니다. 작가를 ‘시정배’라 생각하고 스스로를 ‘광대’로 여긴다고 아무리 농을 쳐봐도 그가 <장길산>을 쓰고,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를 외쳤던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의 대변인이었던 역사적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것은 문단의 거목도 <무릎팍도사>에 나갈 수 있고, 그 나이에도 충분히 우스워질 수 있다는 실존을 입증하는 것만으로 황석영이란 상품이 구성되어 있지 않다는 말이다.

▲ 황석영의 조선일보 기고에 항의하며 '세상이 뒤집어졌다'는 의미로 진행되었던 물구나무서기 퍼포먼스.
오랜만에 <무릎팍도사>를 끝까지 봤다. 뭔가 획기적인 멘트나 어필이 나올 줄 알았다. 현대사를 온 몸으로 살았다는 건 그 만큼 상처도 많다는 뜻이다. 그런데 황석영 편은 여타 다른 편들과 아무런 차별성이 없었다.

강호동이 ‘황포레스트검프’라는 너스레를 떨었지만 황석영의 파란만장한 세월은 차장 밖 풍경처럼 무난히 스쳐갈 뿐이었고, 유세윤이 43년생이라고 힘주어 외쳐줬지만 그의 나이는 규격화된 박스처럼 프로그램에 딱 맞춰져 아무런 무게를 보여주지 못했다. 일부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김일성을 개그의 소재로 삼는 것에서 위안을 찾아야 하는 것이었을까? 그런데 어쩌랴. 오히려 내게 그것은 현대사에 대한 예민한 이해가 없는 이들이 지나간 긴장과 대립의 시대를 일방의 시대라고 조롱하는 것처럼 들렸다. 원래, 치열했던 것은 잘 말해지지 않는 법인데, 안일하기까지 했다.

아직 후속편이 남아있지만, 별로 기대되지 않는다. 기대 없음은 <무릎팍도사>의 형식 때문이 아니다. 1편과 같은 수준, 그런 문제의식으로는 황석영의 고민을 풀 수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황석영의 고민을 풀자면 더 단단히 말을 들이박아야 한다. 치열하게 물어야 한다. 그저 책을 팔러 나온 듯한 황석영도, 그저 황석영이 나온다는 화제성을 즐기려는 <무릎팍도사>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서는 죽었다 깨도 안 된다는 말이다. 황석영의 고민, 과연 지식인은 무엇인가? 지식인은 바로 사회적 책임을 지는 존재라는 명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지난 2000년 군사 파시즘과의 결탁으로 성장한 조선일보에서 주관하는 동인문학상 심사대상을 거부한다고 외쳤던 그가 아무런 중간 과정 없이 2005년 남북작가대회를 마치고는 조선일보에 특별기고 형식으로 “문학은 하나다!”(7월27일자)를 실었을 때부터 나는 지식인으로서의 황석영에 대한 신뢰를 거두었다. 황석영이 품격 있는 지식인으로 늙고자 한다면, <무릎팍도사>는 반드시 이러한 변절의 혐의 부분을 호되게 물고, 그는 또 반드시 대답해야만 한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노골적으로 손학규 지지를 선언했던 것에 대해서도, 그가 회장으로 있던 단체가 국고보조금을 받는 상황이 되면서 이른바 '코드지원'의 나팔에 숱한 예술 단체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좌파 예술 척출', '하류 진보 청산'을 외치고 있는 유인촌 장관에 대한 생각까지. 그는 '지식인'이라면 마땅히 대답해야 할 너무 많은 대답들을 미루고 있거나 아예 잊은 듯 행동해왔다. .

그렇잖아도, 지하철역 전체를 책 홍보로 도배할 수 있는 막강한 자금력을 가진 출판사에서 나온 그의 책이 너무 오래 서점의 가장 금싸라기 매대를 점거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소한의 변명조차 않고 있는 그가 예능 프로그램에까지 나와서 그럴싸한 말장난과 너스레로 말년을 비즈니스에 보태는 꼴은 너무 사나워 보인다.

톨스토이의 수염이 부럽다는 한가로운 얘기를 하고 있는 그를 보며 문득 추워졌다. 나뿐 일까, 후일담을 즐기기에 시대가 너무 춥다고 느끼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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