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자’를 간음(姦淫)한 죄’다(형법 제 297조). 그래서 법률적으로 남성은 강간당하지 않는다. 아니 강간당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당연히 ‘강간(强姦)하다’에 내장된 1인칭은 남성이다. 하지만, ‘강간’이라는 표현이 주는 수치심은 정작 여성(피해자)을 겨냥하고 있다. 이 낱말은 글자로만 봐도 무게중심이 폭력(强)보다는 간음(姦)에 기우뚱하게 쏠려 있다. 간음(부부가 아닌 이들의 성관계)은 남녀가 함께 맺는 것인데도, 여성만이 음란의 일탈 기호(姦-여자 세 명)로 표상되고 있다. 그리하여 강간은 여성의 음란을 남성이 강제한 것이 된다. 강간죄도, 죄는 남성이 짓지만 노출(사회적으로 처벌)되는 건 여성이다.

▲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사진기자들을 향해 “사진을 찍지 말라”며 막말을 하고 있다. ⓒYTN 화면 캡처
이처럼 질 나쁜 표현을 부득불 써야 할 경우가 가끔 있다. 성폭행을 형법의 잣대로 언급해야 할 때다. 강간죄가 (미수가 아닌) 완성되는 단계에 대해서는 5가지 학설이 있다고 한다. 흥분설, 발기설, 삽입설, 사정설, 만족설이다. 성폭행을 시도하는 남성이 흥분하기만 해도 강간죄의 완성으로 보는 것이 흥분설이다. 수컷이 보기엔 좀 무서운 학설이다. 그럼 만족설은 여성이 만족하면 죄가 안 된다는 걸까? 아니다. 성폭행 남성이 만족해야 죄가 된다는, 다시 말해 만족하지 않으면 절대 죄가 되지 않는다는 학설이다. 성폭행범이 자신의 주관성으로 스스로의 유·무죄를 심판하는 재판관 신분까지 겸하게 되는 셈이다.

이들 5개의 학설을 순서대로 늘어놓으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갈수록 남성 본위로 기우는 스펙트럼이 된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남성의 시선으로 성폭행을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선 5개의 학설 사이에 아무 차이가 없다. 이 가운데 삽입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한다. 얼핏 그럴싸해 보이지만 삽입을 했으면 강간죄가 되고 안 했으면 강간죄가 안 된다는 것은 모든 판단 기준을 성기로 몰아가는 ‘성기 편집증’에 다름 아니다. 근엄한 법의 얼굴을 하고 있어 봐야 ‘바바리맨법’일 뿐이다. (‘삽입’이라는 표현 자체가 남성의 언어다. 여성에겐 ‘흡입’이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삽입 성교’를 ‘성기 결합’으로 바꿔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 조선일보 30일치 22면 기사.
30일치 <조선일보> 문화면(A22)에 꽤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시각’이라는 고정물 문패에 <‘씨~’와 ‘씨×’의 차이>라고 돼 있다. 제목 밑에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사진이 실린 것으로 봐서, 기사의 소재는 단박에 알아챌 수 있다. 기사에는 기자가 유 장관과 통화한 내용이 들어 있다. 유 장관은 “억울하다”고 하소연했다고 한다. 또 “보도된 것과 달리 난 ‘씨×’이라고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문화부 관계자도 “관련 동영상을 10번 넘게 돌려보면서 들었는데, ‘씨~’였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유 장관은 ‘씨’였는지 아니면 욕설인 ‘씨×’였는지는 분명하게 가리고 싶었던 것 같다고 풀이한다.

기자는 유 장관과 문화부 관계자의 말을 전하거나 속내를 짚는 데 그치지 않고, 이상규 국립국어원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씨~’와 ‘씨×’의 차이를 확인하는 취재정신까지 발휘한다. 이 원장은 “‘씨×’은 욕이고 ‘씨~’는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내뱉는 관습적 말투”라며 “내가 듣기에도 ‘씨~’인데 잘못 보도되며 욕으로 확대된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유 장관에게 뜻대로 풀리지 않은 일이 뭔지, ‘씨~’가 어떻게 ‘습관(적)’도 아니고 ‘관습(적)’ 말투라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우선 “내가 듣기에도 ‘씨~’였다”는 이 원장의 청각과 음운학을 검증해보고 싶은 욕망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미디어스> 복수의 관계자는 사건 당일 녹취를 위해 여러 번 돌려봤던 문제의 동영상을 소리와 입모양, 몸짓을 견줘가며 다시 10번 넘게 돌려보았다. (이것도 기자정신이라면 기자정신이다.) 유 장관은 세 번에 걸쳐 ‘씨’로 시작하는 말을 내뱉는다. 처음엔 ‘이~ 씨’라고 또렷이 발음한 직후 입술을 굳게 다문다. 그가 만약 ‘씨~’라고만 했으면 입술이 빠르고 굳게 다물어질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이 말을 내뱉을 때 순간적으로 주먹을 쥔 왼팔을 팔꿈치를 굽혀 어깨 높이 가까이 들어올리다 내려놓는다. 그의 팔을 붙들고 있던 신재민 차관의 팔도 함께 따라 올라갔다 따라 내려온다.

두 번째는 “이씨~ 성질이 나 뻗쳐 나 정말”인데, 이번엔 “이씨~” 뒤 입술이 살짝 다물어지다 말고 다음 말로 넘어간다. 세 번째는 자리를 뜨면서 다시 “씨~”로 시작되는 소리를 내는데, 마이크에서 멀어지는 데다 옆모습이어서 다음 소리와 입술 모양은 정확히 식별되지 않는다. 미디어스는 당시 국감장 상황을 전하는 기사(유인촌 장관, ‘졸개’ 발언에 삿대질 막말)에서 이를 “이씨~ㅂ”라고 표기했다. 그리고 다시 동영상을 10번 넘게 돌려보며 그의 발음과 입모양, 몸짓을 종합해 판단한 결과 ‘욕설’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적어도 ‘하다만 욕설’은 분명하고,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관습적으로 내뱉은 말투보다 훨씬 거친 것도 틀림없다.

그러나 CSI를 방불케 하는 치밀한 증거분석 과정을 거쳐 사실관계를 확증하고 나자,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어 정신이 번쩍 든다. 유 장관이 욕설을 했든, 욕설을 하다 말았든, 설령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관습적 말투를 내뱉었을 뿐이든, 조선일보나 미디어스나 가해자의 시선으로 사태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삽입을 했니 안했니, 사정을 했니 안했니, 만족을 했니 안했니를 따지며 강간의 유·무죄를 판단하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유 장관과 조선일보의 프레임에 말려들어, 정작 피해자에게는 아무런 눈길도 돌리지 못한 것 같다. 꺼림칙하다. 이 사태는 처음부터 ‘씨~’와 ‘씨×’ 여부를 가리거나 그 차이를 다투는 것이 아니었다.

유 장관은 그날 밤 4시간 만에 국감이 재개된 뒤 “옆에서 사진을 찍어서 ‘찍지 마’라고 말했을 뿐, 의원님들한테 말한 게 아니었다”고 국회의원들에게 사과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인다. “순간적인 기분의 표현이니까 더 이상 거론하지 말아 달라. 나중에 사진기자들한테 사과하겠다.” 내가 현장에 있었다면 처음 그의 막말을 듣고 상처받고, 그의 이 해명 같지 않은 해명을 듣고 훨씬 큰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처음엔 그의 인격과 품성의 수준을 탓하고, 운전하면서 입에 욕을 달고 사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마음을 달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해명을 들으면 정말 ‘성질 뻗쳤을’ 것이다. 당한 게 누군데, 누구한테 사과하는 거야?

한국사회처럼 남녀간 성별 위계와 소유 관념이 뚜렷한 사회에서 강간범에 대한 처벌은 ‘과실죄’나 ‘절도죄’에 대한 처벌의 성격을 띤다. 너무 욕심을 부리고 칠칠치 못하게 뒤탈까지 일으킨 것에 대한 나무람 또는 면박이다. 흥분설이든, 발기설이든, 삽입설이든, 사정설이든, 만족설이든 중요한 것은 남의 물건에 ‘진짜’ 손을 댔느냐 안 댔느냐이다. 미수냐 아니냐가 그토록 중요하고, 강간죄보다 강간미수죄를 폭넓게 인정하는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이 때문에 남성에 대한 처벌 과정에서 피해 여성이 모욕과 수치심의 2차, 3차 피해를 입는 현상이 일반화되어 있다.

그날 국감장에서 유 장관이 국회의원들에게 했던 사과는 “기가 뻗치는 걸 다스리지 못하고 칠칠치 못한 짓을 해서 죄송하다”는 것이자 “당한 ×는 따로 넌지시 달랠 테니 이해해달라”는 것이었다. 현장의 언론인은 물론 한국사회 전체 언론인에게 모욕을 안긴 2차 폭력이다. 그날의 사태를 ‘씨~’와 ‘씨×’ 공방(삽입했느냐 안 했느냐)으로 끌고 감으로써 언론인들에게 수치심의 3차 폭력을 날렸다. 그리고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남성주의 언설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조선일보는 피해 언론인들을 자신의 ‘연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 한겨레 29일치 ‘세상읽기’ 칼럼.
그런 기분을 느끼는 것이 어디 나를 포함한, 조선일보 기자는 뺀, 언론인뿐이겠는가. 시인 김선우는 “한 사람의 작가로서… 그가 문화예술계의 행정 수장으로 이 나라 문화예술계의 수준을 일거에 ‘저질’로 만들어 버려서… 창피하고, 분노와 모욕감이 밀려오고, 더러운 것을 뒤집어쓴 것처럼 구토와 현기증이 몰려왔다”고 했다. 그리고 유 장관의 사퇴를 요구했다(10월29일치 <한겨레> 세상읽기 ‘굿바이, 미스터 유’). 나는 유 장관에게 와라 가라 말 못하겠다. 대신 소심하지만, 이렇게 말하겠다. 유 장관님. 당신의 동영상을 돌려보며 큭큭대는 자기부정적인 행위를 다시는 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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