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각종 게임 커뮤니티를 온갖 조소의 장으로 만들었던 뉴스는 정부의 “새마을 운동 게임” 제작 지원 소식이었다. 저개발국가에 수출하여 새마을운동의 정신과 이념을 교육할 수 있는 기능성 게임 제작에 1.6억을 투자한다는 공고가 나오자, 뉴스 댓글란과 커뮤니티가 들썩였다. 게임의 ‘게’ 자도 모른다는 원초적인 비난부터, 웹툰 만화가 이말년의 작품 중 하나인 ‘두덕리 온라인’이라는 만화를 아예 진짜 게임으로 만들라는 비아냥섞인 조소까지 한결같은 반응이었다.

하지만 콘텐츠진흥원의 발표를 곰곰이 들여다보노라면 마냥 비난만 하고픈 마음이 조금 사라지는 부분이 있다. <2015년 기능성게임 제작지원 사업>이라는 이름의 공고자료에는 총 세 가지 게임에 대해 각각 1.6억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데, 첫 번째가 <교육 - 새마을운동>이고, 나머지는 <공공 - 재난안전교육 및 위기상황대응>, <문화 - 한글 및 언어활용> 게임에 대한 이야기다. 새마을운동을 제외한 나머지 두 개는 꽤나 그럴듯한 공공의 제안이라고 여겨지는 주제들이며, 90년대 PC의 추억이 된 타자게임<베네치아>와 같이 유사한 의도로 제작된 게임이 실제로 존재하기도 한다.

▲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에도 등장한 고전명작 타자게임 <베네치아>. <한메타자교실> 안에 포함된 기능성 게임으로, 쏟아지는 한글 단어를 빠르게 쳐서 없애지 않으면 중앙의 건물이 점점 가라앉는 방식이었다.

많은 이들이 지적한 바 있듯이, 애초에 PC 인프라가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개발도상국에 교육 목적으로 게임을 수출한다는 사실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지금 쏟아지는 비난이 인프라 측면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상황을 조금 바꿔 한국에 새마을운동 이념 보급을 위한 기능성 게임을 출시한다고 가정해도 비난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과연 새마을운동 게임을 만들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성공할 것인가? 정부 시책의 성패 여부를 따지기보다는 게임 칼럼이니 게임적 시각에서 생각해 보자. 과연 새마을운동 게임이 출시되면 그 게임은 게임적 측면에서 얼마나 성공적인 게임으로 평가될 것인가? 쉽게말해 그 게임, 얼마나 재미있을까?

기능성 게임이란 무엇인가

우선 기능성 게임이라는 것에 대해 알아보자. 일반적으로는 시리어스 게임(serious game)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분류는 게임 매체가 가진 본질적 특성을 이용하되 그 목적이 재미보다는 교육, 체험 등 다른 영역에 존재하는 게임들을 묶는 말이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군에서 사용하는 워게임이다. 군사 훈련을 실제 군부대로 이동하고 전투할 때 드는 많은 비용손실을 줄이기 위한 지휘 훈련의 일종으로, 도상훈련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이다. 워게임은 컴퓨터의 출현 이전에도 지도 위에 각종 부대 상징물을 올려 놓고 주사위나 도표 등을 활용해 마치 보드게임과 같은 룰을 통해 지휘관들의 전술 활용을 훈련하는 시뮬레이션으로 활용되어 왔다. 방식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고 느껴진다면 맞다. 바로 보드게임의 방식 그대로다.

▲ 2차대전을 다룬 만화<몽환의 군단 야마토>의 한장면. 미드웨이 해전을 준비하는 일본해군의 워게임 장면이다. 해도 위에 부대를 배치하고 주사위를 굴려 가상의 전투결과를 반영하면서 진행하는 워게임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이미지=엔하위키 미러)

컴퓨터의 도입으로 워게임은 더 많은 데이터를 가상의 전장상황에 반영할 수 있게 되었고, 현실 기동훈련보다 손쉽고 효율적인 지휘훈련을 구현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되었다. 룰에 의한 상호작용이라는 게임의 방식을 고스란히 가져갔지만, 워게임의 근본 목적은 재미가 아니라 지휘훈련 향상이다. 그래서 현존하는 군사용 워게임은 각종 부호와 수치만 지도상에 난무하고, 시각화된 이미지나 사운드 등에 대한 개선은 없다시피하며 극적인 요소도 반영되지 않는다.

하지만 기능성 게임이 재미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재미가 없다는 말과 같은 의미가 되지는 않는다. 군사용 워게임을 예로 들어보자. 전쟁을 다룬 대부분의 전략 게임들은 전장 상황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그럴듯한 전투 장면을 구현해 낼 때 비로소 게임의 재미를 얻는데, 군사용 워게임은 데이터만으로는 이미 차고 넘칠 수준의 전장 묘사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한국군에서 운용하는 BCTP(Battle Command Training Program, 전투지휘훈련프로그램) 운용병들의 체험담을 들어 보면, 일이 많고 잠을 못 자는 환경이었지만 프로그램 자체는 상당한 재미가 있었다는 경우가 많다. 이는 게임이 굳이 재미를 목표로 하지 않더라도, 게임을 구성하는 기본구조 자체가 일정수준 이상의 재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따라서 극단적인 기능성 게임이라고 해도 게임 매체가 갖는 본질적 속성이 제공하는 재미가 완전히 배제되는 경우는 없다. 오히려 교육, 체험을 위해 게임의 요소를 도입하고자 할 때, 게임의 본질적 재미가 함께 따라오면서 교육과 체험의 효용이 높아지는 효과를 함께 바라보는 경우가 대부분의 기능성 게임이다.

서두에 언급한 타자게임 <베네치아>는 <한메타자연습>이라는 타자연습 안에 들어 있는 게임인데, 그냥 예문을 주고 따라치는 타자연습 본편과 달리 도전과제와 스코어, 스테이지와 같은 게임의 룰을 포함하면서 도전과 달성의 재미 요소를 가질 수 있었다. 기능성 게임 중 꽤나 유명한 <폴드잇>은 아미노산의 결합구조를 가지고 일종의 퍼즐 게임으로 만든 경우인데, 자유로운 결정구조 조합과 그에 따른 점수 부여라는 기본 구조만으로도 그럴듯한 퍼즐 게임의 재미를 구현했다.

▲기능성 게임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폴드잇>의 플레이 화면. 단백질 내부의 아미노산 구조를 가지고 구현한 퍼즐 게임으로, 알고리즘이 아닌 인간의 직관으로 파악해야 하는 연구영역을 게이머들의 참여를 통해 풀어내는 기능을 한다. 실제로 AIDS 바이러스의 증식에 필수적인 단백질 구조를 파악해내는 성과를 얻기도 했다.

게임의 재미를 만드는 두 개의 축 - 이학적 재미와 인문학적 재미

기능성 게임들이 단지 게임의 요소를 차용했을 뿐임에도 재미가 있는 건 소재와의 결합이 적절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재미가 있을 소재를 게임화할 경우에만 게임의 내재적 재미가 나타난다. 다시 새마을운동 게임으로 돌아가 보면, 이 단계부터가 보통 난관이 아니다.

<폴드잇>의 경우는 아미노산의 구조를 만드는 일 자체가 일종의 퍼즐과 같은 재미를 준다. 타자게임 <베네치아>는 타자라는 숙달이 필요한 행위가 소재인데, 숙련도가 곧 점수가 되는 구조라 자기경쟁으로 인한 도전과 달성의 재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새마을운동은 안타깝게도 물리적 구조나 행위라기보다는 이념과 정신이다. 이처럼 추상적인 소재를 가지고 게임 매체 본연의 재미를 끌어내는 일이 쉬워 보이진 않는다.

게다가 새마을운동의 핵심 정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개념들은 더더욱 추상적이다. 근면, 자조, 협동 세 가지 개념만으로 위에서 다룬 기능성 게임들과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는 건 확실히 무리수다. 물리적으로 드러난 새마을운동의 내용들이라면 초가집을 슬레트 지붕으로 바꾸고 마을길을 포장하는 등이 대표적인 사례일텐데, <심시티> 나 <트로피코> 같은 도시건설 시뮬레이션으로 외형의 표현은 가능하겠지만 결국 목표하는 정신교육을 달성하려면 단지 슬레이트 지붕이나 콘크리트 포장로 이상의 무언가를 덧씌워야 한다.

기능성 게임은 아니었지만 정신과 철학을 다뤄 호평받았던 <울티마 4>는 이른바 8대 미덕이라는 철학적 가치를 게임 안에 녹여내어 큰 반향을 이끌어낸 작품이다. 정직, 용맹, 동정심, 명예, 정의 같은 사회적 가치들은 게임 안에서 플레이어가 행동하고 교류하는 세상에 고스란히 녹아 있으며, 플레이어는 8대 미덕에 대해 게임 안에서 겪는 일들을 통해 수련해 최종적으로 미덕의 화신이 됨으로써 게임을 클리어할 수 있다.

▲ 고전게임 <울티마 4> 플레이 화면. 1~3편까지의 스토리가 용사 - 악마 대결구도의 전통적 형태였다면, 4편에서는 미덕의 수련과 구현이라는 새로운 주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울티마 4>가 미덕이라는 철학적 가치들을 게임에 풀어낸 방식은 게임 본연의 요소들에 녹여내는 형태가 아닌 서사라는 틀을 이용한 방식이다. 주인공과 주인공이 존재하는 세계를 설정하고,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의 기초에 8대 미덕을 세운다. 주인공은 준비된 서사라는 큰 틀 안에서 게임적 행위를 해 나가며 목표를 향해 전진해 나가는데, 이 서사는 게임만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은 아니다. 같은 서사라면 소설로도 가능하고 영화로도 가능한 것이고, 다만 미덕이 녹아있는 서사를 보다 플레이어의 체험적 시점에서 풀어낸 것이 게임으로서의 <울티마 4>다.

서사는 게임만의 고유 요소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콘텐츠가 공유하는 요소다. 게임도 다르지 않아 상당수의 게임은 서사적 재미를 갖추려고 노력한다. 굳이 구분하자면 게임의 재미를 구성하는 두 가지 축은 이학(理學)적 요소로서의 게임 내적 재미와 인문학적 요소로서의 서사적 재미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테트리스>의 재미가 전자에 무게를 둔다면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의 재미는 확실히 후자에서 빛난다.

근면, 자조, 협동도 <울티마 4>의 미덕과 유사한 형이상학적 소재다. 형(形)이 없는 개념을 추상할 수는 없으므로 게임 내적 요소로 새마을운동의 이념을 풀어내기보다는 서사적 재미를 통해 풀어내는 것이 효율적인 접근일 것이다. 그런데 새마을운동의 정신이란 게 과연 게임 서사에서 풀어내기에 어울리는 정신인지는 의문이다.

게임 서사는 다른 매체보다 더욱 역동적이고 변증적이어야 한다. 게임의 속성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다. 상호작용이 기저에 깔려 있는데 아무런 도전과 응전 없이 흘러가는 게임이라면 플레이어는 그 안에서 어떠한 액션도 피드백도 기대할 수 없다. 새마을운동의 핵심 가치로 불리는 근면, 자조, 협동을 게임 서사로 풀어내기 위해서는 그에 상반되는 다른 가치와의 충돌을 그려내야 하는데, 그림이 나오기가 힘들다. 정의와 비리가 맞붙는 전장, 명예와 비겁이 갈등하는 선택지에 비해 근면과 나태의 갈등은 역동성도 스펙타클도 찾아보기 어려운 대립이다.

당연한 가치를 다룰수록 게임 서사의 의미는 상실한다. 예를 들어 성리학의 정신이 구현된 게임을 만든다고 생각해 보자. 성리학의 궁극적 목적인 개인이 군자가 되고 군자의 나라를 만드는 것이 목표인 게임이라면 이 게임에서 재미를 찾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 될 수 밖에 없다. 새마을운동의 이념도 사실 너무 뻔하다 싶을 정도로 당연한 가치이고, 이를 게임 서사에서 소화하려 한다면 십중팔구 재미없는 이야기가 되고 말 것이다.

게임 내적 요소로서의 재미를 구현하기에는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게임 서사로 풀어내기에는 너무 뻔하고 당연한 가치인 새마을운동의 정신은 그래서 게임을 통해 녹여냈을 때 아주 재미없거나 별 의미가 없는 수준의 결과물이 나올 확률이 높다. 새마을운동에 대한 정치적 판단을 배제하고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높게 친다고 한들 게임으로서의 결과물에 대한 기대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물론 콘텐츠산업에는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 창의성이 존재하고 의외의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사람들이 새마을운동 게임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새마을운동을 기능성 게임의 주제로 선정하신 분께서는 너무 큰 기대를 갖진 않으셨으면 한다. 괜히 윗선에 잘보이겠다고 그 결과물에 대한 기대감을 윗선에 주입했다가는 큰 낭패를 맛볼 확률이 높다. 어차피 예산도 1.6억이고, 이미 2006년에 <스타스톤>이라는 희대의 망작 기능성 게임으로 게임판에 이름을 날린 바 있으므로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혹시나 게임 잘 모르시는 분께서 낙하산으로 자리 차지하시고는 <마법천자문DS>같은 게임을 예시로 들어가며 새마을운동도 이렇게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하셨다면 그 자리 보전하기 어렵다고 꼭 이야기해 드리고 싶다.

▲ 1977년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 포스터. (이미지=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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