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과 을로 나뉜 대한민국의 현실을 블랙 코미디 방식으로 그려내고 있는 <풍문으로 들었소>가 탄력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보이는 허세는 갑과 을이라고 다르지 않은 행동 양식이었습니다. 보이는 위치에 따라 드러나는 모습이 다를 뿐, 허세는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카멜레온의 습성과도 다름이 없었습니다.

허세만이 살 길이다;
한정호와 서형식, 너무 다른 격차 속에서 빛나는 비서들과 고아성의 존재감

격렬하게 몰아닥친 폭풍우가 지나간 후 한정호의 집안은 평화를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절대 갑의 지위를 누리며 살아가던 그들이 혼란과 고통 속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더니 이내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들어온 봄이로 인해 엉망이 되어버린 집안은 다시 봄으로 인해 새롭게 재편되기 시작했습니다.

거대한 성과 같은 공간에서 많은 이들이 집안일을 대신 해주는 한정호의 집과, 허름하고 오래된 가게 위 집에서 온수마저 아끼며 살아가는 서형식의 집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집안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치 자석처럼 끌린 인상과 봄이로 인해 그들은 어쩔 수 없는 사돈 관계가 되었습니다.

결코 인위적으로 좁힐 수 없는 거리를 가지고 있는 이들 집안은 그래서 다툴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자본이 지배하는 민주주의 사회는 더욱 침울하고 경악스러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허울 속에 자본은 날개를 달았고, 그렇게 돈을 가진 자는 그 무게만큼 계급을 얻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계급은 말도 안 되는 갑질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 현재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 갑질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하는 블랙코미디 <풍문으로 들었소>는 그래서 매력적입니다. 갑과 을이라는 도드라진 현실 속에서 부정하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본질을 코믹하게 풀어내는 이 드라마는 흥미롭습니다.

갑과 을의 충돌을 새롭게 가족이 된 두 집안을 통해 극명하게 보여주는 점은 드라마적인 상황을 위한 도구로서 훌륭한 선택이었습니다. 블랙코미디라는 장르의 선택은 강렬한 비판 의식을 보여줘도 큰 문제로 거론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안정장치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을의 허세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서형식은 아무것도 없으면서 당당하고 싶어 합니다. 사돈댁에서도 괜한 자존심이 현실을 망각하게 하고, 그것도 모자라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한다고 '한송'에 찾아가 피켓 시위라도 하겠다던 그의 모습은 씁쓸하게 다가옵니다. 부인 앞에서 큰소리는 쳤지만 현실을 적나라하게 알고 있고 느끼고 있는 형식은 차마 실행에 옮기지도 못했습니다.

자신이 만들어 온 피켓을 찢고 집으로 돌아와서 큰소리를 치는 그의 허세는 을의 슬프고도 하픈 현실이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면서도 알량한 자존심에 대항하려는 심리는 안타까움으로 다가옵니다. 현실 속에서는 강력한 힘을 가진 자에 대한 굴복은 자연스럽게 요구되는 미덕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강제탈모를 자행한 형식에게 복수를 하겠다고 나선 정호의 행동 역시 우습기만 합니다. 블랙코미디이기에 받아들일 수 있는 찌질함이기는 하지만 재미있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개인 사찰을 통해 형식의 집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정호는 본격적인 길들이기에 들어갔습니다. 형식의 해당 판사에게 압력을 넣어 200만 원 벌금을 물게 만들고, 그 돈을 주는 방식으로 길들이는 정호의 방식은 규모만 작을 뿐 실제 현실에서 자주 사용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형식에 대한 길들이기도 모자라 큰딸인 누리의 취업에도 확인 사살을 하는 정호는 대단한 존재임은 분명합니다. 합격 가능성이 99%인 케이블 방송임에도 부사장을 일부러 불러 은밀하게 이야기하는 정호는 자신의 영향력과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형식의 집안에 각인시키고 싶었을 뿐입니다.

자신의 힘 안에서 평안해질 수 있고, 자신을 벗어나는 순간 그들 가족은 붕괴될 수밖에 없음을 200만 원과 한 끼 식사로 해결해버린 정호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갑질에 놀아날 수밖에 없는 을의 현실은 처참하기만 합니다. 이미 정호의 거대한 힘에 기가 죽어버린 형식은 이미 스스로 백기 투항을 했고, 갑에 짓눌린 을의 모습만 남은 상황입니다.

절대 갑의 위상을 찾아가던 정호와 연희는 의외의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혹이라고 생각했던 봄이를 대학에 보내고 적절한 수준의 인상이 부인으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던 상황에서 상상도 못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입주 가정교사인 경태의 입에서 나온 봄에 대한 평가는 자신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입니다.

적당히 가르쳐 여자 대학에 보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그들 앞에 경태는 당장 인상과 함께 사시 공부를 해도 좋을 정도라고 이야기합니다. 투자대비 고효율을 올릴 수 있을 정도라는 말과 함께 검정고시는 말 그대로 하루 외출 정도로 끝낼 수 있는 수준이고, 어떤 측면에서는 인상보다 뛰어나다는 말에 당혹해 합니다. 최연소 사시 합격자가 될 수도 있고, 곧 그녀가 한송의 인재가 될 수도 있다는 말에 머리 회전이 빠른 정호는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저 남들에게 내보일 수 있는 대학 간판만 원했던 그의 바람과 달리, 현실은 제 발로 굴러 들어온 호박이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대학 간판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의 체면을 제대로 세워줄 수 있는 인재라는 사실에 정호는 쾌재를 부릅니다. 갑작스러운 출산으로 인해 자존심이 많이 상했던 정호는 봄이 천재에 가까운 수재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녀에게 급호감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실제 뛰어난 영어 실력과 '군주론'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목을 쉽게 찾아내고 결론까지 정갈하게 정리해내는 봄은 대단한 인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과외도 한 번 받지 않고 이렇게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는 봄은 이제 정호에게는 보석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연희가 비서로 인해 봄이 자신을 압도적으로 뛰어난 미모를 가진 존재임을 재확인하게 해준 사실로 목걸이 선물을 하는 등의 변화 역시 흥미로웠습니다. 8회에서는 한정호의 업무비서인 양재화와 최연희의 개인비서인 이선숙을 통해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중간자적인 입장에 선 그들이 상황을 극단적으로 이끌 수도 있고, 최상의 조건을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기 때문입니다.

<풍문으로 들었소> 8회는 두 개의 중요한 장면이 등장했습니다. 폭풍이 지나간 후 평화를 찾은 정호 집안의 식사 장면과 폭풍의 근원이었던 봄의 임신 소식에 가족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는 형식의 집안 풍경이었습니다. 집안일을 돕는 이들의 시선을 통해 드러난 정호의 집안은 마치 과거 미국의 부유를 상징하는 카탈로그 속 꾸며진 집안과 같은 행복이 가득했습니다.

드라마 속에 만들어진 가족처럼 평화로운 정호의 집과 달리, 1년 전 봄이의 임신 소식에 어쩔 줄 몰라 하는 형식의 집안 분위기는 극단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이 장면들이 중요한 것은 그 상황이 담고 있는 목적성과 의미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장면들이 그들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두 장면만으로도 충분했던 8회였습니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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