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 사장 막는 직원들 있으면, 청경 동원해 다 쓸어버리면 되고~ 그래도 막으면 월급 안 주면 되고~ 모든 게 (2MB) 생각대로 하면 되고~♬♪”

모 이동통신회사 CM송처럼 ‘MB 생각대로 모든 게 다 이뤄지는’ 세상이 되어버린 지 어언 8개월. 세상사 분석을 업으로 삼고있는 기자·피디들도 당장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당최 알 수 없게 됐다.

하루하루 살벌한 언론판을 뛰고 있는 기자들은 현장에서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들은 무엇에서 희망을 찾고 있을까? 미디어스의 창간1주년 특집, <미디어 잔혹, 혹은 희망의 1년사> 기획시리즈에 참여한 기자들은 28일 오후 서울의 모처에 옹기종기 모여 그들만의 ‘썰’을 풀어봤다.

▲ 미디어스의 창간1주년 특집, <미디어 잔혹, 혹은 희망의 1년사> 기획시리즈에 참여한 기자들은 28일 오후 그들만의 ‘썰’을 풀어봤다. ⓒ윤희상

◇“상식없는 정부…기자들도 두렵다!” = 기자라고 뭐 별 게 있겠는가? 시민뿐 아니라 기자들에게도 작금의 상황은 ‘절망’ 그 자체다.

▲ 정영은 미디어스 기자 ⓒ윤희상

기획기사 2회 <물갈이 된 얼굴들…숨은 1인치의 ‘커밍아웃’>에서 2MB정부 출범 이후 언론장악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준, 물갈이된 언론계 인사 등을 다룬 정영은 미디어스 기자는 “사람들이 지난 대선 때 정권이 바뀌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그랬는데 개인적으로 그다지 동의하지 않았다. 바뀐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쌓아온 게 있으니 그래도 싸울만 할 거라고 여겼다”며 “정권이 바뀐다는 게 이 정도의 ‘싹쓸이’를 의미하는지…지난 몇달간 굉장히 놀랐다”고 토로했다.

3회 <일상이 된 필화사건>에서 조중동 광고불매운동 네티즌 구속 등 ‘21세기형 필화사건’을 다룬 나 역시 두렵긴 마찬가지다. “촛불집회 취재때 경찰은 취재진과 시민을 분간하지 않고, 방패를 찍으며 달려오는 순간들이 많았는데 솔직히 나도 너무 무서웠다. 시민들이 청와대를 점거할 것도 아니고 ‘우리 말좀 들어주라’는 것이었는데 그렇게까지 물리적으로 막아서는 정부를 보니 과연 2MB다웠다.”

6회 <기자들이 편해졌다, PD들도 편해졌다>에서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정부를 비판해온 기자, 피디들이 다른 프로그램으로 퇴출되는 현실에 대한 씁쓸함을 드러낸 고재열 시사인 기자는 “과거 시사저널 파업 때 상황이 차라리 더 낫다”며 작금의 현실이 얼마나 심각한지 풀어냈다.

“우리 기자들이 손잡고 함께 번지점프(파업과 창간 과정)를 할 때도 분명 ‘상식’이라는 끈이 발목에 묶여 있고, 밑에는 에어매트도 깔려 있었다. 하지만 지금 KBS나 YTN은 상황이 다르다. 지금 YTN사태 터진 지 100일이 넘었는데, 100일까지 해결되지 않으리라고 예상했던 (YTN) 사람은 없었을 거다.”

안영춘 미디어스 편집장은 “과거 군부독재시대는 완력에서 나온 물리적 권력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자기통제와 검열이나마 있었는데 지금은, 자신들의 권력이 투표용지에서 나왔다는 오만함으로 몰염치한 행동을 대놓고 한다. 몰염치, 이는 이른바 뉴라이트라고 하는 이들의 새로운 인격적 특성을 반영하는 게 아닐까 싶다”고 평가했다.

◇“방관의 달인 ‘KBS노조’ 역할 컸다” =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됐을까. “모든 게 MB때문”이라고 하면 명쾌하고 속은 편하겠지만, 현명한 판단은 아니다. 정부의 언론장악을 직·간적접으로 도운 언론계 내부 사람들의 ‘공’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 고재열 시사인 기자 ⓒ윤희상

고재열 기자는 “‘프로 방관자’인 KBS노조가 최악의 비극의 시작인 것은 분명하다. 지난 6월 11, 12일 1만여명이 촛불집회를 하다가 KBS를 지키자며 여의도까지 갔는데 그쪽에서 ‘왜 오셨어요?’라며 시민들을 ‘뜨악’하게 만들었다. KBS노조는 촛불의 정통성을 한방에 무력화시켰다”며 “박승규 언론노조 KBS본부장과 수많은 언론학자를 비롯한 프로 방관자들, 즉 방관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데 방관하는 사람들은 과거 기자실 폐쇄에 대해 언론자유 침해인양 온갖 걸 다하더니 언론자유를 완벽하게 뺏으려는 것에 대해서는 완전히 침묵했다”고 쓴소리를 내놓았다.

정영은 기자도 “KBS 촛불집회 취재를 갔는데 몇몇 KBS사람들이 촛불집회를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식으로 팔짱끼고 구경하고 있더라. ‘왜 그렇게 구경하세요’라고 물어보니까 그 사람들은 사장 교체가 자기의 안위에 대해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정연주 사장이 해임돼도 후임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사장으로 바뀔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고 말했다.

나 역시 KBS 촛불집회 취재 때 고엽제전우회 아저씨 한 분이 나에게 KBS노조가 내건 ‘정연주 반대’ 구호를 보고 “얘네들은 정말로 자기들 사장을 반대하는 거냐. 정말 그런거 냐. 이유가 무엇이냐. 그렇다면 우리가 정연주 물러나라고 하지 않아도 내부에서 알아서 정리되는 거냐”고 집요하게 묻던 기억이 났다.

“공영방송 KBS 내부 구성원들은 정연주 사장이 해임되고, 이병순 사장이 선임될 때 큰 저항을 하지 않았다. 이병순 사장 취임식날 정문에서 그를 막았던 KBS직원들은 50명밖에 안됐으니까. 씁쓸하다. 아무리 외부에서 ‘KBS지키기’에 용을 쓰면 뭐하나? KBS내부에 의식있는 언론인들이 별로 없다는 걸 깨닫고 무기력함을 참 많이 느꼈다.”

안영춘 편집장은 “그들은 상식에 대한 공세가 시작되면서, 비로소 본모습이 아웃팅되거나 스스로 커밍아웃하는 존재들이다. 사회가 진보하는 흐름에 편승해서 편하게 왔던 사람들인 것 같은데, 물결이 바뀌는 순간 약삭빠르게 다른 쪽에 편승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라고 해석했다.

◇“희망아! 넌 도대체 어디 있는 거니?” = 목이 쉬도록 외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완벽하게 무시하는 상식없는 정부. 언론장악을 돕고 있는 언론인 출신 정부 관료들. 언론이길 포기한 보수신문. 이런 현실에 과연 희망이 있을까?

5회 <촛불 이후, 두 여인의 연대>에서 너무나 다른 두 여성(여자친구·엄마)이 촛불을 계기로 연대하게 됐음을 전한 김완 미디북스 에디터는 자신의 글을 ‘우린, 지는 법이 없다’는 씩씩한 말로 끝맺으며 ‘희망론’을 내놓았다. 그가 ‘희망’을 말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 김완 미디북스 에디터 ⓒ윤희상

김 에디터는 “정치적 문제의 승패를 놓고 뭔가를 판가름하기에는 한국사회는 민주적으로 복잡해지고 발전돼있다. 촛불집회를 통해 어떤 특정한 목표를 달성한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사안에서 무엇이 합리적인지 시민들 개개인이 판단하고 행동하는 단계로 우리는 진화해가는 것”이라며 “서울의 평균소득은 3만불이 넘어 제1세계 도시 수준인데, 제1세계 어느 도시에서 이런 집회를 할 수 있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뉴욕같은 대도시에서 길 다 막고 이렇게 집회할 수 있을까. 서울이 그정도 수준의 잠재력을 갖고 있음을 촛불집회를 통해 확인했다”고 말했다.

반면, 고재열 기자는 작금의 상황이 ‘매맞는 아내’ 국면이라며 부정적 현실 인식을 드러냈다. 가부장적 표현이긴 하지만 묘하게 잘 들어맞는 표현이다.

“지금은 ‘매맞는 아내’처럼, 많이 맞다보면 내면화되고, ‘괜히 발악하다가 매만 더 버니 조용히 있자’며 체념하고, 처음엔 말리던 주변에서도 ‘저 집은 원래 그래’라고 생각하고…, 무기력한 국면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희망의 단서가 사라진 건 아니었다. 고 기자는 “언론학자들 중 이런 활동과 무관하게 계셨던 분들이 ‘미디어공공성포럼’이라는 판을 벌였다. 출범 때 대표단들은 ‘학자는 연구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학자의 방식으로라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위급 상황’이라고 말하더라. 한 사람은 ‘인간으로서 참을 수 없다’고도 말했다”며 “그분들의 말을 넋놓고 듣고 있다가, 그 지점에서 그래도 우리가 지난 십년간 쌓아온 것들이 나타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 말했다.

▲ 안영춘 미디어스 편집장 ⓒ윤희상

안영춘 편집장도 “지금 우리가 ‘프로 방관자’라고 이름붙인 자들은 그동안 사회에서 대단한 역할을 하는 것처럼 비쳐졌는데, 어느 순간 싸늘하게 실체를 드러냈다”며 “외려 방관자로 보였던, 역사의 진보를 방해하진 않았으나 동면하는 듯했던 학자들이 비로소 잠에서 깨어 눈을 뜬다는 느낌이 든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지난 1년 사이 부쩍 진화한 듯 보이는 네티즌들로부터도 희망을 발견하고자 하는 모습이었다.

고 기자는 “지금은 어떤 사건이 신문이나 방송에서 기사화 될 때쯤이면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이미 인지를 넘어 액션까지 끝나버리더라”며 경험담을 펼쳤다.

“진보신당을 백색테러한 HID가 보령 대천해수욕장의 경비용역을 따냈다고 해서 확인취재에 들어갔는데, 네티즌들은 이미 알고 ‘얘네들 촛불집회에서 난동피우는 대신 떡고물로 이거 받은 거 아니냐’며 행동까지 다 취한 뒤였다”며 “내가 해수욕장 상인회에 전화를 했더니 거기는 이미 쑥대밭이 됐고, 상인 회장은 넋나간 사람처럼 ‘HID 안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기자로서 가장 먼저 전화하는 건데도 네티즌보다 느렸다(웃음)”고 말했다.

안 편집장도 “기자가 제일 느리다. 하하. 이렇게 즉자적이고 순발력있게 인지하고 행동하는 누리꾼들 자체가 희망의 동력일 수 있다”고 맞장구를 쳤다. 안 편집장은 또 “지금 현실이 아무리 답답해보여도 오히려 1년 전보다는 나은 상황일 수 있다. 현 정권이 1년 전에는 한국사회 대중의 미망을 등에 업고 있었다면 지금은 오로지 물리력에 의지해 상황을 통제하고 있는 국면이다”며 “대치선이 단순해질수록 전술도 간명하다. 이것 역시 우리가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지점이 아닐까 싶다”고 역발상을 내놓았다.

◇“2MB시대를 살아내는 방법을 개발하자” = ‘희망 강박증’에 걸린 것일까. “희망이 없다”고 토로하던 기자들은 역설적으로 ‘2MB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을 만들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절망의 시대를 견뎌낼 수 있는 삶의 방법들을 고민해 행동하자는 거다.

정영은 기자는 “조중동을 다 불태워서 없앨 수도 없고, 이민갈 수도 없고, 뉴라이트가 현실세력으로 존재하는 사회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이제는 2MB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될 때”라며 “2MB시대에 부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고, 강북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고, 선생님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해보자.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도 2MB시대 네티즌이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로 계속 해나가는 거다”고 말했다.

‘매맞는 아내론’을 폈던 고재열 기자도 “이명박 정부 시대를 어쩔 수 없이 거쳐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의미있게 소화해낼 방법도 있다. 사회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한번 내 볼 수 있는 절호의 찬스고, 자신의 중요한 이력도 남길 수 있다. 그래도 군사독재시절보다 리스크는 더 적지 않느냐. 그렇게 담대하게 이명박 시대를 소화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며 “과거에는 방송사 안에서 피디가 정치사안을 말하면 ‘나댄다’고 했는데, 이제는 나서면 시민들로부터 박수받는다. 우스개로 KBS 모 피디는 ‘정치피디의 계절이 돌아왔어’라고 하더라.(웃음)”고 말했다.

▲ 나, 곽상아 미디어스 기자 ⓒ윤희상

나는 “동아일보가 무슨 일만 터지면 ‘모든게 다 노무현 탓’이라는 논리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수신문들이 날마다 왜곡보도를 쏟아내고 있는데, 그렇다면 매체비평지 기자인 나는 언론을 조롱하는 놀이를 열심히 해보겠다”고 말했다.

안영춘 편집장도 “조중동은 여론 담론의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언론산업’을 장악하고 있다고 쿨하게 볼 수 있다. 조중동이 진보적 매체의 산업적 기반을 자꾸 훼손하거나 위협하거나 하는 존재라는 게 진짜 위협적인 것이지, 그들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시장점유율만큼 여론을 끌고가진 못한다”며 “2MB시대의 언론인들은 조중동을 ‘공략의 대상’보다는 ‘낙후의 대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2MB시대를 살아내는 방법’의 구체적 지침이 아직 정해져 있지 않으면 뭐 어떤가. 앞으로 차차 지침들을 하나씩 채워나가면 될 터. ‘아무리 국민 목소리를 무시하는 정부라도 우리는 끝까지 우리 방식대로 싸워 나간다!’는 방향이 정해진 것만으로도 답답했던 우리들의 가슴에 한줄기 바람이 불어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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