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할당은 원칙적으로 18:00로 하되 고객의 요구 등 필요시 기사와 협의해 추가 할당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추가 임금지급요구를 하지 아니하며 근로기준법 등 관련 법규 준수여부를 다투지 아니한다”
“업체사장의 휴일근무 지시는 이행한다. 파업 등의 사유로 휴일근무를 거부할 수 없다(토요일은 휴일에 해당하지 아니하며 정상근무함)”
“업체 또는 센터에 대한 과거의 일체의 체불임금(연차, 퇴직금 등)이 없음을 확인한다”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파업 노동자들 가운데 업무에 복귀하겠다고 밝힌 조합원들에게 ‘강북행복센터’가 내민 합의서 중 일부이다. 추가근로에 대해 별도의 임금지급을 하지 않는 등 사실상 <근로기준법> 위반 사항을 버젓이 담고 있다. 사장이 거부할 때에는 파업 중이라도 휴일 근무를 해야하고, 과거의 체불임금은 일절 지급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도 엿보인다. 이동통신업계 1위 그룹인 SK 계열사에서 벌어지고 있는 추태에 가까운 현실이다.

▲ 3월 17일 전국언론노동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소비자주권행동,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방송독립포럼, 새언론포럼, 언론광장, 자유언론실천재단, 희망연대노동조합은 기자회견을 열어 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 간접고용·비정규직 파업 문제와 관련해 미래부와 방통위가 책임지라고 촉구했다ⓒ미디어스

그러나 여전히 원청인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는 교섭의지 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관리 감독의 책임이 있는 정부 또한 적극적이지 않다. 이에 전국언론노동조합을 비롯한 언론시민사회단체들은 17일 서울 소공동 서울중앙우체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 간접고용·비정규직 파업’ 미래부와 방통위가 책임지라”고 촉구했다. 이날은 SK브로드밴드 인천계양 행복센터 소속 장연의 씨와 LG유플러스 전남 서광주 고객센터 소속 강세웅 씨가 15M 높이 광고판에 올라간 지 40일째 되는 날이었다.

“유료방송 핵심 업무 담당하는 노동자들 투쟁에 방통위·미래부는 나몰라라”

전국언론노동조합 김환균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장연의·강세웅 노동자가 고공농성에 돌입한 지 40일 째 되는 날”이라며 “정부는 유료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실태에 대해 조사하고 해법을 연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케이블·IPTV 유료방송 설치기사들의 처우는 전체 언론·통신 노동자들 가운데서도 가장 열악한 형편이다. 앞서, 씨앤앰이 노사 간 합의를 이뤄냈지만 나머지 유료방송 사업자들의 노동환경은 나아진 게 없다.

김환균 위원장은 “IPTV는 한국사회에서 고속 성장을 거듭해왔다”고 지적하며 “우리나라 대부분의 재벌기업이 그렇듯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IPTV 역시 노동자들의 피와 땀을 희생삼아 부를 축적해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IPTV는 유료방송이기는 하지만 공공성을 기반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부를 얻었다면 마땅히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 그 속에서 고용 안정성에 무엇보다 힘을 쏟아야 한다”며 연대의 뜻을 밝혔다.

민주언론시민연합 박석운 공동대표는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를 향해 “1년에 수 조원의 수익을 내는 3~4위 기업들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 직접 소비자들을 만나는 설치기사들의 노동환경을 그야말로 참담하게 방치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는 “이 같은 상황에서 소비자들에게 올바른 서비스가 제공될 리 만무하다. 이들의 요구는 간단하다. 진짜 사장 나오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유료방송의 노동현실이 이런데도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며 “지난해부터 장기투쟁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은 방송의 근간이 되는 설치·보수·유지업무를 맡고 있는 기사들”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나라 전체 시청자의 90%가 유료방송 가입자로 이들이 거의 모든 시청자의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핵심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들이 차가운 길바닥에 내몰리고 광고탑에 올라 겨울을 나는 데에도 방송의 공공성을 책임져야 할 방통위와 미래부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SK브로드밴드 전환하면 혜택을 많이 드리겠다”는 전화를 받았다면?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를 향해 “사회적 기업으로 거듭나라”고 촉구했다.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에 대한 책임을 다하란 요구였다. 아울러 이들 기업들이 고객들의 정보를 불법적으로 활용하고 있단 폭로도 나왔다.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지부 김대원 부지부장은 “SK브로드밴드는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도 모자라 IPTV 가입자 정보를 불법 도용하고 있다”며 “(가입자 정보의) 제3자 제공은 본인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지만 SK플래닛과 하나SK카드 영업을 위해 불법적으로 유출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김 부지부장은 “회사에서 고객정보를 불법적으로 보관하고 있는 이유는 한 가지”라며 “SK를 쓰다가 해지한 가입자들에게 3년이 지난 시점에 맞춰 재가입을 요구하기 위한 것이다. 가입기간 한두 달 남겨놓고 ‘SK브로드밴드로 전환하면 혜택을 많이 드리겠다’고 전화를 받은 적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언론개혁시민연대 전규찬 대표는 “이번 싸움은 유료방송 비정규직만의 투쟁이 아니다”며 “SK와 LG라고 하는 이 땅의 재벌에 대한 투쟁이다. 문제의 핵심은 거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들은 시민들의 개인정보를 빼내 유출시키는 자본이다. 또한 하도급에 하도급(다단계 하도급)으로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시청자들의 복지를 후퇴시키는 못된 자본”이라면서 “방통위와 미래부는 이들 자본이 고개들의 개인정보를 어떻게 유출시켰는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요구했다.

▲ SK브로드밴드 강북행복센터에서 노동자들에게 요구한 각서

업무 복귀 노동자들 향한 사측의 부당한 요구 이어져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지부 김대원 부지부장은 “지난 9일부터 현장 복귀투쟁을 진행 중인데, 강북행복센터에서 조합원들이 복귀하는 시점에 일방적으로 외곽지역(상대적으로 일이 힘든)으로 지역변경을 하거나 합의서에 사인을 하라는 요구를 받았다”며 “오후 6시 이후 근무에 대해 추가수당을 요구하지 말 것 등 말도 안 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폭로했다. 해당 센터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이러한 부당 지시로 인해 업무복귀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LG유플러스 비정규직지부 이정훈 상황실장은 “한 지역에서 10년 동안 일을 해왔지만, 바지사장이 계속 바뀌면서 퇴직금을 떼어먹고 도망가는 일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니다”며 “안전장구도 없이 일하다 사망한 노동자들에게 SK와 LG유플러스가 해준 것은 (장례식장에)그들 업체의 마크가 찍혀 있는 나무젓가락 등을 제공하는 게 전부”라고 개탄했다.

언론노조와 언론시민사회단체들은 기자회견이 끝나고, 방통위와 미래부에 ‘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 사태’에 대한 전면적인 실태조사를 촉구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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