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제작자의 일은 시청자가 좋아할만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청자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 것이다. 이 간단한 일을 해내기 위해 수많은 제작자들이 골머리를 앓는다. 모든 시청자를 만족시킬 수 없는 상황에서 최대한 많은 시청자에게 인정받기 위해 며칠에 걸쳐 회의를 하고 촬영하고 또 편집한다. 시청자들의 기호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데 만약 어떤 제작자가 방송 제작과 관련해 일일이 시청자에게 의견을 묻는다면, 그것은 제작자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을 시청자에게 떠넘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이 프로그램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라면 더욱 그렇다. 가령 출연자와 같은 부분 말이다.
보통 섭외에 대해서는 제작자의 고유권한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들은 고심을 거듭해 현재 인기가 많은 연예인을 섭외하거나, 혹은 장래가 보이는 연예인을 섭외한다. 섭외는 매우 중요하면서도 막상 프로그램이 제작되고 시청자의 반응을 살피기 전에는 정확하게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무척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무턱대고 인기 있는 연예인을 쓴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도 아니며, 때로는 전혀 의외의 인물이 큰 인기를 얻고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를 높이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캐스팅은 제작자에겐 핵심 임무와 같은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김영철 같은 경우 언제나 호불호가 갈렸던 출연자였고, 보편적으로는 불호의 이미지가 강했던 연예인이었다. 그러나 최근 '힘을내요 슈퍼파월'의 인기 덕분에 꽤 많은 추천을 받았다. 당시의 인기가 식스맨의 판단기준이 될 수도 있다는 점, 그리고 <무한도전> 같이 팀원들 사이의 관계가 중요한 프로그램에서 방송 외적인 모습과 관계를 거의 모르는 시청자들이 추천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직무유기'는 더욱 명확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한도전>의 이 같은 판단이 단순히 책임회피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오히려 그들은 책임 회피를 하기보다는 이 과정 또한 충분히 재밌는 에피소드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비추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기존 방송들이 대부분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그 프로젝트가 완성된 것을 방송하는 반면에, <무한도전>은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기획하는 과정까지 예능의 일부분으로 만들어온 지 꽤 오래 됐다. 이 과정 자체를 하나의 즐거운 에피소드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들에겐 깔려 있다.
이 외에도 언제나 많은 시청자들이 이미 <무한도전>의 제작에 관여하고 있다. 심지어는 논란이 될 만한 에피소드가 방송되는 것을 막기도 했다. <무한도전>은 출연자, 제작진, 그리고 시청자가 그 어느 프로그램보다도 긴밀하게 그리고 유기적으로 호흡하며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이 됐다. 따라서 출연진 선택에 시청자를 참여시키는 것은, 엄밀히 말해 직무유기라기보다는 프로그램의 또 다른 주축으로서 시청자를 인정하는 것으로 보는 편이 옳다.
물론 때로는 제작진의 단호한 선택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시청자에게 선택을 맡겨도 이를 통해 충분히 재밌는 에피소드를 만들어낼 수 있고, <무한도전>을 더욱 사랑받는 프로그램으로 이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무한도전>은 비겁하게 공을 넘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청자의 지위를 높이고, 그들의 노하우를 당당히 뽐낸 것이다.
이 기획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제작진은 식스맨이 뽑힐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 결과에 상관없이 중요한 것은 시청자는 다시 한 번 <무한도전>의 한 주축으로서 활약했다는 것이고, 제작진은 시청자를 만족시킬 만한 에피소드를 뽑아낼 것이라는 점이다. 제작진과 시청자와의 긴밀한 협업의 의해서.
문화칼럼니스트, 블로그 http://trjsee.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문화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화 예찬론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