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프랑스 화가 장 프랑스와 밀레는 농군이 일하는 농촌풍경을 많이 그렸다. ‘씨 뿌리는 사람’, ‘만종’, ‘양치는 소녀’, ‘이삭 줍는 사람들’ 등등…. 그는 보고 느낀 농촌현실을 그대로 화폭에 옮겼다. 1857년 ‘이삭 줍는 사람들’을 내놓자 비평가들은 그를 사회주의자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그는 정치적 의미를 부인했다.

▲ 경향신문 10월29일자 2면
하지만 낱알을 움켜쥐는 여인의 손, 멀리서 짚단을 이고 걷는 여인들, 그리고 잿빛 지평선 가까이 보일까 말까 하는 말 탄 모습의 현장감독이 농군의 힘겨운 삶을 말하고도 남는다. 추수가 끝난 다음 줍는 이삭이라도 모두 농군의 몫이 아니었다. 큰 몫은 지주의 차지였고 나머지만 그들에게 돌아갔다. 오늘날 말로 하면 밀레는 지주의 착취를 묘사한 민중화가쯤 된다.

부재지주들이 쌀소득보전직불금을 가로챘다고 해서 나라가 시끄럽다. 그것도 공직자들이 앞장섰다. 다자간협정인 WTO(세계무역기구)는 농업에 대한 정부지원을 금지한다. 미국이 자국산 농산물의 경쟁력을 높이려고 만든 장치다. 그래서 정부가 가을에 쌀값 하락을 막으려고 쌀을 사주던 추곡수매제를 없앴다. 가격지지가 아닌 소득보전 방식으로 도입한 것이 쌀소득보전직불제다.

그 이유는 벼농사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한 때문이다. 식량안보, 홍수조절, 대기정화, 환경보존 등이 그것이다. 논은 산소를 뿜어 공기를 깨끗하게 한다. 홍수가 나도 논이 빗물을 가두어 피해를 줄이고 지하수를 풍부하게 한다. 무엇보다도 식량안보를 지킨다. 그 까닭에 농사를 짓지 않으면 받을 자격이 없다. 때와 곳이 달라도 지주의 탐욕은 같아서 소작인한테 돌아갈 몫조차 가로채는 모양이다.

헌법은 경자유전의 원칙을 선언하고 있다. 농민이 아니면 농지를 소유할 수 없다는 뜻이다. 권력을 잡은 자들이 그동안 농지법을 형해화했지만 여전히 스스로 농사를 짓지 않으면 농지를 소유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래도 투기목적으로 논밭을 사들인다. 소작을 주면 해마다 수확량의 절반쯤을 소작료로 챙기고 기다리기만 하면 땅값이 뛰기 때문이다.

농지법은 농지소유의 조건으로 경작지와 주거지 사이를 규정하는 통작거리라는 것을 두었다. 논밭과 가까이 살아야 농사를 지을 수 있으니까 거리를 제한했던 것이다. 그것을 없애버렸다. 8년간 경작실적이 있으면 양도소득세를 감면해 주도록 했다. 조세회피의 길을 터주니 직불금을 더 챙긴다. 경작 여부를 마을의 이·통장이 확인해주면 그만이다. 동네 소작인이 부탁하는데 안 들어 줄 수 없는 입장이다. 소작을 지으며 그 짓을 마다거나 직불금을 타겠다고 나섰다간 소작은 끝장이다.

2006년 쌀직불금을 타간 사람이 모두 99만8000명이란다. 그 중에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이 놀랍게도 28만명이나 된다. 직업이 밝혀진 사람이 17만3497명이라는데 공무원이 무려 3만9971명으로 가장 많다. 공무원은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재산을 신고하니 농지소유에는 자경의무가 따른다는 사실을 잘 안다. 법을 우습게 아는 인사들이 이렇게 많이 공직에 앉아 있으니 나라꼴이 이 모양이다.

전-현 정권이 책임공방을 벌이는데 유치하다. 노무현 정권은 농촌붕괴를 전제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을 추진했다. 지지율은 바닥인데 대선은 다가오고 성난 농심에 불 지르는 격이 될 테니 덮은 것이다. 국정조사를 통해 진상을 철저하게 밝혀야 한다. 그동안 가짜농민들이 챙긴 돈이 물경 5000억원이나 되는 모양이다. 훔친 국민의 혈세를 돌려받고 마땅히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처벌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몇 사람 다치더라도 국민감정을 따르라. 허튼 짓 하다간 강부자정권이란 탈을 집권 내내 벗지 못하고 지지율은 더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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