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쪽의 동의 없이 성관계를 맺는 장면으로 ‘데이트 강간’ 논란을 빚은 MBC <전설의 마녀>에 대해 방통심의위가 만장일치로 ‘문제없음’ 결론을 내렸다. 방통심의위원들의 인권감수성이 떨어지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산하 방송심의소위(위원장 김성묵)는 11일 MBC 주말드라마 <전설의 마녀>에 대한 심의를 진행했다. 지난달 15일 <전설의 마녀>에서는 탁월한(이종원 분)과 손풍금(오현경 분)은 가상 부부 연기를 하게 되면서 같이 하룻밤을 지내는 내용이 그려졌다. 한 방을 쓰게 된 상황에서 탁월한은 몰래 아궁이의 불을 껐고, 추위를 느낀 손풍금은 탁월한의 품에 안겼다. 그 후, 탁월한은 “먼저 선을 넘은건 꽃뱀 아줌마”라며 손풍금에게 이불을 덮어씌웠다. 다음 날, 손풍금은 “남편 죽고 꽃봉오리처럼 지켜왔는데…”고 한탄한 바 있다. 성관계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내용으로 시청자게시판에선 ‘데이트강간’ 논란이 벌어졌다.

▲ 2월 15일자 MBC '전설의 마녀' 데이트강간 논란이 된 장면 캡처

데이트강간이란, 서로 간 동의 없이 강제로 성관계를 갖는 범죄이다. 둘 사이가 연인이나 부부관계라 하더라도 법에 의해서 처벌받는다. 특히, MBC <전설의 마녀>에서 탁월한과 손풍금은 서로 선을 긋고 “절대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논란이 일자 배우 이종원 씨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결과적으로 드라마의 오점”이라고 장면에 문제가 있었다고 일부 인정했다.

하지만 MBC는 문제를 더 키웠다. 해당 드라마에서 탁월한은 성관계 이후, 청혼계획을 세웠다. 손풍금은 “남편 죽고 꽃봉오리처럼 지켜왔는데…”라고 괴로워하던 모습은 오간데 없이, ‘그 날 밤 아무 일도 없었으면 넌 나한테 죽었다’라는 독백을 한 장면을 넣었다.

데이트강간은 ‘속마음과 다르게 튕긴다’라는 인식에서 시작된다. 특히, “여성들의 ‘안돼’라는 말은 ‘된다’라는 말과 같다”라는 식의 표현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예능·드라마에서 심심찮게 등장했던 차별적 발언이었다. 하지만 MBC <전설의 마녀>에 등장한 탁월한과 손풍금의 언행은 구시대적인 인식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었다. ‘하룻밤 지낸 것은 결혼으로 책임지면 된다’는 가부장적 남성과 ‘겉과 달리 속으로는 관계를 원했다’는 여성의 모습은 그 자체로 잘못된 인식을 더 고취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MBC <전설의 마녀> ‘데이트 강간’ 논란에 대해 방통심의위 자문을 맡고 있는 연예오락방송특별위원회에서는 ‘행정지도’와 ‘문제없음’ 의견으로 갈린 바 있다. 그러나 이날 방송심의소위에서 심의위원들은 전원 만장일치로 ‘문제없음’ 의견을 밝혔다. 심의 과정에서 해당 드라마가 어떤 부분에서 ‘문제없음’ 결론이 적절한지 그 이유 또한 드러나지 않았다. 방통심의위 구성에 다양성이 없기 때문이 아니냐는 논란이 예상된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이윤소 활동가는 MBC <전설의 마녀> 데이트 강간 논란과 관련해 “방통심의위에서 만장일치로 문제없다는 사실이 놀랍다”며 “드라마의 결론이 탁월한과 손풍금이 결혼하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하더라도 당시 동의없이 성관계가 이뤄졌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부부 간 동의없이 성관계를 맺어도 강간인데, 심의위원들의 이 같은 문제(인권) 감수성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전형적인 가부장적 남성의 시각이 심의에 반영된 게 아니냐는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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