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 오후 5시, 한국프레스센터에서는 부산국제영화제조직위원회의 주최로 ‘부산국제영화제 미래비전과 쇄신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가 이동진 평론가의 사회로 열렸다. 현장에는 임권택 감독, 박찬욱 감독, 심재명 명필름 대표를 비롯해 수많은 영화인들이 참석했다.

2015년은 한국 영화사에 뜻깊은 해이다. 한국 최초로 본격적인 국제 영화제의 장을 만든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하지만 정작 스무살 생일을 맞이한 BIFF는 축하의 말이 아니라 냉혹한 현실과 마주해있다. 지난 1월 말, 이용관 BIFF 집행위원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부산시의 관료들로부터 사퇴를 권고 받았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부산시는 처음엔 사실을 부정했지만, 이후 보도자료를 통해 이러한 사실이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인정했다. 그러면서 부산시는 현재 BIFF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 쇄신을 요구했다면서 역으로 BIFF 측이 변해야 한다고 맞섰다.

그리고 상황은 현재 진행형이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부산시와 BIFF 조직위원회 간의 갈등은 어느 정도 누그러들었다. 2월 17일부로 서병수 부산시장과 이용관 집행위원장이 서로 대담을 나눈 끝에 조직 쇄신안에 합의를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의 싹이 완전히 가라앉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쇄신안에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가 되었던 지점은 ‘공동집행위원장’을 둔다는 부분이었다. 물론 BIFF의 초석을 세운 김동호 전 BIFF 집행위원장(현,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장)이 은퇴하기 몇 년 전, 현재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용관 집행위원장과 공동으로 위원장을 맡았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인수인계 등을 위한 임시적인 조치였을 뿐, 정치적인 논란으로 인해 결정된 사안이 아니었다.

많은 영화인들이 부산시와의 합의안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부산국제영화제에 벌어진 논란과 비슷한 시기에 등급분류 면제추천제 변경, 독립영화 지원사업 통폐합을 영화진흥위원회가 독단적으로 추진하며 영화인들과 마찰을 빚었기 때문에 논란이 더 컸다. 이렇게 합의안에 대한 왈가왈부가 벌어진지 약 한 달 후인 지난 10일,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는 BIFF 조직위원회의 주최로 ‘부산국제영화제 미래비전과 쇄신안 마련’을 전면에 내건 공청회가 열렸다. 부산시와 BIFF 간의 합의가 있기 전 지난 달 10일에 벌어진 부산 공청회에 이은 공청회였다.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사회로 곽용수 인디스토리 대표, 민병록 동국대 명예교수(전,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박찬욱 감독, 심재명 명필름 대표, 임권택 감독, 그리고 이용관 BIFF 집행위원장이 참석했다.

공청회는 고성만 오가지 않았을 뿐 시작부터 부산시의 BIFF에 대한 정치적 압박과 BIFF의 합의안에 대한 비판으로 열기가 넘쳐흘렀다. 민병록 명예교수는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표현을 써가면서 부산시의 행동을 맹렬하게 지적했다. 임권택 감독 역시 자신이 1980년대 해외 영화제에서 기자들에게 작품에 대한 질문 대신 한국 정부의 검열 문제에 대한 질문을 많이 들었던 경험을 꺼내면서 이번 사태가 부산의 수치는 물론 한국 전체의 수치가 되고 있다고 발언하였다. 또한 박찬욱 감독은 이번 사태가 선례로 남지 않기 위해서 BIFF가 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할 필요성을 주문했다.

현장에서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지난 달 전해진 공동집행위원장 제안에 착오가 있었음을 말하며, 해당 제안은 영화계와 시민이 동의하는 인사를 새롭게 구해 선임한 뒤 인수인계 등의 절차를 걸쳐 자신이 그만두려는 의미였다고 설명했다. 또한 부산시장이 BIFF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에 대해 확답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꺼내며 지금까지 나오지 않은 새로운 이야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에 민병록 명예교수는 국비는 물론 지방비도 지원을 받지 않고 완전히 독립적인 영화제로 자리 잡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박찬욱 감독은 이런 식의 대처는 지금까지의 저항을 헛수고로 만들 수 있다면서 강하게 반대의 의사를 내비췄다. 패널들의 토론이 끝난 후 객석에서 나온 의견들도 대부분 이러한 식의 대처는 옳지 않다는 입장에 대한 것이었다. 그렇게 객석에서 나오는 말을 듣던 중 문득 뇌리를 스치는 말을 듣게 되었다. 다른 해외 영화제들은 이렇게 영화제에 간섭을 하지 않는데, 전주나 부산은 영화제가 무언가를 해주기를 원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영화제를 가지고 벌어지는 논란은 사실 이번 BIFF가 처음이 아니다.

부천, 전주, 부산… 영화제, 지자체와 계속 갈등 상황에 놓이다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과 전주국제영화제(JIFF)는 부산국제영화제 이전에 가장 큰 논란이 벌어졌던 영화제들이었다.

이미 두 차례 큰 영화제를 놓고 내홍이 있었다. 첫 번째 논란이 벌어진 영화제는 2004년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이었다. 그 해 12월 BiFan 조직위원회는 김홍준 집행위원장을 해촉하는 안건을 상정해 통과시켰다. 당시 조직위원회가 들었던 해촉 사유는 김홍준 집행위원장이 같은 해 9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이 되어 영화제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김 위원장이 BiFan이 처음 열렸던 1997년부터 계속 영화제에서 일을 했었던 것을 생각하면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이유였다. 일각에서는 2004년 여름에 열렸던 BiFan에서 김 위원장이 홍건표 당시 부천시장의 이름을 개막식에서 한 번에 제대로 부르지 못한 것이 진짜 이유가 아니겠냐는 의혹이 돌기도 했었다.

결국, 이 해촉은 영화인들의 많은 반발을 낳았다. 그 다음 해인 2005년, 김 위원장의 해촉에 반대하는 영화인들은 BiFan과 비슷한 시기에 김 위원장을 집행위원장으로 선임해 ‘리얼판타스틱영화제’라는 이름의 또 다른 영화제를 개최했다. 영화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둘로 나뉜 것은 물론 작품도 둘로 나뉘었다. 그리고 오히려 볼만한 작품이 더 많았던 리얼판타스틱영화제에 더 많은 관객이 왔다. 2005년 BiFan의 관객은 2004년의 절반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리얼판타스틱영화제는 2005년 이후로 다시 개최되지는 않았지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예전의 위상을 찾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고 그 후유증은 지금까지도 미치고 있다.

두 번째로 논란이 되었던 영화제는 2012년의 전주국제영화제(JIFF)였다. 그 해 5월 영화제가 마무리된 뒤 영화제의 주요 작품을 선정해오던 유운성 당시 JIFF 프로그래머가 갑자기 그 다음 달에 해고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8년 동안 프로그래머로 활동해오면서 ‘실험영화’, 그리고 ‘디지털영화’라는 JIFF의 고유한 정체성을 확립했다는 평을 들어왔던 사람이었기에 의문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JIFF 조직위원회는 해임 사유로 유운성 프로그래머의 언행에 지속적인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들었다. 당시 유 프로그래머는 폐막 기자회견에서 ‘영화제는 영화제일 뿐 영화도 트는 축제가 아니다’고 발언하는 등 영화제를 지역 발전의 수단으로 여기는 지역 언론과 갈등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갑작스럽게 유 프로그래머가 해임되자 프로그래머 본인은 물론 영화인들은 지역 언론들과 유지들이 전주시와 JIFF에 압박을 넣었을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결국 당시 JIFF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던 민병록 명예교수가 해임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것으로 논란은 마무리되었다.

이상의 두 사건이 BIFF 이전 영화제들에서 발발했던 가장 큰 논란일 뿐, 이 사건들 외에도 한국의 영화제들은 영화제가 열리는 지역의 지자체들과 크고 작은 갈등에 계속 휩싸여 온 것이 사실이다. 2013년 초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오동진 당시 집행위원장이 갑작스럽게 사임하면서 제천시와의 갈등 의혹이 있었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역시 2013년 프로그래머 두 명이 개막을 앞두고 갑자기 사임하면서 여러 논란이 있었다. 광주국제영화제는 2004년 조직위원장을 교체하는 과정에 광주시가 직접적으로 개입하면서 큰 파장을 낳기도 했다. 또한 그 다음 해인 2005년에도 집행위원장 선출에 광주시가 개입되었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많은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영화제를 도구로 여길수록, 영화제는 붕괴된다

▲ 패널 간의 토론이 끝나고 객석의 의견을 묻는 자리에서도 많은 말들이 나왔다. 특히 이창동 감독의 동생인 이준동 파인하우스필름 대표는 정부와 부산시가 BIFF에 ‘갑질’을 하고 있다면서 정면으로 날선 비판을 제기하였다.

대체 왜 지자체들은 지역의 이름을 내건 영화제들과 계속 반목을 빚어왔을까. 문제가 되었던 영화제마다 조금씩 이유는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지자체가 영화제를 동등한 파트너로써 대우하는 대신 자신들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도구로 여기는 인식에서 비롯한다는 점은 같다. 물론 그렇게 된 원인에는 한국 대다수 영화제들의 출발 지점과도 관계가 있다. 한국의 대다수 영화제들은 영화인들이 자발적으로 행사를 만드는 대신, 지자체가 주도해 영화제가 시작되었다. 물론 BIFF와 같이 시작은 지자체에 많이 의존했어도 조금씩 주체성을 가지려 노력한 케이스도 없지는 않으나 대다수의 지역 영화제들은 출범 당시는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비용 등의 문제로 지자체에 종속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거품이 많이 가라앉았지만 BIFF가 큰 성공을 거두고, 뒤이어 BiFan과 JIFF가 성공적으로 안착하면서 지자체들은 영화제를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는 수단이자 치적을 쌓는 도구로 여겨왔다. 언론들은 영화제에 온 작품들의 면면을 보는 대신 어떤 게스트가 참석했는지, 그리고 영화제에 관객이 얼마나 참석했고 얼마만큼의 수익을 거두었는지에 초점을 기울였다. 마치 1990년대 중반 한국이 <쥬라기 공원>의 수익을 자동차 수출로 얻는 수익에 비교하며 산업을 육성하려고 시도했던 것처럼, 지자체들과 언론 역시 딱 그 정도의 시선에서 영화제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2000년대 초중반에 각 지자체에서 마구 지역 영화제가 쏟아졌다. ‘영화제 붐’ 이전에 안착한 지역 영화제들도 이러한 시선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이것은 단순히 어떠한 정권 차원의 문제는 아니다. 정권을 막론하고 영화제를 도구로 취급하는 태도는 앞서 살펴봤듯 이미 예전부터 존재해왔다. 영화제가 처음 시작하는 과정에서 지자체가 어느 정도 도움을 주었다고 해도 영화제 조직과 지자체는 별개의 것이어야 하지만, 영화제를 일종의 도구로 여기는 상황에서 영화제의 독립성은 너무나도 쉽게 무시되어 왔던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 집행위원장과 스태프들이 해임, 교체되는 과정에서 그나마 찾을 수 있는 이유는 지자체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 정도에 불과했다.

그나마 BIFF는 영화제들이 독립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름대로 잘 버텼다고 인정받았던 영화제였다. 2008년 한창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촛불시위가 벌어질 때 BIFF는 이를 반대하는 성명에 참여했고, 정부는 이에 국비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압박을 가했었다. 이러한 상황조차 버텨냈던 BIFF 마저 결국 올해 초에 벌어진 논란으로 전체적으로 독립성이 흔들리는 한국 영화제의 현실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현실을 드러내고 만 셈이다.

물론 지자체들은 자신들이 영화제에 가하는 손길이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사실상 자신들이 만들어낸 영화제이고, 그러니 자신들이 관리하는 공무원이나 산하 기관에 하는 것처럼 자신들이 원하는 상에 들어맞지 않으면 이를 ‘바로 잡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자신들 산하의 공무원이라고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인식 자체가 문제지만.) 하지만 영화제는 ‘영화’라는 각각의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 주목적인 행사이자 단체이다. 마치 한국 영화가 1980년대 후반에 사회적 분위기가 풀리고, 1990년대 후반 본격적으로 검열이 풀리면서 전성기가 찾아온 것처럼 영화제 역시 자유로운 상황에서 유의미한 결과물이 나올 수가 있는 법이다. 하지만 지자체들은 당장의 성과와 자신들의 입맛을 위해 영화제를 결코 가만히 내버려 두지 못했다.

유명한 서양 동화인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는 황금알을 하루에 하나씩 낳아 주인 부부를 부자로 만든 거위가 등장한다. 하지만 주인 부부는 더 큰 부자가 되길 원했고, 당연히 거위의 배를 가르면 수많은 황금알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거위의 배에는 하나의 황금알도 나오지 않았다. 지금 지자체는 바로 이 부부의 모습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BiFan과 JIFF는 지자체의 개입 이후 큰 희생을 치르고 나서야 겨우 예전 수준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BIFF 역시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해임 논란이 터지자 BIFF와 관계를 맺고 있는 수많은 해외 영화제들의 우려의 성명을 발표하는 등 표면적으로 관계 봉합이 된 지금까지도 그 여파는 가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과연 진정으로 영화제를 만든 이는 누구이고, 영화제를 망치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 부산시는 물론 지역 영화제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지자체가 골똘히 생각해야 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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