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케이블까지 낙하산이 내려오네요.” 한 케이블 관계자는 황당한 기색이 역력했다. <미디어스>는 5일 미래창조과학부가 최근 종합유선방송사업자(케이블SO)를 만나 “윤두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을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차기 회장으로 밀어 달라” 요청했고, 윤 전 수석이 차기 협회장에 유력하다고 보도했다. 노컷뉴스에 따르면 낙하 지시는 청와대가 내렸다.

도대체 왜 민간협회에까지 낙하산을 내릴까. 박근혜 정부는 그 동안 애국과 충정을 기준으로 사람을 고르고 또 골랐다. 그런데 낙마도 부적격도 역대 정부보다 많다. 뉴스타파 분석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이 지명한 고위공직자 후보자 62명 중 9명이 낙마했다. 낙마율은 14.5%로 노무현 정부 3.8%, 이명박 정부 8.4%보다 높다. 여기에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으나 임명을 강행한 8명과 새누리당이 야당의 반대에도 채택을 강행한 11명을 포함하면 ‘부적격 인사’는 28명에 이른다. 부적격 비율은 45.2%다.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괜히 청와대에 줄을 댔다가 망신만 당한 사람들이 많다. 수첩인사로 일어난 인사참극을 회전문인사와 돌려막기로 겨우겨우 꾸려나가는 모양새다. 올드보이의 복귀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청와대가 인사에 성공했던 실패했던 자신이 불러들인 사람들이 후에 돌아갈 곳을 마련해줘야 하는 데 있다.

그런데 자리가 없다. ‘관피아’와 ‘낙하산’을 척결하겠다며 앞장선 정부 아닌가. 정부가 직접적으로 인사를 관리하는 정부부처와 공기업에는 올드보이가 들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챙겨야 할 사람은 많은데 자리는 부족한 상황이다.

▲ 윤두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 (사진=연합뉴스)

윤두현 전 수석을 케이블TV방송협회장에 앉히려는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윤두현 전 수석은 평균 재임기간을 채운 경우다. 그가 YTN에서 청와대로 직행한 2014년 6월부터 9개월 동안 청와대에 있었다. YTN 재직 당시 ‘여당 편향’이라는 오명에 이제 ‘해바라기’라는 타이틀이 붙은 그가 돌아갈 곳은 언론계에 없다. 공기업 사장 자리를 주기는 부담스러울 터다.

청와대는 방송사 출신인 윤두현 전 수석에게 민간협회 회장 자리를 챙겨주려는 것으로 보인다. ‘합산규제’에 ‘제4이동통신 진출’까지 고민 중인 케이블에게는 청와대 미래전략수석실과 가까운 ‘로비 인사’가 필요하기 때문에 미래부를 통해 윤 전 수석을 타진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미디어스>가 접촉한 케이블SO 경영진은 정부의 개입을 못마땅해하면서도 수용하겠다는 입장이다. 5일 윤두현 낙점설이 흘러 나왔을 때 업계에는 “모르는 척 하라”는 말이 돌았다. 케이블SO는 ‘KT 합산규제’가 이루어지는 3년 동안 장기생존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터라 청와대 요청을 거부할 가능성은 적다.

더구나 올해 IPTV 가입자가 케이블을 넘어서는 골든 크로스가 이루어지는 상황을 고려하면 정치적 영향력이 필요하다. 여기에 지상파와의 재전송 갈등, 종합편성채널 수신료를 정리하려면 끈 있는 사람이 필요한 상황이다.

물론 윤두현 전 수석의 능력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업계는 윤 전 수석보다 실력 있고 인맥이 강한 인사를 원한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청와대 낙하산을 거부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게 업계의 전반적인 분위기로 보인다. 규제기관인 미래부가 이번 인사의 브로커로 움직인 점도 거절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청와대가 사람을 내리꽂는 일이 이상해 보이지는 않는다. KBS MBC EBS 등 공영방송과 연합뉴스 같은 언론만 보더라도 사실상 정부여당이 사장을 결정하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주인 없는 기업 KT에도 여러 차례 낙하산이 내려왔다.

박근혜 정부가 이전 정부와 다른 것은 민간협회인 케이블협회에까지 손을 대고 있다는 점이다. VIP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이번 인사가 이루어진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권력을 재승인 받은 문고리 권력, 비선의 지시일 가능성이 크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청와대가 설마 여기까지 신경 쓰겠느냐”고 반문하던 케이블 관계자들은 모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의 청와대는 민간협회까지 손대고 있고, 오히려 엉뚱한 곳에 낙하산을 내리고 관료의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윤두현 낙점설’은 청와대가 문고리권력과 미래부 관료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만 드러내고, 윤 전 수석이 케이블협회 차기 회장자리에 오른다면 그것은 문고리와 관료들에게 신세계를 열어주는 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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