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째다. 요즘 들어 이런 날짜 세기는 ‘버티는 것'에 대한 경의의 말과 같은 뜻이다. 서울일반노조 중앙차로지회 노동자들이 시청 로비에서 지샌 날들이다. 그나마 ‘여긴 바닥이 따뜻해서 좋아요'라며 차가운 봄샘 바람의 칼 끝에 서 있는 같은 노동자들을 떠올린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할 수 있다. 이를테면, “왜 이들이 있는가"에 초점을 두고 열악한 노동조건과 부당노동행위, 그리고 서울시의 무관심에 대해 질타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이를테면, 이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노동조합에 대한 부당한 태도들에 대해 서울시가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것이다.

▲ 지난 3월 3일에 23일차 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중앙 차로 노동자들의 모습이다

개인적으로 다른 서울을 꿈꾸면서 문제를 접근할 때 세워두는 원칙이 하나 있다. 그것은 일시적이지 않은 조치여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시장의 의지나 해당 부서 담당자의 선의 하나로 문제가 해결되는 방식을 제안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첨언 하자면 이런 방법이 불 필요하다거나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버스 전용 차로제를 도입한 후 서울시내 곳곳에 설치되기 시작한 중앙차로 승강장이 일터인 이 노동자들이 초기에 취했던 방법이 이러했다. 노동조합 차원에서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현재 서울시를 대신해 사업을 하고 있는 민간 업체가 제대로 된 안전 조치 없이 작업을 시키고 있으며 기본적인 휴게시간과 야간 수당조차도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서울시 도시교통본부 교통운영과에 민원을 제기했다.

2014년 7월의 일이다. 며칠 지나지 않아 민원 내용을 알게 된 회사에서는 민원인에 대해 대기 발령으로 보복했다. 그 이후 민원을 접수 받은 공무원의 중재로 사측과 협의를 진행했다. 즉, 민원을 철회하면 논란이 되었던 사항을 개선하겠다는 수준의 합의였다. 이에 민원을 철회했다. 그리곤 회사 측은 바로 퇴직 압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일감을 줄이고 통근 하기 힘든 지역으로 발령을 내면서 지속적으로 노동자를 괴롭혔다. 다시 서울시의 문을 두드렸다. 기존의 담당자 대신 새롭게 발령을 받아온 공무원은 회사 측이 합의의 뜻이 없다며 중재를 미뤘다. 분명 할 수 있는 일인데도 하지 않은 것은 문제이지만, ‘그 일을 하도록 하는 책임'은 부여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여기에는 점차 ‘기업의 수익모델이 되어 가는 공공부문'의 현실이 놓여 있다.

이익의 사유화, 비용의 시민 전가를 부추기는 민간 위탁

행정에서 민간 위탁 혹은 민간투자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당장 대표적인 민간위탁 사업장으로 알려진 ‘쓰레기 수거업무'만 하더라도 90년대 중반까지는 지방정부에서 직접 수행하는 업무 중 하나였다. 실제로 서울만 놓고 보면 1996년만 하더라도 민간위탁율은 불과 30%를 밑돌았다. 그러던 것이 2000년 이후 급격하게 늘어나더니 지금은 거의 모든 지방정부에서 민간위탁으로 전환했다.

▲ 직접 수행 업무를 줄이고 민간 위탁으로 전환하는 일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특히 민간 위탁의 효율성에 대해서는 다양하게 의문이 제기되고 있지만, 구조적으로 개선되는 일은 적다. 박순애, 서울시 민간위탁 현황과 발전방향, 2012. 재구성

위의 그림에서 보듯이 쓰레기 수거 업무는 2000년 대 이후 급격하게 증가했다. 흥미로운 것은 민간 위탁이 진행되면 될 수록 처리하는 쓰레기량에 비해 실제 일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당연히 노동강도가 세진 셈이다. 기본적으로 민간 위탁의 구조 자체가 다른 경영 상의 혁신을 통해서보다는 ‘인건비'를 줄여서 이익을 가져가는 구조라는 것을 보여준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톤당 처리 비용이 줄지 않고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말은 현재 공공부문의 민간위탁이 기본적으로 임금 비용, 즉 사람 비용을 줄여서 경제성을 보장하는 제도였는데 이 효과라는 것이 3~4년의 단기적 효과에 불과했다는 의미가 된다.

사전적인 의미에서 민간위탁(contracting-out)은 정부가 생산하여 공급하던 공공 서비스를 정부 대신 민간 기관이 소비 주체인 주민에게 공급하는 형태를 의미한다. 여기서 관건이 되는 것은 얼마나 주민들에게 적절한 서비스를 하는가라기 보다는, 공공 부문의 일부를 떼어내 민간 부문의 기업 활동을 보장하는 것이다. 실제로 2014년에 서울연구원에서 내놓은 <서울시 민간위탁 종합적 제도개선을 위한 연구>를 보면, “민간위탁 업체의 공공서비스 수행능력 부족, 민간위탁 종사자들의 근로조건, 회계 관리의 투명성 부족"이 보완사항으로 언급하고 있는 반면 “민간부문의 활성화"만 거의 유일한 성과로 언급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이 보고서에서는 장점으로 예산절감이니 효율성 제고 등도 언급하고 있지만 이를 증명할 수 있는 데이터는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대부분의 민간위탁이 경쟁을 촉진시키기 보다는 민간사업자들을 특권화시키는 경향이 더 크게 나타나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다면 주민도 만족스럽지 못하고, 행정적으로도 예산이 유사하게 드는 민간 위탁을 왜 하는 걸까. 단정적으로 말하면, 국가 혹은 지방정부를 민간기업의 수익모델로 제공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지방정부는 공공서비스의 직접 책임자로서 부담을 덜고(책임의 외부화), 민간기업은 보장된 시장으로 안정된 이익(공익의 사적 전용)을 추구할 수 있게 된다. 그 사이 피해는 시민과 노동자들이 고스란히 진다. 이들에겐 사실상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 임금을 줄이고 그 차액으로 기업의 이윤을 보장 받는 것이 거의 유일한 민간위탁의 수익구조인 상황에서, ‘노동자 임금을 줄여야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노동자-시민의 제로섬 게임'은 행정과 기업에 의해 조장된다.

아예 알아서 돈을 벌라는 ‘민간투자사업', 합법적인 강도짓

정말 사고 싶은 것이 있다. 그런데 한 달 수입이 정해져 있으니 반드시 써야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우선순위를 정해서 살 수 밖에 없다. 빚을 낸다 하더라도 수십번, 수백번 빚을 내는 것이 맞는지, 이 것을 갚을 수는 있을지 고민한다. 이런 맥락은 정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논쟁이 필요하고 토론이 필요하며, 합의라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 특히 대규모 시설투자사업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다른 부분의 사업을 줄여서 재원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서 신규사업을 추진한다. 만약 시급한 사업이 있다면 빚을 지기도 하지만 그 과정은 절대 녹록하지 않다. 그런데 민간투자사업이라는 방식이 있다. 당장 재정을 들이지 않아도 기업에서 시설물을 만든다. 대신 정부는 해당 시설물을 운영해 수익을 얻어가도록 한다. 그러다 보니 정부 입장에서는 당장 비용을 들이지 않고서도 시설물을 늘릴 수 있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거의 독점재인 사업을 통해서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 언뜻 보면 서로 윈-윈하는 구조다. 그래서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이런 민간투자사업을 활성화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BTO니 BTL이니 낯선 용어들이 빈번하게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주변에서 빈번하게 보고 이용하는 시설물 중에서 이런 민간투자사업으로 운영되는 것이 꽤 많다는 사실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하철9호선이고, 맨 앞에서 말했던 버스 중앙차로 승강장도 그렇다. 언뜻보기에 버스 중앙차로승강장이 민간투자사업이라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 이것을 왜 기업이 짓겠다고 할까. 그 배경에는 바로 막대한 광고수입이 있다. 2004년 이명박 전 시장이 추진한 버스전용차로제는 중앙차로에 승강장이 있어야 가능한 모델이었다. 그러면 이 시설물을 조성해야 하는데 그럴려면 당장 재원이 필요했는데, 다른데 사용할 돈을 재조정해서 투자할 생각이 없었다(당시 청계천복원이라는 엄청한 토건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지방채를 발행하자니 시의회니 중앙정부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귀찮은 일이다. 그래서 민간투자사업으로 추진한다. 기업에게 ‘너네가 승강장 좀 지어라. 대신 거기 광고 수익을 다 가져라. 초기 투자비용 다 뽑고 이익도 챙겨갈 수 있는 기간을 넉넉히 보장해주겠다"고 말한다. 시민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 이용하는 중앙차로 승강장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그런데 여기에 민간투자사업의 진짜 묘미가 있다. 그렇다면 중앙차로 승강장을 관리하는 기업은 광고회사여야 할까 아니면 승강장을 유지관리하는 시설관리회사여야 할까. 앞서 민간투자사업의 맥락에서 보면 당연히 ‘광고사업'이 주목적이니까 광고회사가 맞다. 하지만 승강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거나 타는 시민의 입장에서는 깨끗하고 안전한 승강장이 멋진 광고보다 우선한다(오세훈 시장이 디자인에 미쳐있을 때 내놓았던 냉동고였던 ‘철제 의자'를 떠올려보라). 그래서 시설물관리회사가 주가 되는 것이 맞다. 만약 서울시가 직접 중앙차로 승강장을 관리한다고 했다면 도로 상 시설물로 관리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전 시장은 광고회사 하나를 끌고 온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JC데코라는 회사다(협약서 상의 상호명은 아이피데코이나 이후에 사명이 변경된다).

▲ 2003년에 서울시와 아이피데코(현 JC데코)가 맺은 협약서는 이후, 추가협약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변경되었다.

이 협약서가 재미있는 것은 최초 2003년 협약서(위의 사진 상 계약서라 써진 문서)에 중앙차로 승강장에 대한 독점권(제1조)을 명시하면서도 전체 독점권이 행사되는 물량에 대해서는 명시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즉, 서울시가 중앙차로를 만들면서 어떤 도로에 중앙버스차로제를 실시하고 그로 인해 필요한 중앙승강장이 몇 개인지 등등에 세부적인 사항이 없는 상태에서 그저 광고 독점권을 제공한다는 취지의 계약만 덩그러니 해 놓은 것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해당 계약서의 제5조인데 “해당 가로 시설물은 을의 자산이다"라고 정하고 있다. 세상에, 중앙승강장을 기업에 팔아 넘긴 것이다. 통상적으로 민간투자사업에서 일반적인 기부채납 내용도 없다. 그런데 소유권자인 을은 단 15년간만 위탁관리 업무를 수행한다(제3조). 그러니까 형식으로 보면, 을은 자기 소유의 시설물에 광고를 달아 영업을 하는데 정작 15년만 할 수 있게 해놓은 셈이다. 더구나 분명 공공시설물임에도 소유권은 기업이 가지고 있으며 15년간 부여관 관리운영권에 있어 광고면수, 승강장의 재료 규격을 제외하고는 시설물 유지관리에 대한 규정이 전무하다.

이후 2004년에, 2005년에 추가 협약이라는 방식으로(초기엔 계약서인데 이후에 추가할 땐 협약서가 되었다, 이 정도 허술함은 본 계약서의 허접함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다) 설치할 수량을 정한다. 2004년에 110개 정류장에 230개의 승강휴게시설이 설치되고 각 휴게시설별 4면의 광고판이 배정되었다. 2005년에는 94개 정류장에 238개의 승강휴게시설이 설치되고 역시 4면의 광고판이 배정된다. 비용이 얼마나 들었고, 예상 수익이 얼마고 적정 이윤이 어느 정도라는 것 따윈 없다. 또, 시설물의 관리를 위한 유지관리에 대한 부분, 그러니까 승강장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며 시민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한 규정, 없다. 정말, 대단한 협약서다. 그래서 였을까. 2008년 오세훈 시장이 들어서서 공항로 등 4차 중앙차로 개설사업 시에는 협약서를 다시 작성한다. 여기에는 앞서 누락된 유지관리 지침이 들어간다. 매일 3회씩 육안으로 파손 여부를 확인해야 하고 5일에 한번씩 정기점검을 해야 하며 2년에 한번식 정밀안전점검을 하도록 했다(제17조). 그리고 5일에 한번씩 일반적인 청소와 오염물질 제거를 하고 월 1회 승강장 바닥에 물청소를 하도록 했다. 이 일은 대부분 버스가 다니지 않는 심야에 진행되며, 바로 지금 서울시청 로비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하던 일이다.

승강장의 핵심은 광고가 아니라 안전한 유지관리다

상식적인 말이지만, 시민들이 이용하는 시설물인 버스승강장의 핵심은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물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 시민들의 주머니를 가볍게 할 멋진 광고물을 넣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중앙차로 승강장을 관리하는 업무는, 적어도 시민 입장에서 보면, 유지 관리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2008년 협약서를 보면, 이것을 재하청하도록 했다. 사실상 서울시도 이를 방조했다.

▲ 2008년 서울시와 업체가 맺은 협약의 일부. ‘중앙차로운영관리본부'라는 이름의 직제표다.

위의 직제표를 보면 유지 보수팀, 노선도 관리팀에 모두 공통적으로 ‘용역업체 관리'라고 표시된 부분이 있다. 바로 JC데코가 계약한 용역업체를 의미하고, 서울시청 농성장의 노동자들이 바로 여기에 고용되어 있던 이들이다. 정작 시민들의 입장에서나 서울시의 입장에서도 가장 중요한 업무인 “안전하고 깨끗한 승강장의 유지관리"라는 일이 위탁업체가 하청을 준 업체에 속한 노동자다. 서울시는 돈을 들이지 않고 중앙차로 승강장을 설치하고 기업은 독점적으로 버스승강장의 광고를 유치하는데 정작 그 승강장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하청에 재하청 노동자란 말이다. 이런 구조에서 보자면, 광고업체인 JC데코 입장에서 승강장을 유지관리하는 업무는 ‘비용'이다. 반면 광고수입은 ‘수익'이다. 기업의 생리 상 비용은 줄이려고 하고 수익은 늘리려고 한다. 당연히 ‘비용'에 속하는 노동자들의 임금은 줄이는 대상이다. 그래야 자신들의 이익이 보장된다. 2008년 협약서 상 업체가 보장받는 이윤은 세후 실질수익률로 7.4%에 달한다. 위탁 기간은 19년이다. 지금 어디에서 19년 동안 안정적으로 7% 대 이상의 이윤을 보장받는 사업이 있는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광고업체가 아니라 시설물 유지관리 회사에 중앙차로 승강장 사업을 맡기면 된다. 앞에서 길게 말했듯이, 굳이 민간위탁이나 민간투자사업을 하는 이유가 ‘민간의 전문성'을 활용하는 것이라면 가장 전문성이 필요한 유지관리 업무에 집중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이미 체결한 협약서가 있어 어렵다면, 이전에 지하철9호선을 재구조화했듯이 중앙차로 관리 부분도 재구조화하면 된다. 즉, 이미 시설물을 설치한 광고회사에게는 적정한 광고수익을 보장하는 대신, 재하청으로 운영하던 유지관리 업무를 떼어낸다. 대신 이로 인해 빠지는 비용은 위탁기간을 줄이는 방식으로 조정한다. 그리고 공공성이 필요한 유지관리 업무는 기존의 도시사업소 등 서울시 공공부문으로 흡수하는 것이다. 이미 장비도 있고 전문성도 있는 공공부문의 사업소가 있는데, 중앙차로 승강장이라고 해서 따로 둘 이유는 없다.

이런 상식적인 제안은 아마도 서울시가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왜냐하면 민간위탁이든 민간투자사업이든 본질은 기업에게 보호되는 시장을 제공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현재 JC데코의 입장에서는 비용으로 추산되는 유지관리 부분을 쥐어짜면 짤 수록 부가적인 수익이 만들어진다(이미 농성중인 노동자들이 협약서 대로 승강장 유지관리를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조사해놓았다). 서울시 입장에서는 시민들이나 노동자들이 뭐라 하던 직접 관리하는 것보다 업체 책임으로 회피하는 것이 편하다. 전화 한 통화로 업체 관계자들을 부를 수 있는 일이고 무엇보다 직접 유지관리를 책임지지 않아도 좋다. 그저 업체 관리만 해도 도시교통본부 교통운영과의 업무는 유지된다. 설사 자신들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광고업체 관리가 주요 업무 임에도 말이다.

후퇴하지 않는 제도와 구조 변화가 중요하다

위의 표를 보자. 보통 재정사업과 민자사업을 비교하는 재정학 교과서 혹은 설명자료 쯤에 비슷하게 나오는 자료다. 여기서 가장 눈 여겨 봐야 되는 부분은 ‘부담원칙'의 부분이다. 재정사업의 경우에는 공공서비스에 따른 수익자와 이를 부담하는 사람이 분리된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시 재정으로 중앙차로승강장을 지었다면, 그 비용에는 자가용 이용자의 세금도 포함될 테니 말이다. 이렇게 되면 재정사업을 둘러싼 시민들의 관심이 커질 수 밖에 없다. 반면 민자사업을 보자. 수익자 부담이다. 버스를 이용하기 위해 승강장에 선 사람은 당연한 공공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가용 대신 버스를 선택했기 때문에 부담을 져야 하는 소비자다. 당연히 ‘그저 이용만 할 수 있는 것'으로 불만이 없다.

개인적으로 2000년대부터 본격화된 민간위탁, 민간투자사업 등 공공 부문을 기업에게 맡기는 변화는 ‘시민'을 ‘소비자'로 만드는 핵심적인 연결고리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기존의 민간위탁이나 민간투자사업에 주목해서 이를 다시 공공행정의 범위로 되돌리거나 혹은 노동자자주기업이나 협동조합과 같은 방식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단순히 지금 힘든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일을 넘어서는 서울시의 질적 변화를 가져온다. 적어도 공공서비스를 이용하는 시민과 이를 제공하는 노동자가 중간에 기업 논리를 경유하지 않고 대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든다. 따라서 민간위탁과 민간투자사업을 넘어서는 ‘다른 서울'은 시민고객이니, 수익자부담을 지는 소비자의 강요된 정체성에서 벗어나 도시정부의 실질적인 주체인 시민을 기획하는 일이기도 하다.

김상철 _ 2004년부터 진보정당의 당직자로 서울시 행정을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역할을 맡아 일하고 있다. 현재는 노동당서울시당 위원장이며, 문화연대, 나라살림연구소, 예술인소셜유니온에서도 활동 중이다. <정치를 탐하다>(2014,꿈꾸는사람들), <무상교통>(2014, 이매진)이라는 책을 펴냈으며 <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2014, 삶창)라는 책에 참여했다. 서울이라는 대도시가 노동과 인간중심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도시사회주의자'의 삶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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