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자가 장미희를 향해 하이킥을 날렸다. 그뿐 아니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 속의 강순옥(김혜자 분)은 지금까지의 김혜자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배우의 변신은 무죄는커녕 장려하고 박수칠 일이지만 국민엄마 김혜자의 하이킥은 다소 충격적이긴 하다. 그러나 이 드라마의 지향점을 생각하면 서운할 일만은 아니다. 아니 후련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세상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여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아직 견고하기만 하다. 일례를 들어보자. 진짜 사나이 여군특집2에 좀 의아한 자막들이 발견됐었다. 이 특집을 통해 지아이엠버라는 강한 별명을 붙인 제작진이 엠버를 묘사하는 장면들에서 ‘설거지 또한 여인의 도리이니라’ ‘반전바느질 실력을 선보인 천생여자’ 등의 모순된 표현들을 사용했다.

강해지기 위해 군대를 가든, 사회에서 당당히 자기 입지를 쌓든 어떤 것은 반드시 여자가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속에서 여전히 현모양처는 많은 여성들의 꿈이자 요구사항이 되고 있다. 그런 반면 결혼, 출산 등의 수치는 심각할 정도로 저조한 것 또한 우리 사회의 문제로 줄기차게 지적되고 있다.

국민엄마 김혜자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아마도 살아있는 신사임당 정도는 될 것이다. 그런 김혜자에게는 질투도 폭력도 욕도 갖다 붙일 수 없는 것이었다. 김혜자가 오랜 세월 그런 연기를 해온 것도 있지만 그런 김혜자를 국민엄마라며 칭송하는 우리들 마음속에는 여성에 대한 규격을 만들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서의 김혜자는 그런 것들로부터 과감하게 탈출하고 있다.

사람인 이상 오랫동안 갖고 있던 대상의 이미지를 단숨에 바꾼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김혜자의 파격을 보면서 전혀 놀랍지 않고, 서운치 않다면 거짓말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기왕 나선 것이니 국민엄마를 이참에 벗어던질 정도로 더 파격적인 모습이 됐으면 하는 기대도 생긴다. 아직은 서운함과 기대감이 묘하게 반반 뒤섞인 감정이지만 그래서 더욱 김혜자의 파격 행보에 주목하게 된다.

한편 착하지 않은 여자들 3회에 도박장에 사건으로 검찰에 불려가 반성문을 쓰라는 장면이 있었다. 억울하게 퇴학당했던 현숙(채시라 분)의 고교시절과 오버랩시키며 현숙의 캐릭터에 대한 감성적인 호소가 일차적인 목적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장면에 이 드라마의 문제의식이 모두 담겼다는 점이다.

왜 검찰에 갔는지는 중요치 않다. 현숙에게 반성문을 쓰라고 하는 위압적인 상황과 분위기, 그것을 강요받는 현숙의 심정 등이 결국은 이 드라마가 출발한 지점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현숙의 행복투쟁기는 바로 과거의 저항하지 못했던 트라우마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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