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가 공격을 받아 얼굴과 손목을 크게 다치는 사건이 일어났다.

리퍼트 대사는 5일 오전 7시 42분 경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민족화해협력국민협의회(이하 민화협) 주최 조찬 강연을 준비하던 도중 김기종씨가 휘두른 흉기에 의해 오른쪽 얼굴과 왼쪽 손목 부위를 다쳤다.

리퍼트 대사는 피를 많이 흘린 상태에서 강북삼성병원 응급실로 이동해 치료를 받고 있다. 리퍼트 대사의 생명에 지장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운동 단체인 ‘우리마당’ 대표를 맡고 있다고 밝힌 김기종씨는 범행 직후 “한미연합 키리졸브 훈련이 남북관계를 망치고 있다”며 “전쟁 훈련 반대” 등의 구호를 외쳤다. 경찰은 김기종씨를 그 자리에서 체포해 범행 동기 등을 조사 중이다.

김기종씨는 지난 2007년 ‘우리마당 습격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다 분신을 시도해 전신에 화상을 입는가 하면 2010년 시게이에 도시노리 당시 주한일본대사에게 시멘트 덩어리 2개를 던져 통역을 맡았던 일본대사관 여직원에게 상처를 입힌 전력이 있어 논란은 확대되고 있다.

▲ 5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민화협 주최 초청 강연에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습격한 용의자가 경찰에 제압돼 건물 밖으로 옮겨지고 있다. (연합뉴스)

민화협은 사건 발생 직후 공식 사과했다. 민화협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돌발적인 사건에 대해 경호가 미흡했던데 대해 사과한다”면서 “어떤 책임도 회피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 민화협은 “오늘 사건 이후 현장에서 긴급대책회의를 열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고, 경찰 수사에 협조해 사후 대책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사건 직후 이완구 국무총리는 경찰에 “사건 진상은 물론 배후세력까지 엄중하게 조사하라”며 “미국 관련 시설은 물론 주한 외교 사절 공관저 관련 시설과 요인에 대한 신병 보호를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정치권 역시 긴장한 분위기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에서 “리퍼트 대사에 대한 테러는 한미동맹에 대한 테러다”라면서 “한미동맹은 국가안보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김무성 대표는 “전쟁훈련 반대라는 평화를 외치면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라면서 “당국은 철저한 조사를 통한 엄벌 조치를 해서 우리사회 어떤 경우라도 폭력을 통한 문제해결 방식은 용납돼선 안 된다는 교훈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역시 같은 자리에서 “비엔나 조약 이후 외교관에 대한 신체적 공격이 금지됐는데도 우리의 오랜 동맹국 대사에 대한 공격이 발생한 것은 한미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걱정된다”면서 “테러 행위자가 전쟁반대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는 것은 충격적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유승민 원내대표는 “한미연합훈련이 진행 중인데 종북 좌파 세력들이 주장하듯 이걸 전쟁연습이라고 규정하고 이런 테러를 저질렀다면 심각한 문제”라면서 당국의 빈틈없는 대응을 주문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 역시 이날 정책조정회의에서 “다행히 용의자가 검거돼 수사 중이라니까 경찰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어떤 이유로든 외교관에 대한 공격이 있어서는 안될 일”이라면서 “어떤 주장이든지 표현의 방법이 적법하고 정당해야 한다. 테러는 어떤 경우에도 용납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우윤근 원내대표는 “한미관계에 이상이 없도록 정부는 신속하게 대응하고 시설물과 신변보호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리퍼트 대사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상원의원 시절부터 보좌해 온 최측근 중 한 명으로 2008년 대선 당시 오바마 캠프 외교안보팀에서 활동했으며 이후 국가안보회의(NSC) 수석보좌관 겸 비서실장, 국방부 아시아태평양지역담당 차관보, 국방부장관 비서실장 등 요직을 거쳐 지난해 10월 역대 최연소 주한미국대사로 부임했다.

리퍼트 대사는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정책을 국방정책 차원에서 입안하는데 역할을 했으며 지난해 4월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 과정에서도 일정한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리퍼트 대사와 오바마 대통령과의 친분은 그야말로 각별해 둘은 백악관에서 함께 농구를 즐기며 담배를 피우고 농담을 주고 받는 사이로 알려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7년 리퍼트 대사가 이라크에 군 복무를 하기 위해 떠날 때 “보고싶네, 형제”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으며 지난해 10월 미 국무부에서 열린 주한미국대사 취임 선서식에도 깜짝 등장해 친분을 과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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