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경제부총리가 특이한(?) 발언을 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화제가 되고 있다. 최경환 부총리는 4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국가경영전략연구원의 수요정책포럼 강연에서 “적정 수준의 임금 인상이 일어나지 않고는 내수가 살아날 수 없다”면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같은 이야기를 했고 일본의 아베 총리는 노골적으로 기업에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최경환 부총리의 이와 같은 발언은 지난주 삼성 주요 계열사 등이 올해 임금을 동결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과 배치되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 2일 기획재정부는 삼성전자가 이와 같은 계획을 발표하자 “기업의 자율적 판단에 대해 정부가 코멘트할 입장은 아니다”라면서 “삼성전자도 매출액과 영입이익이 줄어드는 등 역성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당혹감을 피력한 바 있다. 즉, 최경환 부총리의 발언은 기획재정부의 이러한 입장이 며칠만에 보다 적극적으로 임금인상의 당위를 설파하는 것으로 수위가 높아진 것으로 볼 수 있는 셈이다.

이와 함께 최경환 부총리는 “현 정부 들어 최저임금 인상률을 연간 7%대로 올렸다”면서 “올해도 최저임금을 빠른 속도로 올릴 수밖에 없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SNS 등에서는 최경환 부총리의 이러한 발언을 이례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그만큼 우리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 아니겠느냐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물론 최경환 부총리가 이런 취지의 발언을 처음 내놓은 것은 아니다. 최경환 부총리는 취임 당시에도 기업의 사내유보금을 임금이나 배당에 투입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놓으며 임금인상이 이뤄져야 내수를 살릴 수 있다고 전망한 바 있다. 이러한 기조의 연장선상에서 최경환 부총리는 올해 공무원 보수를 3.8% 인상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민간기업에 임금 인상 메시지를 주려고 한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었다.

정부가 이러한 정책 기조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 등이 이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에 대해 최경환 부총리로서는 강경한 대응을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최경환 부총리의 발언은 이런 상황을 감안한 결과로 보인다. 그런데 최근의 경제상황을 돌아보면 최경환 부총리의 발언을 단지 이런 차원에서만 해석하고 넘어가는 것은 안이할 수 있다.

최근 다수 언론들은 우리 경제가 저성장과 저물가로 인한 디플레이션 국면에 진입한 것 아니냐는 주장을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다. 우리 경제 상황을 디플레이션 국면으로 볼 수 있느냐의 문제는 전문가들과 각 기관끼리도 해석이 엇갈린다. 그러나 적어도 저성장·저물가 문제가 심각한 수준까지 진행될 수 있다는 현실 인식은 다르지 않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최경환 부총리는 이 자리에서 “현재는 우리 혼자 잘 산다고 될 수 있는 경제가 아니고 세계 경제 여건이 잘 맞아떨어져야 하지만 고도성장기에 살아봤던 경험을 가진 국민의 기대는 그게 아니다”라면서 “고도성장기는 다시 오지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 발언에 담긴 의미를 유추해서 복잡하게 해석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여기에 담긴 현실인식이 어떤 것인지는 평가해볼 필요가 있다.

▲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일 오전 서울 을지로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수요포럼에서 '2015년 한국경제의 진로'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고도성장은 총생산을 증대시키기 위해 수요와 투자를 늘리는 과정을 통해 유도된다고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공급이 수요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하므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므로 고도성장을 유도하기 위한 정책과제들은 신중하게 추진되어야 한다는 게 종래의 정책 패러다임일 것이다. 그러나 최경환 부총리의 발언은 국제적 차원에서 경기하강 흐름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을 우려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디플레이션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조선일보>가 2일과 3일 한국은행에 대한 기획기사를 배치하고 금리인하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 역시 '1등 신문'으로서 선제적으로 디플레이션 문제 해소를 위한 행보에 나서 이슈를 주도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한국은행이 물가안정을 도모하는 전통적 역할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금리정책을 주도할 것을 주문한다. 그러나 미 연준의 선제적 안내(Forward Guidance) 도입 등의 정책적 아이디어 이상의 구조적 변화는 주문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조선일보>의 보도 내용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금리 인하’ 결정을 촉구하는 것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어정쩡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과 최경환 부총리의 발언을 연계시켜 보면 디플레이션 우려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부가 새로운 경기부양책이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그간 정부가 선제적으로 내놓은 부양책들은 대개 미미한 성과를 거뒀거나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불어터진 국수’의 신세가 됐다. 지난해 말 이른바 ‘부동산 3법’이 국회에서 통과돼 다음달부터 시행 예정이다. 이 덕에 강남 재건축 단지 중심의 이주수요와 전세대란 때문에 아예 주택 구입으로 돌아선 실수요자들이 늘어나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리라는 기대 심리가 확대되고 있다고 하지만 체감적인 것은 아니다. 이런 조건 하에서 <조선일보>와 같은 신문들이 ‘금리 인하’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은 부동산 경기 회복의 강력한 주문(?)을 외우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행위다.

최근의 언급을 비롯해 그간 최경환 부총리의 계획은 거의 언제나 부동산 경기를 살리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것 들이었다. 최경환 부총리는 위의 발언을 한 자리에서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 “단순히 총량을 갖고 가계부채 문제를 평가하면 안 된다”면서 “가계부채 총량이 늘어나지 않는 수준에서 관리되고, 자산시장이 받쳐주면 가계부채 리스크는 줄어들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또, 최경환 부총리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완화해 2금융권에서 1금융권으로 대출이 이동하도록 했으므로 가계부채의 질은 개선됐다”고도 발언했다.

금리인하의 반론으로 제기되는 주장의 하나가 가계부채 문제에 대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최경환 부총리의 이러한 발언은 결국 금리를 인하하더라도 가계부채 문제를 감당할 수 있다는 어떤 자신감(?)을 피력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 자신감의 이면은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 시켜 이를 토대로 전체 가계부채 상황을 관리하면서 적극적인 경기부양에 나설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있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결국 최경환 부총리의 임금 인상 관련 발언은 부동산 경기 부양을 중심으로한 큰 그림 위에 악세사리처럼 덧붙어있는 부수적인 차원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애초에 대단한 결단을 한 것처럼 기업의 사내유보금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기업소득환류세제를 도입했지만 성과가 미미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어떤 논리에 의한 것이든 정부가 민간의 임금인상을 추동해준다면 서민들의 입장에선 고마워할만한 일이지만 이것이 다른 거악을 키우는 근거나 동력이 되지 않도록 언론이 비판적 태도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한국은행 ‘돌격’ 외에 다른 언론 들의 고민은 빈약하다고 밖에 평가할 수 없어 유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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