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이른바 ‘김영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위헌 소지가 있는 것을 여론에 밀려 통과시킨다”고 발언한 것은 그만큼 논란이 컸다는 점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4일 거의 모든 일간지들은 김영란법을 둘러싼 논란을 기사로 썼다. 김영란법 통과로 인한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는 가운데 보수언론들은 노골적인 불편함을 전했다.

<한겨레>는 1면에서 “김영란법이 이날 국회를 통과하면서 그동안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이뤄진 골프접대나 식사, 술자리 등 각종 청탁과 접대 문화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라면서 “접대 문화와 인맥관리 등 기존의 관행에도 혁명적인 변화가 예상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한겨레>는 “그러나 한편에서는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의 비대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면서 “언론을 상대로 고소·고발을 남발해 온 정부가 이 법을 악용해 ‘비판언론 재갈 물리기’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고도 지적했다.

▲ 한겨레 4일자 1면 기사.

<한겨레>는 이어지는 3면에서 공직사회와 학교현장, 기업·경제단체들의 반응을 4면에서는 법학자들과 검·경 및 법조계의 여론을 전했다. 전반적으로 변화되는 관행 등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된 가운데 김영란법의 위헌 요소나 법의 남용 가능성 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는 주장들이다. 또 <한겨레>는 김영란법의 심의 과정에서 정부안과 국회안의 내용이 달라진 것에 대해 “두 법안 사이 바뀐 내용은 대부분 국회의원의 직무와 연관성이 높아 의원들이 법안의 심사, 의결과정에서 자신들의 특권만 지나치게 보호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 한겨레 4일자 사설.

<한겨레>는 사설에서도 김영란법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나타냈다. <한겨레>는 “김영란법의 시행은 문화혁명의 시작이라 할 만하다”라면서 우리 사회가 과도한 접대문화와 인맥관리라는 고질적 문제에 시달리고 있고 이것이 부패와 부정의 출발이 되고 있다며 “부당함을 따지기 앞서 왜 이런 입법에까지 이르게 됐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한겨레>는 그러면서도 “김영란법에는 부작용과 문제점도 적지 않다”면서 결과적으로 수사기관에 과도한 권한을 줘 언론 길들이기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점, 국회의원에게 불리한 내용은 상당부분 빠져있다는 점 등을 비판적으로 다뤘다. 결국 보완입법과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결론인데, <한겨레>의 이런 주장은 상당히 균형이 잡혀있는 시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보수언론의 경우는 ‘균형’과는 별 관계가 없는 보도로 일관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이날 1면에 <위헌요소 알면서 통과시킨 ‘김영란법’>이란 제목의 기사를 톱에 배치했다. 이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공직자, 언론인, 사립학교 교원과 그 가족 등 300만명 이상을 적용대상으로 하는 중요 법안의 위헌성이나 모호함, 그리고 이에 따른 사회적 혼란을 알면서도 ‘일단 통과시키고 보자’는 것은 ‘무책임 정치’라는 비판이 제기됐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 조선일보 4일자 5면 기사.

<조선일보>는 이어지는 3면에서 전날 국회 법사위에서 나온 의원들의 발언을 정리했다. 국회 법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이상민 의원이 김영란법의 위헌성을 지적했고 이성보 국민권익위원장이 법의 악용 가능성이 높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는 점 등이 강조됐는데 <조선일보>는 이에 대해 “여야 의원들의 변명과 책임 회피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회의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4면에서는 김영란법 위반 가능성이 있는 사례를 열거했고 5면에서는 <“경기에 찬물 끼얹는 김뻥란법” 자영업자 울상>이란 제목의 기사를 배치했다.김영란법이 시행되면 호텔은 물론 식당, 술집 등 자영업자가 대부분인 서민경제활동이 ‘직격탄’을 맞는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 조선일보 4일자 사설.

<조선일보>의 사설은 보수언론이 갖는 김영란법에 대한 불편함의 ‘종합판’이다. <조선일보>는 부정 청탁과 금품수수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하다면 김영란법보다 더한 조치도 취해야 한다면서도 “이날 국회를 통과한 법은 출발부터 위헌 논란에 휩싸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이 법의 통과를 주도한 여야 지도부와 여야 협상 책임자들이 이런 걱정과 불만을 쏟아냈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법 적용 범위에 민간언론과 사립학교 이사장·교원 등이 포함된 점 등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며 “언론의 부패 문제는 언론 스스로 해법을 찾도록 하는 것이 정도다”, “김영란법이 검찰·경찰이 비판 언론에 대해서까지 무제한의 수사권을 행사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는 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 중앙일보 4일자 3면.

<중앙일보>의 1면 톱기사 제목 역시 <위헌소지 알고도 그냥 가자는 국회>였다. <중앙일보>는 2면에서 김영란법 적용 대상 및 사례에 대한 모호함을 지적했고 3면에서는 “처벌 대상이 되는 행위와 적용 대상자가 광범위해 누구라도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는 만큼 ‘검경공화국’이 될 것이란 우려도 쏟아졌다”고 전했다. <중앙일보>는 경찰들이 검찰의 약점을 캐기 위해 ‘10만 경력’을 동원할 수도 있다는 검찰 관계자의 우려를 보도하기도 했다.

▲ 중앙일보 4일자 사설.

<중앙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이런 헛점이 많은 법이라는 것을 정치권이 알면서도 통과시켰다고 말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날림 법안임을 알고도 총선을 의식해 찬성표를 던진 걸 자인한 셈이다. ‘법을 만드는 사람’인 의원의 본분을 스스로 포기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이제라도 과잉입법과 위헌 우려가 큰 조항들을 수정하고, 접대 범위도 현실화 해야 한다. 적용 대상을 공직자에게 한정하고 정치인 예외 조항을 삭제해 진정한 ‘공직 반부패법’으로 바로잡아야 본래의 취지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 동아일보 4일자 사설.

<동아일보> 역시 1면톱에서 김영란법의 ‘위헌 소지’를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2면에서 김영란법이 처음에는 찬밥이었지만 결국 누더기가 된 기구한 운명의 법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3면에서는 정부 원안의 핵심 내용이었던 ‘이해충돌방지’ 조항이 빠져 졸속 입법이 됐다는 지적을 내놓기도 했다. 고급음식점과 백화점, 골프장이 ‘울상’을 짓게 됐다는 지적 역시 빠지지 않았으며 4면에서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지적을 내놓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3일 본회의에서 어린이집 CCTV 설치 법안은 통과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조직적 반발이 예상돼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을 법안은 부결시키고 그렇지 않은 법안은 부실해도 통과시켰다는 주장을 펴며 정치권을 맹비난했다.

▲ 중앙일보 4일자 4면 기사.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동아일보>가 김영란 전 권익위원장 본인의 발언을 인용한 기사인데 이 기사에서 김영란 전 위원장은 “당초 공무원을 적용대상으로 했는데 적용 범위가 크게 확장돼 당혹스럽다”고 말하고 있다. 기사에 따르면 김영란 전 위원장은 이 발언을 2일 지인들과의 식사자리에서 했으며 <동아일보>의 취재 요청에는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보도를 못할 내용은 아니겠지만 이런 수준의 기사를 김영란 전 위원장의 사진까지 넣어서 배치한 것은 무리한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그런 ‘무리’를 감수하고서라도 이날 보수언론들은 김영란법에 대한 불쾌감을 어떻게든 전면적으로 표현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 됐다. 이들의 이런 불쾌감이 김영란법에 대한 위헌심판청구와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이어질지는 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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