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텍사스 어느 곳에서 여름을 보내던 한 가족이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마도 처가 식구들이 있는 곳이었나 보다. 갑자기 장인이 53마일 정도 떨어진 애빌린에 가서 저녁식사를 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러자 그의 아내가 “좋다”며 맞받았다. 남편은 애빌린까지 운전해서 가려면 시간도 시가이거니와 이런 날씨에 차 안이 매우 더울 것이어서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장인과 아내가 좋다고 하는데 자신이 ‘이런 저런 이유로 가는 것은 무리’라는 말을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긴 시간 여행을 내켜 하지 않았던 장모는 반대해줄 것이라 믿고, 장모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랬더니 웬일인지 애빌린에 가본 지 꽤 되었다며 가겠다고 말한다. 애빌린으로 가는 내내 그들은 너무 더웠고 짜증스러웠다. 또 정작 기대했던 카페에서의 식사는 기대 이하였다. 그들은 지칠 대로 지쳐서 4시간 뒤에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며 가며 8시간을 써서 맛없는 식사를 하고 온 셈이었다. 그런데 일행 중 하나가 이렇게 말한다. “나름대로 즐거운 여행이었어요, 그렇죠?” 그랬더니 장모가 사실 본인은 집에 있고 싶었으나 다른 세 사람이 다 애빌린에 간다고 해서 마지못해 따라 나섰다고 말한다. 그랬더니 남편이 자신도 내키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원하니 그대로 하자며 따라준 것이라고 말을 받았다. 정작 아내는 애빌린에 가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은 남편을 생각해서였다고, 더운 날 좋아서 자신이 나가겠냐고 되묻는다. 최초의 제안자인 장인은 식구들이 집에서 가만히 있는 것이 지루해 보여서 그냥 제안해본 것뿐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모두가 내키지 않은 여행을 모두가 동의해서 갔다 오게 되는 역설이 생기고 마는 것이다.

소위 애빌린 패러독스라고 불리는 위의 이야기는 제리 하비라는 경영 컨설턴트가 최초로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두 다 동의하지 않았음에도 모든 사람의 동의로 내키지 않는 사업이 진행되는 상황이라는, 모순된 상황을 꼬집기 위해 제시한 사례인데 하비는 왜 다양한 의사결정 기구가 있는 기업이 바보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되고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이와 같은 역설을 제시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역설이 비단 기업의 의사결정 뿐만 아니라 정부의 정책결정 과정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하는데, 특히 기업의 경우에는 피해가 기업의 도산이나 해고로 나타나게 되는 데 반해 정부는 국민들에게 피해를 전가함으로서 정책 실패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쉽게 나타날 수 있는 구조적인 특수성이 있다.

▲ 2013년 10월 6일 오후 전남 영암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에서 열린 '2013 F1 코리아 그랑프리' 결승에서 드라이버들이 질주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누구도 원치 않았던 사업 F1, 기묘한 역설

불과 4번째 대회를 개최하지 못해 전남 F1는 막을 내릴 처지에 놓였다. 원래는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한 기업도시 사업 중 관광레저형 도시로 선정되었던 영암해남 기업도시 사업의 앵커 사업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앵커 사업이었던 F1은 전라남도를 천억 원이 넘는 부채의 늪으로 밀어 넣어 버렸다. 하지만 지방정부의 부채는 누군가에게 이익이었다. 다시 말해서 국제경기를 유치해서 대개 많은 도시들이 망가지지만 그럼에도 모두가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다음의 문답을 보자.

문: 삼포지구 사업에 총 사업비가 4,402억 원을 투자해서 1단계로 1,652억 원, 2단계에서 2,750억 원을 투자해서 시행 예정이었습니다. 자본금이 600억 원으로 전남개발공사하고 특수목적법인 KAVO에서 우리 F1코리아 경기장을 만들고 원래 130만 평에다 투자를 할 목적으로 했지만 57만 평의 경기장을 완공하고 그 이후에 SK건설이나 또 유관업체들이 참여했던 업체들은 충분히 F1코리아를 끝내고 그때까지 이윤 창출이 되고 자기들은 쉽게 말해서 알맹이만 딱 빼가고 나머지 비전이 없는 그런 사업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자기들이 정리하고 빠져 나간 것 아닙니까? 대표적인 케이스가 SK건설 그렇죠?

답: 예, SK건설은 의원님께서 그렇게 보실 수 있겠습니다마는 저희들이 내심을 보면, 내심이라는 것은 드러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시공에만 관심이 있었지 2단계 개발까지 기업도시 삼포지구 전체 개발까지 관심 있었던 것은 아닌 것으로 그렇게 파악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철수한 것으로 보입니다.”(2014년 10월 16일 전라남도의회 본회의 회의록 일부)

이것이 무슨 말이냐면, 정작 전라남도라는 지방정부는 막대한 경기장 건설에 운영비로 인해 천억 원대의 부채를 지게 되었지만 이후 기업도시로의 지속적인 투자를 약속했던 기업은 경기장 건설의 특혜를 받고도 사업에서 철수함으로서 사실상 이익을 얻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전라남도는 빚을 졌지만 경기장 건설에 참여했던 대기업 건설사의 입장에서는 수지맞는 대규모 관급공사를 해낸 셈이니 이익이었던 셈이다. 더구나 기업 입장에서는 영암해남 기업도시가 잘 추진되지 않으면 앞으로도 여기에 투자할 이유가 없으니, 정책 실패가 가장 유리한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것은, 2014년 경기 유치실패가 확정된 2013년 말에서부터 2014년까지 전라남도의회의 회의록을 살펴보면 문제를 질타하는 목소리도 이에 답변하는 목소리도 모두가 F1의 실패를 예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지방의원들은 의원대로 자신들이 의회를 통해 그토록 우려를 했는데도 이를 제대로 방비하지 못한 탓을 들었고, 행정부는 행정부대로 중앙 정부의 미흡한 지원과 우리나라의 낮은 자동차경주에 대한 열기를 탓했다. 정작 전라남도의 F1 추진계획을 절대적으로 지지하면서 해외 방문까지 했던 의회는 그저 “단체장이 역점을 두고 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행정부를 신뢰했을 뿐이라고 한다. 사업을 추진했던 행정부는 “누구의 지원도 없이 전남도가 독자적으로 어려운 경기대회 유치를 해냈는데, 중앙정부의 지원도 미비했고 무엇보다 자동차 레저에 대한 국민적 무관심이 컸다”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전남도의회나 전남도청이 말하는 안타까움이나 우려야 이미 F1 유치가 가시화되고 국회에서 특별법 제정논의가 진행될 때부터 꾸준히 문제제기가 되었던 사항이었다는 것은 간단히 무시된다. 우리나라가 자동차경주대회를 할 수 있을 만큼의 문화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점, 수도권으로부터 경기장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실제 유효한 관중을 확보하는데 장애가 될 것이라는 평가 정도는 이미 경기 유치전부터 나왔던 진단이다. 그런데 자신들은 이미 F1이 우리나라에서 잘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는데도 다른 이유 때문에 할 수 밖에 없었다는 투의 지독한 ‘역설’이 뻔뻔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사실 도의회 회의록을 보면서 놀랐던 것은,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고 이해하고 있다는 묘한 동류의식이었다.

창원F3라는 사례, ‘우리는 다르다는 생각’

F1이 전례가 없는 경기대회였다고 말하지만, 이미 경남 창원에서는 F3자동차 경주대회가 진행된 적이 있다. 1999~2003년까지 경상남도 창원시에서는 기존 도로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5차례의 F3 경기를 개최하였다. F3는 경주용 자동차를 이용한 온로드 경기를 말하며, 주관단체인 세계자동차연맹(FIA)에서 규정한 차체, 엔진, 타이어 등을 갖추고 경주하는 대회다. F3은 국제적으로 공인되는 포뮬러 레이스에서 가장 규격이 작다.

▲ 경상남도의회는 2004년 창원F3자동차경주대회에 대해 행정사무조사를 벌인다. 이 보고서에는 자동차경주대회가 왜 이익이 날 수 없는지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점들이 정확하게 적혀있다(자료=문화연대)
2004년 경남도의회 행정사무조사에 따르면, 5차례의 F3 대회를 치르는 동안 경상남도 창원시의 운영수익은 29억 원(연간 약 6억 원)에 불과했으며, 운영비의 수입항목 중 국비와 지방비 등 재정지원을 제하면 오히려 약 150억 원 가량의 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시설비가 전액 재정으로 지원된 것을 고려하면, 손실 추정액은 227억 원으로 불어난다.

이런 손해의 배경에는, 총량적인 차원에서 평가되는 편익의 함정이 놓여있다. F3 대회의 스폰서십 수입은 지자체에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운영주체인 스포츠마케팅기업 FOM(Formula One Management)의 스폰서십 대행업체인 APM에 귀속된다. 실질적으로 조직위원회 등 주관처에서 관여할 수 있는 수익은 19억 원 정도의 입장료 수입에 불과했다. 주요 수익을 차지하는 대회 관련 각종 라이선스의 수익을 제외하고 남은 것만 개최지의 수입이 되는 구조인 것이다. 그런데도 통상적으로 국제경기의 수익을 총량적으로 계산하고 이를 전체 비용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국제경기대회의 비용/편익을 계산했던 것이다.

이런 뻔한 구조임에도 전라남도에서 F1을 유치할 때에 ‘우리는 다르다’는 논리가 나왔다. 우선 F3하고는 다르게 F1는 좀 더 높은 집객 효과가 있다는 것, 그리고 해외의 경기 보도도 훨씬 높을 것이라는 기대 등이 언급되었다. 사실 F3나 F1이나 수익구조는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편익의 총량적인 측면에서의 규모 차이로 성공을 자신했던 것이다. 그래서 결과는 어땠을까. 우선 관람객 규모를 보면, 1차 개최년도였던 2010년에 16만이었던 것에서 지속적으로 줄어서 2013년 4차 대회는 15만 명 수준을 보였다((’10)165,000명 → (’11)160,236명 → (’12)164,152명 → (’13)158,163명).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관람객의 숫자가 줄어든 것이다. 그런데 대회의 전체적인 수지구조는 2010년 725억 원 적자에서 2013년 181억 원 적자로 줄어들었다. 이것은 경기 매출이 높아져서가 아니라, 개최권료의 재협상을 통해서 비용을 줄였기 때문이다.

▲ F1자동차 경주대회의 2010년부터 2013년까지의 수지 결과. 그나마 수지구조가 개선된 것은 2012년부터 개최권료가 낮아진 점, 국비 지원이 이루어진 데에서 찾을 수 있다(자료=문화연대)
이로 인해 4년간 개최 비용만 총 3,067억 원에 달했으며 이로 인해 발생한 누적적자만 1,902억 원이다. 이 적자는 매년 475억 원 수준이다. 게다가 매년 마케팅 수입이 줄어들었다. 문제는 순수하게 경기를 유지하는 비용만 그렇다는 것이고 막대한 지방채를 통해서 건설한 경기장 건설비용은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것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해당 규모는 1,357억 원 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당초 F1 때문에 발행했던 채권규모가 1,980억 원이었으니 상당부분 갚아간 셈이지만 그럼에도 천문학적인 규모가 빚으로 남겨졌다.

잘 생각해보자. 통상 이 빚은 모두 전라남도, 나아가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 부채다. 궁극적으로는 전라남도 주민들과 국민들이 진다. 왜 그런가. 실제로 전라남도는 이 부채를 갚기 위해 순세계잉여금의 30%를 의무적으로 채무를 줄이는데 사용하고 있다. 당연히 지방정부가 수입으로 잡아 지출할 수 있는 재정규모가 축소된다. 결국 도민들이 혜택을 볼 수 있는 사업비는 줄어든다. 그러면 누가 이익을 봤는가. 매년 수백억 원에 달하는 개최권료는 고스란히 외국의 스포츠경기기구로 흘러간다. 운영비는, 해당 스포츠경기기구로부터 배타적인 유치권을 가지고 있는 자동차경주협회나 관련 경기운영기관과 기업으로 흘러간다. 그러니까 국제경기대회로 인해 발생하는 막대한 비용은 누군가에겐 눈 먼 이익과 같았다.

평창동계올림픽은 이와 다를까: 분산개최의 필요성

이런 상황에서 전라남도는 해당 기구로부터 소송을 당할까 봐 대회중단 선언을 하지 못하고 2016년 대회 개최를 고민하고 있다.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대표적인 예산낭비 사례로 지목하며 감사원 감사 청구를 해놓은 상태다. 결국 한번 잘못된 정책결정으로 인해 매년 눈에 보이는 재정 부담을 지면서도 경기대회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이와 같은 F1 사례를 살펴보면, 과연 평창동계올림픽은 어떨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물론 당장 F1과 같은 경기대회와 동계올림픽은 이를 주최하는 국제기구의 성격에서부터 다르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는 기업형 구조이고 다른 하나는 평의회 구조라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스폰서쉽의 귀속이나, 개최권료의 존재, 그리고 막대한 시설투자비가 소요되는 것은 다르지 않다. 오히려 13조원이나 소요되는 평창동계올림픽의 규모를 생각할 때, F1보다 더 큰 부담으로 귀결될 것이라 걱정하는 것이 상식에 부합된다. 그래서 분산 개최의 요구를 쉽게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위와 같이 평창동계올림픽 유치가 확정되고 경기장 건설이 본격화된 시점인 2012년 한 해 동안만 경기장 건설비용이 2천억 원 넘게 인상되었다. 이 규모는 현재도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단순히 자연상승분만 고려해도 천문학적인 수준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기가 어렵지 않다. 그래서 분산 개최를 하게 되면 매몰 비용이 발생하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비용이라는 측면에서라도 계획대로 경기장을 건설하고 사후 이용방안을 모색하는데 힘을 쏟는 것이 타당하는 주장은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선의에도 불구하고 순진한 생각일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어차피 공사비가 늘어나게 되고, 사후적으로 관리비용 등이 지속적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는 구조라면 당장 발생한 매몰비용을 감수하면서라도 다른 경기장을 사용하여 향후 들어갈 추가적 건설 비용과 중장기적 관리 비용을 절약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2000년 이후에 두 번이나 아시안게임을 개최했던 전력이 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은 우습게도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을 전혀 참조하지 않았다. 마치 전남 F1이 창원 F3을 참조하지 않았듯이 말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결과를 놓고도 ‘우리는 다를 것이다’고 기대하거나 ‘원치 않았으나 주민들의 열망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핑계를 대는 것은 사실상 자기기만에 가깝다.

흔히 인간을 학습의 동물이라고 하는데 경험을 통해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다. 적어도 이미 참조할 만한 사례들이 있는데도 이를 참조하지 않는 것은 무지의 탓이라기보다는 의지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독점적인 이익을 안기면서도 비용은 전체 국민에게 전가되는 이 기가 막힌 구조를 조금이나마 정상으로 돌려놓는 길은, 그런 이해관계자가 추구하는 이익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에서 출발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평창동계올림픽의 분산 개최는 단순히 경제적 비용의 문제뿐만 아니라 국제경기대회를 ‘스포츠 정신’에 맞게 정상화하는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 평창동계올림픽은 지금이라도 F1을 참조해야 한다.

※이 글은 문화연대 웹진 <문화빵> 55호(▷링크)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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