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6일, 전 세계 인터넷 권리 활동가들은 크게 환호했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강력한 망중립성 규제를 내용으로 하는 ‘오픈 인터넷 규칙’을 3대 2로 통과시킨 것이다. 이는 이미 FCC 위원장 톰 휠러(Tom Wheeler) 위원장이 2월 4일 와이어드(Wired)에 기고한 글에서 예고된 것이었으나, 최종적으로 FCC에서 통과될 때까지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었다. 이를 저지하려는 통신사들의 의회 로비에 맞서, 인터넷 권리 활동가들도 이용자들의 목소리를 FCC에 알리기 위해 막바지 노력을 다했다.

FCC 결정의 역사적인 맥락

이번에 통과된 ‘오픈 인터넷 규칙’의 핵심은 유무선 망사업자(broadband provider)를 미국 통신법 상 ‘통신 서비스(telecommunication service, Title II)’로 재분류하여, FCC가 망중립성 규제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지금까지 FCC는 망사업자를 ‘정보 서비스(information service, Title I)’로 분류해왔다. 이는 한국의 규제 체제와는 좀 다른데, 한국은 이미 유무선 망사업자를 (미국의 통신 서비스와 유사한) 전기통신사업법에서 ‘기간통신사업자’로 규정하고 있다. 통신법 상 ‘정보 서비스’는 네이버나 다음카카오와 같이 인터넷 상에서 콘텐츠나 애플리케이션 서비스를 제공하는 부가통신 사업자를 말하는데, ‘통신 서비스’와 달리 사업자에 대한 별다른 규제도 없고 FCC의 규제 권한도 미약하다.

지난 2010년에도 FCC는 오픈 인터넷 규칙을 제정한 바 있다. 그런데 미국 통신업체인 버라이즌(Verizon)이 FCC가 그러한 규제를 할 권한이 없다는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2014년 4월 항소법원은 버라이즌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이는 FCC의 망중립성 규칙이 잘못된 것이라는 결정이 아니라, FCC가 ‘정보 서비스’ 사업자에게 그러한 규제를 할 권한이 있는가에 대한 결정이었을 뿐이다. 결국 FCC는 미국 시민사회의 요구대로 정공법을 택했다. 즉, 망사업자를 ‘통신 서비스’로 재분류함으로써 FCC는 망중립성 규제를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었다.

오픈 인터넷 규칙의 주요 내용

앞서 얘기한 대로, 이번 규칙의 핵심은 망사업자를 ‘통신 서비스’로 재분류함으로써 FCC의 규제 권한을 명확하게 한 것이었다. 이와 함께 FCC는 망중립성을 위한 기준을 제시하였다.

○차단 금지(No Blocking) : 망사업자는 합법적인 콘텐츠, 애플리케이션, 서비스, 혹은 위해를 주지 않는 기기에 대한 접근을 차단해서는 안된다.
○조절 금지(No Throttling) : 망사업자는 콘텐츠, 애플리케이션, 서비스, 혹은 위해를 주지 않는 기기에 근거해서 합법적인 인터넷 트래픽을 손상시키거나 저하시켜서는 안된다.
○지불에 따른 차별 금지(No Paid Prioritization) : 망사업자는 어떤 종류든 그 대가로 특정한 합법적인 인터넷 트래픽을 다른 합법적 트래픽에 비해 우선순위를 부여해서는 안된다. 즉, “빠른 길”을 만들면 안된다. 이 규칙은 망사업자가 자회사의 콘텐츠나 서비스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것도 금지한다.

위의 내용은 2010년 오픈 인터넷 규칙에도 포함된 것이기는 하지만, 이번에 발표된 규칙은 2010년에 발표된 규칙보다 훨씬 강력하게 망중립성 규제를 하고 있다. 우선 2010년 규칙은 모바일 인터넷의 경우 많은 예외가 있었는데, 이번 규칙은 유무선 구분 없이 이 규칙을 적용하고 있다. (물론 ‘합리적 트래픽 관리’와 관련해서는 유무선의 기술적 특성이 고려될 수 있다.)

또한, 위 기준과 함께, ‘미래 행위의 기준(A Standard for Future Conduct)’과 ‘더 강력한 투명성(Greater Transparency’을 제시하고 있다. ‘미래 행위의 기준’은 빠른 기술 발전에 따라 현재 예측하지 못하는 문제들이 나타날 수 있는데, 이 경우에도 망사업자가 ‘불합리하게 소비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금지할 수 있도록 FCC가 사례별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였다. 투명성은 2010년 규칙에도 있었지만, 이번 규칙에서는 망사업자들이 일관된 형식으로, 판촉용 요금, 수수료, 추가요금, 최대허용 데이터 등을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이 공개는 네트워크 성능 측정에서 패킷 손실율을 포함하고, 네트워크 관리 관행을 고지하도록 하고 있다.

또 한 가지 주목할만한 점은 2010년 규칙은 망사업자의 네트워크 안에서의 차별에 초점을 둔 반면, 이번 규칙은 망사업자 사이의, 혹은 망사업자가 콘텐츠 사업자 사이의 ‘상호접속’까지 규제 범위를 확대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망사업자가 넷플릭스와 같은 콘텐츠 사업자에게 직접 접속에 대한 대가로 부당한 사용료를 요구하는 것을 규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FCC는 망사업자를 ‘통신 서비스’로 재분류함으로써 기존 통신 서비스 사업자들(즉, 전화 사업자들)이 받던 규제(예를 들어, 불합리한 차별 금지, 소비자 불만 조사, 소비자 프라이버시 보호 등)의 일부를 적용받게 하였지만, 기존 전화사업자에게 부여하던 규제의 상당 부분은 적용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요금 규제나 네트워크 공동활용 규제 등은 면제된다. 이로써 FCC는 이 규칙으로 인해 네트워크에 대한 투자가 위축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남은 쟁점

이번 결정에 대한 FCC의 보도자료에서 주요 내용을 설명하기는 했지만, 규칙 자체의 원문은 아직 공개되어 있지 않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경구처럼, 원문 자체가 공개되면 어떤 문제점이 발견될 수도 있다.

현재 시민사회에서 가장 우려하고 있는 문제 중 하나는 ‘무료 제공(Zero rating)’ 문제이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현상인데, 통신사업자가 페이스북과 같은 특정한 콘텐츠나 서비스에 대해서만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마치 원래 제공하지 않는 것인데, 소비자에게 혜택을 주는 것과 같은 외양을 하고 있어서, 이것도 망중립성 위반으로 봐야하는가가 지난 2014년 인터넷거버넌스포럼에서도 핵심 이슈가 되었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는 인터넷 접근이 어려운 이용자들에게 (예를 들어 페이스북만 접근하게 한다는 점에서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인터넷 접근을 확대하는 서비스라는 논리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시민사회 활동가들은 ‘zero rating’ 역시 망중립성 위반이며, 규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제, 한국의 망중립성은?

미국의 네트워크와 콘텐츠, 서비스는 미국 국민들만 쓰는 것은 아니기에, 특히 미국 사업자의 전 세계적 영향력을 고려할 때, 이번 FCC의 결정은 세계적으로 그 의미가 크다. 한 명의 인터넷 이용자로서 우리도 기뻐할 일이다. 그렇지만, 한국의 현실을 보면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미국과 달리 이미 망사업자가 ‘기간통신사업자’로 규정되어 있고, 규제기관인 미래창조과학부는 망중립성 규제를 할 수 있는 권한도 가지고 있다. 전기통신사업법 상 통신사의 불공정행위나 이용자 이익침해행위를 규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미 2011년에 ‘망중립성 가이드라인’을, 그리고 2013년에는 ‘통신망의 합리적 트래픽 관리․이용과 트래픽 관리의 투명성에 관한 기준’을 발표하였다. 미래부가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규제한다면, 그리고 자신이 만든 가이드라인대로만 한다면, 한국에서는 이미 망중립성이 보장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여전히 특정 요금제에서 무선인터넷전화(mVoIP)가 차단되고 있다. 지난 2014년 6월 30일, 미래창조과학부가 <2014년 가계통신비 경감 방안>을 발표하면서, 모든 요금제에서 mVoIP을 허용하겠다고 했지만, 실제 mVoIP을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 용량은 제한하는 방안이었다. 이번에 발표된 미국의 오픈 인터넷 규칙에서는 ‘합리적 네트워크 관리’를 인정하면서도, 기술적인 이유가 아니라 사업적 이유로 차단이나 차별을 하는 것은 규칙 위반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미국의 오픈 인터넷 규칙을 적용하면 규칙 위반이 될 것인데, 한국의 전기통신사업법과 망중립성 가이드라인을 정확하게 적용한다면 마찬가지로 위반이라고 볼 수 있다. 통신사들은 토론회에서 mVoIP을 허용하면 자신의 수익이 감소하여 투자가 위축될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주장하고 있는데, 자신의 수익 감소를 우려하여 망사업자라는 조건을 활용하여 경쟁 서비스를 제한하는 것이 어떻게 불공정행위가 아니란 말인가. 이용자들이 자신이 계약한 데이터 사용량 내에서 마음대로 mVoIP을 사용할 수 없는데, 어떻게 이용자의 권리 침해가 아니란 말인가. 망중립성 가이드라인 하에서 정당한 서비스에 대한 차단과 차별이 허용된다면, 미래부는 망중립성 가이드라인을 왜 만든 것인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미래부가 언제까지 과거를 향해 질주할 수 있는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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