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이 본회의 통과만을 앞두고 있다. 여야 원내지도부는 2일 국회에서 회동을 갖고 금품수수 시 공직자의 신고를 의무화한 법 적용 대상 가족 범위를 배우자로 한정하고 법 적용 대상 공직 범위에 언론사 종사자와 사립학교 교원을 포함하는 내용의 안에 합의했다. 일부 부분에선 정무위안보다 후퇴했고 또 일부 부분에선 원안보다 확대된 내용으로 합의가 됐다.

<한겨레>는 이날 1면에 여야의 합의 내용을 전하면서 “공직자와 그 가족들의 도덕성을 높이고 관행적으로 이뤄져온 각종 청탁·접대 문화에 대대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나, 검경 등 수사기관의 권한 비대화와 남용 우려도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공무원과 공공기관 임직원, 언론사 종사자,공립·사립학교 직원과 그 배우자를 상대로 한 각종 청탁과 접대 문화가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평가했다. 음주·골프 등의 접대, 기준 금액을 초과하는 식사 제공, 공무원에 대한 명절 선물 등도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 한겨레 3일자 1면 기사.

그러나 <한겨레>는 “국민권익위원회와 검경 등 수사기관에 과도한 ‘칼자루’를 쥐여줌으로써 권력기관의 권한 남용과 횡포가 예상된다는 우려도 나온다”면서 “자율성과 독립성이 생명인 언론까지 규율 대상에 넣어 정권의 ‘언론 길들이기’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고도 지적했다. <한겨레>는 이어지는 3면 하단 기사에서 언론인, 사립학교 교원까지 적용 대상에 포함시킨 것을 두고 “수사기관의 권한이 무제한으로 커질 수 밖에 없다”면서 “언론을 상대로 고소, 고발을 남발해온 정부가 이 법을 ‘비판 언론 재갈 물리기’로 악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고 전했다. <한겨레>는 “실제로 야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청와대가 여당에 언론인은 반드시 법 적용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같은 면 기사에서 “금품수수를 금지한 공공기관 종사자 가족의 범위를 ‘민법상 가족’에서 배우자로 좁힌 것은 ‘돈을 받는 공직자는 모두 처벌한다’는 입법 취지에서 후퇴한 것이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고 전했다. 실제 로비는 부모, 형제 등 다른 가족을 대상으로도 이뤄진다는 것이다. 또, <한겨레>는 15가지 경우로 한정한 부정청탁 관련 조항도 그대로 유지하기로 한 것에 대해 “이에 해당하지 않는 부적절한 청탁은 처벌받지 않는다는 논란은 남게 됐다”고도 지적했다.

긍정적 평가와 비판적 요소를 병렬적으로 배치한 <한겨레>와 비교하면, 보수언론의 시각은 다소 싸늘하다. <조선일보>는 1면에 여야 합의의 내용을 전하면서 이어지는 3면에서 김영란법의 처리 경과를 자세히 보도했다. 애초 김영란법은 이명박 정부 후반기에 현직 검사들이 부적절한 금품을 받아 논란이 일자 2011년 6월 김영란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이 국무회의에서 ‘공직자 청탁수수 및 사익추구 금지법’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하면서 시작됐다. 권익위 법안은 정부검토를 거쳐 2013년 8월에 국회에 제출됐는데, 당시까지는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 등은 논의 대상조차 아니었음에도 법 적용 대상 등을 두고 논란이 일어나 심의가 사실상 중단됐다는 게 <조선일보>의 설명이다.

▲ 조선일보 3일자 3면 기사.

<조선일보>는 “김영란법이 다시 주목을 받은 것은 지난해 세월호 침몰 사고 직후”라면서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후속 대책으로 김영란법의 원안 통과를 주문했고 국회의원들 역시 ‘더 이상 피했다가는 여론의 공적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껴 적용대상 확대 등을 논의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조선일보>는 “법안에 반대할 경우 내년 총선에서 낙선 운동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특히 수도권 의원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위헌이나 사회적 부작용 등보다는 당장 내년 선거를 걱정해서 통과시키려는 게 의원들의 생각”이라는 여당 고위 당직자의 말을 전하며 기사를 끝맺었다. 결국 선거를 걱정하는 정치인들 때문에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이 지나치게 확대됐다는 뉘앙스를 전하고 있는 셈이다. <조선일보>는 4면 관련 기사에서도 김영란법의 위헌 소지 논란 조항이나 모호한 표현 등을 문제삼는 주장 등을 자세히 전했다.

▲ 동아일보 3일자 3면 기사.

<동아일보> 역시 김영란법에 대한 불만과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이날 3면 기사에서 여야의 김영란법 합의에 대해 전하면서 “여야 원내지도부가 적용대상과 범위에서 위헌 논란이 제기된 상태에서도 2일 ‘김영란법’ 처리에 합의한 것은 1년 앞으로 다가온 내년 총선을 의시한 행보라는 관측이 나온다”며 “각종 여론조사 결과 국민 대다수가 반부패 성격이 강한 김영란법 처리에 찬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법인 처리에 미적거릴 경우 여론의 호된 역풍을 피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와 거의 동일한 시각인 셈이다.

<동아일보>의 이러한 시각은 사설을 통해 더욱 노골적으로 표현됐다. <동아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민간 언론인과 모든 사립 교원을 김영란법에 포함시킨 것은 명백한 위헌”이라면서 “헌법이 보장하는 민간 영역의 자율성에 대한 과도한 침해가 될 뿐 아니라 민간의 특정 영역을 따로 떼어내 다른 민간 영역과 달리 취급하는 것으로 평등 원칙에도 위반된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이 법을 제안했던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도 당초 취지와 다르다며 황당해할 것이 틀림없다”면서 “국회에 어느 사이엔가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릴 것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법을 만드는 무책임한 습관이 배어들었다. 헌재가 알아서 위헌 결정을 해줄 테니까 골치 아픈 것은 헌재에 넘기고 국회는 적당히 입법해도 된다는 뜻인가”라고 비판했다.

▲ 동아일보 3일자 사설.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것은 <중앙일보>도 마찬가지다. <중앙일보>는 관련 논란을 다룬 3면 기사에서 다른 언론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김영란법에 대한 비판 여론을 전했다. 그러면서 <중앙일보>는 “당장 음식점, 골프장, 화훼단지 등이 직격탄을 맞아 경기가 침체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면서 익명의 새정치민주연합 중진 의원의 발언을 전했다. 이 중진 의원은 “김영란법의 내용이 알려지지않았을 때는 지역에서 박수를 쳤지만, 식사할 때도 일일이 가격대를 따지며 눈치를 봐야 된다는 사실 등이 알려지면서 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발언했다고 한다.

▲ 중앙일보 3일자 3면.

<중앙일보>는 이날 사설에서도 여야가 합의한 김영란법 안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다. <중앙일보>는 이른바 ‘정무위안’에서 ‘선출직 공직자·정당·시민단체 등이 공익적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민원을 전달하거나 법령 개선을 제안하는 경우’를 처벌 대상에서 제외한 것 등을 예로 들면서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의원과 공무원을 적용대상으로 한 원래의 입법 취지를 위반한 편법 입법이란 비판을 받을 소지가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또, <중앙일보>는 “언론은 공공기관이 아니라 민간기업”이라며 “그런데도 여야가 언론을 굳이 끌어들인 건 다른 의도가 있다는 의심을 사기 충분하다”고 지적하면서 “검찰·경찰이 마음만 먹는다면 어떤 언론도 이 법을 남용한 수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 중앙일보 3일자 사설.

보수언론들이 드러낸 문제의식은 정치권이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계산을 앞세워 위헌소지가 있는 법을 입법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것과 이 법을 남용해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제기하는 것으로 압축된다. 여기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과연 보수언론들이 그간 ‘재갈을 물리는 것’을 우려할 정도로 올바른 언론의 역할을 해왔느냐를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라는 것도 명백하다. 보수언론이 그간 해온 방식의 저널리즘에 대해 냉혹한 평가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김영란법에 대한 이들의 비판이 전사회적 공감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