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 특집 드라마 ‘눈길’은 소중한 드라마다. 일본군 위안부를 본격적으로 다룬 흔치 않은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드라마 눈길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상당히 덤덤하고 절제된 문장을 보였다. 그렇다고 주제와 본질이 가려질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시대의 아픔과 분노가 과장 없이 차갑게 전달될 수 있었다. 눈길의 몇 장면은 아마도 오랫동안 시청자의 심장 가장 가까운 곳에 기억될 것이다.

김새론, 김향기 두 어린 연기자들이 담아낸 이 아픈 이야기는 좋았다는 말을 하기가 미안하다. 진작 해결됐어야 하고, 해결됐다면 이 어린 소녀들이 이토록 아픈 연기를 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니 말이다.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이 우선 잘못이지만 그런 일본을 바로잡지 못한 우리의 잘못도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너무도 연기를 잘하는 두 소녀들에게 감탄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 소녀 연기자들이 해서 정말 다행인 것도 분명했다.

또한 대본을 집필한 유보라 작가가 이 작품을 위해서가 아니라 평소에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집회를 자주 참여했었다는 점은 드라마의 진심을 잘 살려낼 자격을 가졌다. 그러지 않았다면 이 드라마는 좀 더 격정적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격정을 누르고 끝까지 차분한 말투를 유지한 것이 더욱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심지어 영애(김새론)이 도망치다가 일본군이 쏜 총에 맞아 결국 숨을 거두는 장면조차도 다소 불만스러울 정도로 절제된 연출을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은 시청자는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조차 뜨겁지 않고 차가운 눈물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때 영애가 종분(김향기)에게 한 말이 이 드라마 눈길의 전부라고 해도 될 것이다.

영애는 위안소를 탈출하기 직전 몰래 가져온 사진 한 장을 종분에게 건넸다. 그 사진은 위안부 소녀들에게 간호부 의상을 입혀 찍은 왜곡된 사진이지만 영애와 종분에게는 그런 사실보다 함께 있던 친구들의 얼굴이 담겼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여기 우리 애들 니가 기억해야 돼. 꼭”

영애가 마지막으로 남긴 이 말은 꼭 종분에게만 할 것은 아닐 것이다. 이 드라마의 시청자 그리고 우리들 모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작가와 연출 모두가 뜨겁게 분노해도 부족한 역사를 냉정할 정도로 차분하게 이끈 것은 이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받아내는 것 말고도 그 생존자가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현실에 기인한다. 작가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분노보다는 기억하기를 더 바라는 것 같았다.

올 들어서도 벌써 두 분의 할머니들이 세상을 떠났고, 이제 생존자의 수는 52명으로 줄었다. 모두가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이 드라마가 말하는 기억은 그 단순한 지식 이상의 의미일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된 할머니는 238명이다. 정말 극소수의 피해 할머니들이 용기를 내어 세상을 나선 것이다. 자신이 당한 피해를 말도 못하고 피해자들이 훨씬 더 많고, 영애와 종분이 위안소를 탈출할 때의 상황처럼 일본군의 학살로 고향땅도 밟아보지 못하고 목숨을 잃은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들 모두를 포함해서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며, 언젠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모두 세상을 떠난 후에도 계속해서 다음 세대로 전해져야 할 기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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