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의 이인규 전 중수부장 관련 보도의 여파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인규 전 중수부장이 2009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당시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등의 언론 보도 출처가 국가정보원이라는 사실을 폭로한 이후, 이를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경향신문>은 지난 25일부터 거의 3일에 걸쳐 이와 관련한 기사를 1면에 배치하고 논란을 키워왔다. 이에 따라 이인규 전 중수부장의 의도에 대한 여러 해석이 나오게 된 것은 피할 수 없는 길이었다.

가장 주목할 만한 평가는 야당 의원의 입에서 나왔다. 새정치민주연합 박범계 의원은 <경향신문> 보도 직후 “우병우 민정수석 취임 직후라는 점과 MB정부를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점, 공무상비밀누설 공소시효 5년 경과 뒤 작심발언이라는 점, 문재인 대표의 지지율 고공행진 국면에서 나온 점 등을 종합하면, 다목적 다용도 의도적 발언으로 보여진다”는 내용의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렸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월 오전 청와대 위민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 앞서 신임 특보 및 수석들과 티타임을 하며 대화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 신 미래전략수석, 신성호 홍보특보, 이명재 민정특보, 우병우 민정수석, 박 대통령, 김성우 사회문화특보, 임종인 안보특보, 현정택 정책조정 수석. (연합뉴스)

이러한 내용을 검토해보면 박범계 의원은 이인규 전 중수부장의 해당 발언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권 둘 다를 겨냥해 나온 것이라고 보고 있는 듯하다. 이인규 전 중수부장의 발언으로 원세훈 전 원장 체제의 국정원이 2012년 대선 훨씬 이전부터 국내정치에 개입해왔다는 의혹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원세훈 전 원장이 사실상 대선 개입을 지시했다는 점이 인정된 법원의 2심 판결이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기 때문에 이인규 전 중수부장의 발언은 이러한 측면에서 더욱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은 회고록을 발간하고 언론을 통해 민감한 사안에 대한 발언을 내놓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정치권의 해석은 분분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은 선거가 없는 올해를 자신이 집권했던 시기의 성과를 논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라고 항변하고 있으나 권좌에서 물러난 지 2년여 만에 회고록을 출판해 현실 정치에 영향력을 미치려고 시도하는 게 흔한 일은 아니기 때문에 이것이 무언가에 대한 ‘반응’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 바 있다.

여기서 ‘반응’이란 정권이 위기에 처했을 때 흔히 꺼내는 카드로서 전임 정권의 실책에 대한 심판 등이 흔히 다뤄지는 것을 우려한 것 아니겠느냐는 해석을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박근혜 정권은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 등으로 지지율 30%가 무너지는 위기를 겪었다. 이런 상황에서 ‘4대강 사업’ 등 실제로 문제를 노출해온 이전 정권을 건드려보자는 유혹이 현재 정권에서 없었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런 국면에서 이인규 전 중수부장의 발언은 우리 정치사의 아픈 상처인 노무현 전 대통령 문제를 다시 상기해 그 상당한 정치적 책임이 이명박 정권의 핵심인물들에 있음을 상기하는 일정한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또 다른 측면에서 이인규 전 중수부장의 발언이 이에 그치지 않고 아예 박근혜 정권의 핵심 인물을 옹호하는 효과를 낳는다는 분석도 나올 수 있다. 박범계 의원이 특별히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우병우 민정수석은 이인규 전 중수부장과 함께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맡았던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이 때문에 야권에서는 우병우 민정수석이 임명될 당시 일정한 반감이 표출됐었다. 그런데 이인규 전 중수부장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대단히 모욕적인 방식으로 진행된 것은 여론 공작에 열심이었던 국정원에 따른 것이지 검찰의 책임은 크지 않다. 즉,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에 대한 문제가 다시 상기되는 시점에서 이인규 전 중수부장의 발언은 우병우 민정수석을 방어하는 역할을 담당할 수도 있게 된다는 결론이다.

▲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항소심 선고공판을 위해 지난달 9일 오후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같은 문제를 다르게 볼 수도 있다. 이인규 전 중수부장이 국정원의 ‘공작’ 문제를 재론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단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난여론을 확대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 국정원의 공작 덕분에 대선에서 이득을 본 측면이 있다는 게 앞서 언급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법원의 2심 판결 내용이다. 따라서 이인규 전 중수부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에 대한 국정원의 책임을 언급한 것은 ‘이명박근혜 정권’이라는 구호로 대표되는 야권의 공세에 불을 붙이는 행위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일종의 ‘양날의 검’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양날의 검’이 의도된 것일 수도 있다는 해석 역시 가능하다는 점은 이 문제를 대단히 미묘한 것으로 만든다. 박범계 의원은 페이스북에 남긴 글에서 “그나저나 수사 내용은 아무리 국정원이라도 검사가 말해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 대검 중수부가 도청에 뚫리지는 않았을테고…”라고도 주장했다. 박범계 의원의 글에서 이 대목은 이인규 전 중수부장이 비록 지금 국정원을 탓하고 있지만 검찰 역시 당시 ‘공작’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담겨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경향신문> 등의 보도 내용에 따르면 이 문제와 관련해 검찰 관계자들은 국정원이 검찰을 통해 직접적으로 수사내용을 취득하거나 공작에 관여하도록 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이런 발언들은 언뜻 보면 검찰이 국정원의 공작에 협력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오히려 진실은 검찰-청와대-국정원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커넥션이 있었다고 보는 것, 즉 검찰과 국정원의 중간연결고리를 이명박 정권 당시의 청와대가 맡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 이명박 전 대통령이 22일 오후 서울 아산병원에 마련된 김종필(JP) 전 국무총리의 부인 故 박영옥 씨의 빈소를 조문한 후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관계를 전제하고 해석해보면 이인규 전 중수부장의 고백(?)은 그 커넥션에서 자신은 분리돼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뒤집어 얘기하면 이는 자신을 제외한 당시 사건의 나머지 담당자들은 청와대, 국정원과의 긴밀한 파트너십 하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모욕적 수사를 진행하는데 협력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우병우 민정수석 역시 여기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새삼 강조하려 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인규 전 중수부장과 함께 <경향신문>의 기사에는 몇몇의 ‘검찰 관계자’들이 등장하는데 최근 검찰 내부 인사에 대한 설왕설래가 많았던 것을 고려하면 이들의 이런 움직임이 하나의 어떤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려되기도 한다. 특히 최근 검찰 인사에서 차기 검찰총장군으로 분류될 수 있는 대검차장과 서울지검장을 TK출신들이 독식하는 바람에 우병우 민정수석부터 검찰 내부 주요 인사까지 특정지역 출신 일색이 돼 문제라는 보도가 다수 이어졌던 것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결과적으로는 이 역시 박근혜 정권이 처해있는 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는 사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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