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국회에서는 지상파와 외주제작사들이 사활을 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방송법> 제72조(외주제작 방송프로그램의 편성) 2항 삭제여부를 둘러싼 '대전'이다. MBC와 SBS는 사활을 걸고 삭제를 요구하고 있고 반대로 외주사들은 사활을 걸고 막고 있다. 지난달 24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가 해당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을 담은 <방송법> 개정안(새누리당 조해진 의원 대표발의)을 통과시켰지만, 법사위와 본회의를 앞두고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 홍문종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장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방송법> 개정안이 통과되던 날, 국회 미방위 회의장에는 생경한 일이 벌어졌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박창식 의원이 회의장으로 들어와 “이게 어떤 법인지 알고 통과시켰느냐”며 거센 항의를 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타 상임위 소속 의원이 회의장에 들어와 항의하는 모습은 흔한 일이 아니다. 박 의원은 왜 그랬을까. 그는 대표적 외주 드라마 제작사인 김종학프로덕션 대표와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회장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외주제작사의 이해관계를 국회에 관철시키는데 가장 앞장서는 의원이기도 하다. 국회의 관례를 어기고 그가 미방위에 '진격했다'는 점은 외주사 측의 반발 강도를 보여준다. 현재 <방송법> 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중이지만, 외주제작사를 관할하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반대하고 있어 통과를 막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임은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방송법> 제72조 2항이 뭐길래, ‘삭제’를 둘러싼 '사생결단'

대체 <방송법> 제72조의 내용이 무엇이기에 이렇게까지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것일까. <방송법>은 외주제작의 활성화를 위해 법으로 편성을 규제하고 있다. 제72조의 핵심 내용이 그것이다. 제72조(외주제작 방송프로그램의 편성) 1항은 “방송사업자는 전체 방송프로그램 중 외주제작 방송프로그램을 일정 비율 이상 편성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2항은 “방송사업자는 외주제작 방송프로그램을 편성함에 있어 특수관계자가 제작한 방송프로그램을 일정한 비율 이상을 초과하지 아니하도록 편성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정부는 해당 법률에 의거해 시행령과 고시를 통해 전체 방송프로그램 중 40% 이상 외주제작을 편성하도록 규정(2012년 기준)하고 있다. 또한 특수관계자의 경우, 방송사의 외주편성 비율 내 21%(전체 40% 이상 중)를 초과할 수 없도록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 방송법과 방송법 시행령·고시 등으로 규정된 방송사들의 외주제작 편성 규정

다만, 방통위는 방송매체의 특성을 고려해 차등을 둔다. 수신료로만 운영하는 KBS1의 경우, 외주사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을 25% 이상 편성해야 한다. KBS2는 40%, MBC·SBS 35%, EBS 20%로 정해져 있다. ‘특수관계자’ 비율은 모두 21%이다. 그 결과, KBS1은 전체 100%의 프로그램 중 자회사 등 특수관계자가 제작한 프로그램은 5.25% 이상 편성할 수 없었다.

국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방송법> 개정안의 가장 큰 쟁점은 이 ‘특수관계자’ 부분이다. 지상파는 그동안 ‘외주편성’ 관련 모든 토론회에서 해당 조항을 삭제해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해왔다. 예컨대, SBS의 경우 자회사가 제작한 프로그램에 대한 편성을 자율적으로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지상파의 논리는 정부의 외주정책으로 인해 외주산업이 이제 안정화됐기 때문에 방송사의 편성권을 존중해달라는 요구이다.

그리고 최근 들어 지상파는 ‘차이나 머니(중국 자본)’를 편성 규제 폐지 근거에 추가했다. 중국에 의해 국내 제작요소들이 유출되고 있어 향후 프로그램 제작비 상승이 우려될 뿐 아니라, 국내 제작시장의 중국 자본에 의한 종속화가 심해질 수 있으니, 지상파의 제작시장 진입 장벽이 되고 있는 특수관계자 규제를 철폐해야한다는 논리다. 차이나 머니의 공세 속에 지상파가 경쟁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이야기다.

실제, 중국자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건 사실이다. 중국기업들이 2013~2014년 2년 동안 한국 방송 콘텐츠 투자한 비용은 약 10억 달러(1조1000억 원) 규모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들어 중국자본은 국내 지상파에서 방영된 방송 프로그램의 판권을 구입하는 것을 넘어 외주제작사와 연예기획사, 영화배급사 등 방송 프로그램 생산요소들을 순차적으로 장악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홍콩 주나인터네셔널이 우리나라 대표적 외주사인 초록뱀미디어를 인수한 것은 대표적 사례다. 이 밖에도 소후닷컴은 중국 내 인기가 높은 김수현이 소속돼 있는 키이스트의 지분 6.4%를 확보했다. 지성·황정음 주연 MBC <킬미힐미>는 팬엔터테인먼트와 중국 절강화책미디어 그룹이 공동제작하고 있다. 차이나머니가 국내 방송산업을 잠식해가고 있다는 말은 분명 실제적이다.

▲ 차이나머니가 우니라나 문화·방송계에 미치는 영향 관련 기사들

하지만 외주제작사들의 입장은 단호하다. 특수관계자 편성 비율 폐지는 “외주말살 정책”이라는 입장이다. 이들은 “조해진 의원은 외주제작 의무편성비율 때문에 방송사의 제작 역량이 약화되었다는 터무니없는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며 “(방송사의 제작 능력 약화는)편성권이라는 절대 권력 안에서 안주해 온 관행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방송사가 '갑'이라면 '을'일 수밖에 없는 외주사들이지만, 이번 문제의 경우 '생존'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어 그 어느 때보다 반발이 큰 상황이다.

국회, ‘순수외주제작’ 개념 가져와…진짜 쟁점은 ‘차이나머니’ 유입

국회는 당초 조해진 의원이 발의한 <방송법> 개정안을 수정해 ‘순수외주제작 방송프로그램의 편성’ 개념을 가져왔다. ‘특수관계자’ 비율 제한은 삭제해도, (방송사 자회사 등 특수관계자가 아닌)순수외주제작사에서 제작한 방송프로그램 편성 비율은 그대로 유지한다면 외주사들에 대한 보호 장치가 될 수 있으리란 뜻이다. 24일 통과된 <방송법> 개정안이 그렇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상호 의원(미방위 간사)은 이날(24일) 외주사들의 반발을 의식한 듯 “특수관계자 외주제작 비율은 폐지하지만 부대의견으로 순수외주제작과 분쟁조정대상 등을 못 박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 의원은 “그 말고도 방송사와 외주사 간 협의해야할 사항이 많다”며 “방통위는 반드시 사후 점검을 해서 외주사가 피해를 입거나 손해 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동반상생 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한 제도 개선”이라고 덧붙였다.

어쨌든, 방송사들의 자회사가 제작한 방송 프로그램을 ‘순수외주제작사에 의해 제작된 방송프로그램 비율’ 이외에 자유롭게 편성 할 수 있게 빗장은 열린다. 해당 법안이 상임위를 통과한 이후, (사)독립제작사협회와 (사)한국드라마제작협회는 26일 공동성명을 내어 “당장 폐기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특수관계자 편성비율 제한’은 “지상파가 특수관계자를 통해 외주프로그램 물량을 확보하는 폐해, 즉 전형적인 ‘갑질’을 규제해왔던 법안”이라며 “하지만 미방위가 법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개정안을 의결했다”고 맹비난했다. 이어, “방송사는 경영 내실을 꾀한다는 명목하에 고비용의 내부 인력을 특수관계사로 이직시켜 방송사의 편성권을 활용하여 자유롭게 특수관계자에게 일감을 몰아주게 되어 또 하나의 독과점 시장을 형성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결국, 외주제작 시장이 붕괴할 것이라는 뜻이다.

▲ SBS '별에서 온 그대'와 MBC '킬미힐미' 공식 포스터

외주사들의 주장 또한 틀린 것만은 아니다. 방송사 편성에서 특수관계자 제한 비율이 폐지되면, MBC와 SBS 계열의 프로덕션의 방송프로그램 제작이 활발해질 것이다. 2.1%~8.4%로 제한돼 있던 편성 제한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들이 제작한 프로그램은 타 외주제작사들이 제작한 방송프로그램보다 ‘편성’에 있어서 우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차이나 머니’ 투자 역시 마찬가지다. '차이나 머니'는 대체로 ‘지상파 편성’을 조건으로 투자한다. 외주사들 역시 ‘스타’와 ‘작가’를 확보해 지상파의 편성을 잡는다. 그런데, 지상파 자회사들이 본격적인 제작에 뛰어들어 ‘편성’에서 우위를 가지게 되면 이 시스템의 붕괴는 명약관화이다. 결국, 지상파 방송이 편성의 전제가 되는 생산요소 전체를 섭렵할 수 있게 된다. 외주제작사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이유다.

공공미디어연구소 김동원 연구팀장은 방송사의 특수관계자 비율 제한 삭제와 관련해 “다양한 논리들이 오가지만 지상파 방송사업자들이 생산요소시장에 들어오는 것으로 보는 게 맞다”고 분석했다. 중국자본에 의한 종속화에 대한 우려 등을 근거로 대고 있지만 사실은 차이나머니를 둘러싼 사업자들 간 대립으로 이해해야한다는 점이다. 실제, SBS 한 관계자는 한 토론회에서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으나 이를 편성한 방송사의 수익은 별로 없었다고 토로한 바 있기도 하다.

“지상파가 생산요소시장에 들어오는 것이라면 모범적인 의무도 주어져야”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중인 <방송법> 개정안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막고 있다고 하지만 상임위를 통과한 만큼 처리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찬성 아니면 반대의 이분법적 입장이 아닌 편성 특수관계자 비율 제한 삭제가 가져올 역기능을 줄이고 순기능을 증대시킬 수 있는 보완책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얘기다.

공공미디어연구소 김동원 연구팀장은 “이왕 지상파의 특수관계자 비율이 폐지될 것이라면 그동안 ‘페이퍼컴퍼니’ 외주제작으로 나타났던 문제점을 해소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장 문제가 됐던 것은 이 같은 페이퍼컴퍼니 외주제작사들이 스타급 연기자를 확보해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해 주식상의 장사만 하고 배우 및 스텝들의 출연료 미지급 사태를 야기해왔던 점”이라며 “지상파가 생산요소시장에 들어온다면 이 같은 문제들에 대해 모범적인 의무가 주어져야 할 것 같다”고 주장했다. 또한 “또한 건실한 외주사들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정부의 보완책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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