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날은 정말 크게 쉴 수 있는 휴일이었다.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진행된 설날 연휴는 바로 주말과 이어져 징검다리 휴일이 되었고, 월요일과 화요일도 쉬는 직장이 많아 그야말로 일본의 '골든 위크'처럼 일주일을 푹 쉴 수 있는 대형 휴일이 찾아온 것이다. 그 덕분에 설날 동안 각종 매체에서는 소위 '명절 특수'라는 이름을 달고 지난 한 주 동안 이루어진 경제 효과를 말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설날은커녕 어떤 명절에도, 그리고 어떤 평일에도 마음 놓고 쉬기 어려운 존재들이 있다. 바로 대부분의 가정에 존재하는 '어머니'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여성이다. 인권 의식이 약했던 예전에 비하면 나아진 점도 없지 않지만 여전히 명절은 여성들에게 있어서는 좋은 기억으로 남기 어려운 휴일이다.

생각해보면 어디 명절만 불편했던가. 정말 먼 옛날보다 나아졌다고 해도 반여성적인 정서는 여전히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인식 중 하나이다. 셧다운제 정책이 시행되고 아동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이 통과된 이후 인터넷 상의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여성가족부와 함께 페미니스트 자체를 비하하는 표현을 이전보다 더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한 정서는 단순히 '일베'나 '디시인사이드'와 같은 보수적 성향의 커뮤니티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루리웹'과 같은 서브컬처 커뮤니티나 '오늘의유머' 등과 같이 흔히 '일베'와 반대되는 성격을 가지는 커뮤니티에서도 이러한 정서는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약 10년 전에 '된장녀'라는 표현이 등장하며 많은 사회적 논란을 낳았던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여성에 대한 비하는 더 증가했는데 그에 대한 문제 제기나 논쟁은 더 줄어든 모습이다. 물론 학계에서는 여전히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그 논의는 상아탑과 논문 밖을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인식이 점차 증대되는 탓일까. 이제는 정책과 관련된 이야기에서도 여성은 동네북과 같은 존재가 된다. 점차 낮아지는 출산율에 대한 책임도 결혼을 하지 않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의 문제로 여겨지고 최근 불거진 보육교사 폭행 문제에 대한 이야기도 은근슬쩍 직장에 다니지 않고 전업 주부로 일하면서 '감히'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려는 어머니의 문제로 돌리려는 시도 또한 있었다. 전반적인 인권 의식이 답보 또는 후퇴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에 대한 인식 역시 그렇게 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여성은 아이를 낳기 전에도, 낳은 후에도 다양한 차별적 인식 아래에서 상대적인 약자가 되고 만다.

작년 8월에 출간된 유승하의 만화 <엄마 냄새 참 좋다>는 먼 옛날 조선시대의 '어머니'부터 현재 시대의 '어머니'까지 다양한 시대에 존재했던 어머니의 존재와 삶을 통해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동시에 이 작품은 작가의 첫 번째 작품집이기도 하다. 유승하는 1990년대 데뷔한 이래 여러 만화 프로젝트와 어린이책의 만화, 삽화로 참여하며 다양한 작품 활동을 계속 해왔지만 그녀의 작품 세계를 온전히 다룬 저서는 나오지 않던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에 작년 중순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내건 작품집이 나오게 된 것이다. <엄마 냄새 참 좋다>는 2003년부터 2014년 초까지 만든 8편의 작품을 담고 있다.

작업한 시점도, 발표한 매체도, 다루고 있는 대상도 모두 제각각이지만 그녀의 만화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어머니'라는 존재가 된 여성이 주인공이며, 동시에 한국 사회에서 많은 어려움과 고통에 시달리는 여성을 주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뇌성마비 장애인 여성, 고등학생 비혼모 여성, 철거민 여성, 노동자 여성, 그리고 예술가 여성에 이르기까지 만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제각기 다른 삶을 살지만 그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다. 그녀들이 놓여 있는 사회적 위치의 문제가 그녀 자신을 험난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지만 그 다음으로 그녀들을 어렵게하는 것은 바로 그녀들이 여자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정신을 차리고 살기 쉽지 않은 세상에서 사회의 여성에 대한 인식은 그녀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데 일조하고 만다. 게다가 만화들의 이야기가 전부 실화와 유승하 자신의 경험에 기초했다는 사실이 독자들을 더 씁쓸하게 만든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유승하 특유의 부드러운 파스텔톤의 그림체와 결합하며 작품은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게 되었다.

▲ 유승하의 그림체는 부드러운 파스텔톤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그림체에서 느껴지는 선입견과는 달리 그녀의 작품에는 한국 사회 곳곳에서 여성들이 처해있는 현실과 자신이 여성으로 겪었던 경험들이 가득 담겨있다. (사진제공 : 창비)

유승하의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사회적인 현안과 이슈에 대해 그린 대부분의 만화들과 큰 차이가 없어보지만 여성의 위치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여성의 시점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리를 잡는다. (그러한 점에서 그녀의 작품은 <먼지 없는 방>과 <똑같이 다르다> 등을 그린 만화가 김성희와 맥락을 같이 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이 바로 철거민에 대한 이야기인 <지 편한 세상>과 고등학생 비혼모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축복>이다.

<지 편한 세상>에서 주인공 여성 화자는 뉴타운 사업으로 철거될 위기에 처해있는 용산 신계동에 살고 있다. 그녀는 오랫동안 살고 있던 자신의 집에서 쫓겨나게 된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한편 자신이 가장이 되어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압박감, 철거 용역으로부터 받는 각종 성적인 모욕으로 인해 심적인 고통을 받고 그 고통은 다시 가슴에 밀려오는 통증이 된다. 이러한 와중에 그녀는 점점 변해가는 모습에 지친 딸과 갈등을 빚고, 결국 이 모든 압박과 통증은 아이러니하게도 일을 하러 간 사이에 집이 철거되는 것과 동시에 사라지고 만다. 자신이 지켜야할 것들이 사라지면서 동시에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지를 깨닫게 된 그녀의 모습은 사회적으로, 그리고 여성이라는 정체성으로 인해 어려움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한 짧은 이야기가 된다.

<지 편한 세상>이 철거 문제라는 상대적으로 이해받기 쉬운 소재를 대상으로 삼았다면 <축복>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첨예한 논쟁의 대상이 되는 '비혼모'의 문제를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친구의 소개로 찾아간 모임에서 반강제로 성관계를 하고 만 주인공은 서서히 달라지는 몸 상태로 인해 자신이 임신을 하지 않았나는 불안감을 갖게 되고, 그 불안은 곧 현실이 되고 만다. 그리고 성관계를 했던 것 이상의 고통이 주인공에 닥치게 된다. 남자 산부인과 선생은 그녀에게 임신했다는 진단만 해줄 뿐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지 않으려고 하고, 결국 오랜 고민 끝에 주인공은 부모님께 합숙 학원에 다닌다는 핑계를 대고 혼자 산부인과에 입원해 아이를 낳고 바로 입양을 보내고 만다. 원하지 않는 임신에, 원하지 않게 아기를 떠내 보내야만 하는 주인공의 슬픔은 친척이 아이를 갖게된 것에 대한 어머니의 기쁨과 대비되어 비혼모가 겪는 사회적인 압박을 독자로 하여금 더 절실하게 이해하게 만든다. 특히 한국에서 여전히 비혼모가 그녀들 개인의 문제로 여겨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주인공이 일을 겪고 비혼모가 된 과정을 짧은 지면 아래 그려나간 <축복>은 단순히 비혼모의 문제가 '순결'의 문제가 아님을 전달하는 좋은 만화가 된다.

또한 한편으로 주목할 부분이 있다면, 그녀는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를 바탕으로 소소한 이야기들도 함께 작품에 버무려낸다는 점이다. 작품집의 맨 뒤에 실린 두 개의 단편들은 각각 허난설헌과 나혜석이라는 한국을 대표하는 유명 여성 예술가의 일생에 자신이 어머니이자 만화가로써 겪는 감정들을 결합시키는 방식으로 전개한다. 실제 허난설헌이 살던 강릉에 가고, 나혜석에 대한 전기를 읽으면서 어느새 그녀는 단순히 두 명의 일생을 이야기하는 화자를 넘어 그들의 삶과 동화되면서 일생을 살핀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여성이라는 점에서 자유롭지 않았던 허난설헌의 삶에서, 정조를 지키지 않고 여성으로써 본분을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란만장한 생을 살아야만 했던 나혜석의 삶에서 유승하는 자신의 삶이 그들과 다르지 않음을 발견한다.

이렇게 <엄마 냄새 참 좋다>는 주목받았지만 여성적인 시각에서 보지 않았던, 그리고 사회 구석에 밀려있는 약자들의 삶에서 여성성을 주목하고 섬세하지만 날카로운 이야기들을 담은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의 이야기들이 결코 밝지는 않기에 가볍게 보기에는 쉽지 않지만 자기 자신이 여성이라면, 또는 이 사회에서 여성이 가지는 사회적 위치에 관심이 많다면 분명 좋은 단편 만화집이 될 것이다. 특히 이번 설날에 어머니가 명절 증후군에 시달리는 모습에, 큰집에 가는 것을 언짢아하던 모습이 신경 쓰인다면 이 책을 함께 보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작품집의 1부와 2부 사이에 실린 작가의 삽화 에세이 <할머니의 목욕>에서 고단한 삶에 지치고 세월에 치여 주름이 자글자글한 몸을 씻는 할머니의 모습을 숭고한 시선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다.

2014년 8월 25일 출간. 창비,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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