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매상 KT가 자신의 가게에서 소매상품까지 팔겠다고 한다. 소비자가 보기엔 KT도 소매상처럼 보이지만, 이동통신재판매사업자(MVNO, 알뜰폰사업자)에게 KT는 큰손 중의 큰손, 도매상이다. 이동통신사는 알뜰폰사업자에게 망을 빌려주고 그 대가를 받는데, KT는 최근 알뜰폰사업자에게 공문을 보내 “직영매장에서 판로를 열어주겠다”며 지원자를 받았다. KT 망을 이용하는 사업자 14곳 중 4곳이 선정됐고, KT는 3월께 시범사업을 시작해 향후 전국 250여개 직영점에서 알뜰폰을 판매한단 계획이다.

이동통신사 매장에서 알뜰폰을 판매하는 것은 KT가 처음이다. KT M&S는 앞으로 KTIS, CJ헬로비전, 에넥스텔레콤, 에스원의 알뜰폰을 매장에서 판매하고 판매 수수료를 받는다. 권역별로 2개 사업자의 알뜰폰이 KT 직영점에 들어간다. 27일 KT 홍보실 관계자는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알뜰폰사업자에게 매장을 개방하는 차원”이라며 “모든 사업자의 상품을 다 갖다놓을 수는 없고, 우리 매장에서 장기적으로 호흡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알뜰폰사업자를 지원해 알뜰폰을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 KT의 알뜰폰 브랜드 M모바일 광고 영상 갈무리.

업계와 언론은 지난해 10월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말기유통법)’ 시행 이후 KT 가입자가 알뜰폰으로 빠져나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가입자 이탈을 막기 위해 알뜰폰을 매장에 들여놓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KT는 단말기유통법 시행 이후 넉 달 동안 가입자가 줄었다. SK텔레콤이 점유율을 유지하고, LG유플러스가 점유율을 끌어올린 것과 비교된다.

특히 KT는 최근 알뜰폰 사업에서 SK텔레콤에 1위 자리를 내줬다. 머니투데이 더벨은 “지난해 KT 계열 MVNO 서비스 가입자수는 207만9008명으로 SK텔레콤 계열 가입자(214만1172명)보다 6만 여명 적었다”며 “이에 따라 가입자 점유율도 45.4%로 줄어 SK텔레콤 계열(46.7%)에 1위 자리를 내줬다”고 전했다. 망 임대 수입에서도 SK텔레콤에 밀리게 된 것.

디지털타임스는 26일자 9면 기사 <KT, 직영대리점서 알뜰폰 판다>에서 “업계 안팎에서는 KT가 알뜰폰 사업자에 공급하는 단말기 운용 능력이 경쟁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상황에서, KT망을 쓰는 알뜰폰 사업자의 이탈을 막기 위해 직영대리점 유통망 개방이라는 고육지책을 선택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며 “여기에 알뜰폰 사업자가 복수의 이동통신사 망을 임대할 수 있게 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라고 보도했다.

알뜰폰 업계의 시각도 갈린다. KT에 이어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이 흐름에 합류하면 알뜰폰 유통망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하는 사업자도 있다. 그러나 KT가 자회사에 단독으로 판매망을 열어주는 것을 금지한 정부 정책을 피해 다른 업체를 ‘들러리’로 내세웠다는 의견도 있다. 한 알뜰폰 관계자는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업계 반응은 대부분 ‘의아하다’는 것”이라며 “이번에 (KT에) 들어가기로 한 업체들도 망대가산정 협상이 어려워질 것을 우려해 울며 겨자 먹기로 들어간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KT 관계자는 “KT는 원래 알뜰폰사업을 열심히 해왔다”며 “알뜰폰으로 제 배를 채운 적은 없고, (이번 정책은) 알뜰폰 활성화 취지다. KT 가입자가 빠졌다고 하는데, LTE 가입자와 가입자당 평균 매출은 KT가 3사 중 가장 높다. (알뜰폰을 매장에 들이고 점유율을 올리려고 한다는) 그런 시각은 무리”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SK텔레콤에 알뜰폰 점유율을 밀려 알뜰폰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 아니냐’는 취지의 질문에 대해서는 “최근에 역전된 것이고, SK텔레콤은 지난해 영업정지 기간에 MVNO인 SK텔링크에 몰아넣어 점유율을 올렸다”고 말했다.

한편 알뜰폰은 이동통신시장의 한축으로 성장하고 있다. 특히 단말기유통법 시행 이후 점유율이 오르고 있다. 지난해 12월 알뜰폰의 시장점유율은 8.01%였는데 한 달 새 8.27%로 크게 올랐다. 이 기간 이동통신 전체 가입자 증가분의 73.8%가 알뜰폰 가입자다. 이동통신사 입장에서 보면, 애초 10% 정도로 예상했던 알뜰폰 가입자가 이를 넘어서 이통3사의 이익을 갉아먹을 수 있는 위기인 셈이다.

최근 이통3사가 방송통신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와 협의를 거쳐 오는 28일부터 ‘주말 개통’을 시작하는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알뜰폰 업계 관계자는 “10%까지는 안정적으로 갈 것으로 보이지만 주말개통이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며 “또 3사 모두 알뜰폰 판매에 나서고 자회사를 밀어준다면 ‘쏠림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2015년 2월 현재 알뜰폰사업자는 28곳으로 KT망을 임대하는 사업자는 14곳, SK텔레콤은 9곳, LG유플러스는 5곳이다. CJ, 티브로드, 신세계, 삼성 등 재벌 대기업이 알뜰폰에 뛰어들었다. 알뜰폰 업계에 따르면, 망을 빌려주고 대가를 받는 이동통신3사 중 가장 실적이 저조한 곳은 LG유플러스다. 유플러스는 지난해 자회사 미디어로그로 이 사업에 진출했다. LG망을 빌려쓰는 인터파크의 경우 가입자가 11명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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