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료를 개별 징수하는 상태로 돌아가면 각자 집에 TV가 있는지 전파 탐지를 해야 하고 수신료 안 내는 사람들의 재산을 압류를 해야 되고, 너무 야만적이지 않느냐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이 훨씬 더 야만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아예 수신료를 납부하지 않을 기회조차도 박탈했기 때문입니다. 이건 마치 제가 투표하기를 원치 않았는데도 제 투표지를 투표함에 넣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훨씬 더 야만적인 제도 하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한 시청자와 방송 사이의 건전한 책임성 관계는 회복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수신료 강제징수 제도는 반드시 철폐되어야 합니다. 시청자를 바라보고 방송하는 공영방송이 되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 박경신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

27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언론소비자주권행동 주최로 <TV수신료 분리고지 신청서 전달 기자회견>이 열렸다. 앞서 언론소비자주권행동 등 언론시민단체는 지난해 7월부터 TV수신료 분리 징수 청구인을 모집한 바 있다. (▷ 관련기사 : <“시청자는 노예가 아니다… 수신료 강제징수 반대”>)

▲ 27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언론소비자주권행동 주최로 이 열렸다. (사진=미디어스)

‘TV수신료 인상’ 이야기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흐름이다. 조대현 KBS 사장은 지난해 7월 28일 취임 당시 ‘당분간 수신료 인상은 없다’고 천명했으나, 지난해 10월 22일 국감 때 ‘선 신뢰 회복’을 언급하면서도 “수신료 현실화는 긴요한 사항”이라고 입장을 바꿨다.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는 <2015 주요 업무계획>에 KBS 수신료 인상을 포함시켰다. 어제(26일)는 한국언론학회가 주최한 <공영방송 재정안정화 기대효과> 세미나가 열렸다. KBS의 후원으로 진행되는 행사였다. KBS는 같은 날 “콘텐츠 시장 개방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한류 확산을 위해서 무엇보다 공영방송의 재정안정화가 시급한 과제” 등 ‘수신료 인상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발언을 중심으로 한 보도자료를 발표하기도 했다.

언론소비자주권행동은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위해서는 수신료가 주된 재원이 되도록 인상해야 한다’는 데 충분히 공감하며 수신료 인상에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공영방송의 독립성은 재원독립만이 아닌 시청자 주권이 함께 회복되어 공영방송과 시청자 간에 올바른 평등한 상호책임의 관계가 복원될 때에만 비로소 완전해진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생활필수 공공재인 전기요금과 통합하여 강제징수되는 상황에서 일방적인 수신료 인상은 시청자를 우습게 여기는 강도질에 다름 아니다”라며 “수신료 인상의 필수 전제 조건은 공영방송의 ‘공정성’이며 이는 방송의 독립성을 지키고 담보하는 시청자 주권이 먼저 회복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수신료 강제징수, 공영방송이 시청자들에게 책임 갖도록 하는 기회 날려버린 것”

언론소비자주권행동의 TV수신료 분리 고지·징수 청구 관련 법률자문을 담당하는 박경신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은 “전 세계 공영방송의 2/3가 운영예산을 수신료로 마련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공정하다고 여겨지는 BBC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공정한 방송이 되기 위해서는 결국 시청자에게 책임성을 가지고 방송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의 ‘통합징수’ 제도는 수신료 제도의 취지와 어긋난다는 것이 박경신 소장의 설명이다. 박경신 소장은 “우리는 수신료 제도는 마련해 놓았지만, 그 수신료를 강제징수하면서 결국 수신료를 통해 공영방송이 시청자들에게 책임을 갖도록 하는 기회를 날려버렸다”며 “거칠게 말하면 ‘죽 쒀서 개줬다’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경신 소장은 낮은 수신료 징수율을 걱정하면서도 ‘수신료는 시청자들과 교감하는 유일한 통로인데, 강제징수를 하면 시청자들이 우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다’며 수신료 통합징수 방식에 우려를 나타낸 NHK 사장의 일화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현재의 수신료 징수방식은) 저는 투표하기 원치 않았는데 제 투표지를 투표함에 넣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이런 야만적인 제도 하에 살고 있는 한 시청자와 방송 사이의 건전한 책임성 관계는 회복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수신료 강제징수 제도는 반드시 철폐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률자문을 맡고 있는 정관영 변호사는 “공영방송의 주인이 시청자라면 수신료를 납부하지 않을, TV를 시청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 법률 검토를 한 결과 시청자들이 수신료 분리고지를 요청했을 경우 그에 대해 공영방송은 응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수신료 분리 징수 청구는) 공영방송을 사랑하는 시민들의 마음에서 시작됐다는 점을 이해해주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기자회견 후, 참가자들은 그동안 전국 시청자들이 모아 준 청구서 1246매를 KBS 시청자서비스 팀장에게 전달했다. 이태봉 언론소비자주권행동 사무처장은 “해당 팀장은 공식 민원이기 때문에 14일 내에 답변이 갈 것이라고 했다. 다만, 자신이 수신료 분리고지에 대한 입장을 가타부타 말하기는 어렵다고 전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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