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프로배구 ‘만년꼴찌’ 한국전력이 감격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뤄냈다.

한국전력은 26일 경기도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대한항공과의 NH농협 2014-2015 프로배구 V리그 남자부 홈 경기에서세트 스코어 3-1(25-14 25-20 22-25 25-22)로 승리하면서 승점 3점을 추가했다. 이로써 시즌 21승 11패 승점 59를 기록하며 3위 자리를 지킨 한국전력은 최소한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 지었다.

한국전력이 남은 4경기에서 승점을 추가하지 못하고, 5위 현대캐피탈(14승 17패승점 46)이 남은 5경기에서 승점 15를 얻어 61점으로 3위에 오르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나도, 규정상 4위로 밀린 한국전력이 3위 현대캐피탈과 승점에서 2점 밖에 뒤지지 않기 때문에 최소한 준플레이오프를 치를 수 있는 기회를 얻기 때문이다.

참고로 남자 프로배구는 정규리그 3,4위 간 승점 차가 3점 이내면 단판으로 준플레이오프를 치르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한국전력이 플레이오프에 직행할 가능성이 유력한 상황이다. 당장 다음 달 2일 현대캐피탈전에서 승리하면 준플레이오프를 치르지 않고 정규리그 2위팀과 3위팀이 벌이는 플레이오프에 직행할 수도 있다.

반면 삼성화제와 함께 국내 남자 배구판을 양분하다시피 해온 현대캐피탈은 처절한 몰락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됐다. 자력으로는 준플레이오프를 치를 기회조차 얻을 수 없는 상황이고, 한국전력의 재앙적 연패에 실낱같은 기대를 걸어야 하는 처량한 처지다.

▲ 25일 충남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NH농협 2014-2015 프로배구 V리그 남자부 현대캐피탈과 OK저축은행의 경기. 득점한 현대캐피탈 선수들이 서로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전력의 포스트시즌 진출과 현대캐피탈의 몰락, 분명 배구판의 지각변동이 현실이 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여기에 OK저축은행의 약진도 남자 배구판의 지각변동의 한 축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일단 신생팀에 가까운 OK저축은행은 논외로 하고 한국 프로배구의 역사와 함께해 온 전통을 지닌 한국전력과 현대캐피탈을 놓고 이야기하자면 두 팀의 역사는 아마추어 시절인 백구의 대제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부터 한국전력은 만년 약체였고, 현대캐피탈은 전신인 현대자동차서비스가 고려증권과 함께 최정상권의 실력을 유지했다.

공기업으로서 수준급 선수 영입에 필요한 자금 동원에 한계가 있었던 한국전력은 아무래도 선수 구성 면에서 열세일 수밖에 없었던 반면, 대기업인 현대자동차서비스는 강만수, 김호철, 이종경, 임도헌, 노진수, 마낙길, 이채언 등 당대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들을 보유하면서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배구가 프로화가 된 이후에도 한국전력은 약세를 면치 못했다. 역시 선수 수급의 문제가 가장 컸다. 특히 다른 팀들과 전력상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외국인 선수 영입에 있어 한계를 드러내면서 ‘만년 꼴찌후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지 못했다.

그 결과 한국전력은 지난 시즌까지 10시즌에서 5차례나 최하위에 그쳤다. 한국전력이 정규리그 4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지난 2011-2012시즌 언론과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변이라며 놀라워했다.

▲ 26일 경기도 수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NH농협 2014-2015 프로배구 V리그 남자부 한국전력과 대한항공의 경기에서 세트 스코어 3대1로 승리한 한국전력 선수들이 경기 후 함께 기뻐하고 있다. 특히 쥬리치(왼쪽에서 2번째)는 백어택, 블로킹, 서브 점수를 모두 3점 이상 얻어내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하지만 이번 시즌 한국전력은 구단의 든든한 지원 아래 국가대표 주전 공격수인 전광인을 비롯한 젊고 패기 넘치는 선수들과 하경민, 방신봉 등 백전노장 선수들의 풍부한 경험이 어우러진 절묘한 신구조화에 그리스 출신의 수준급 외국인 선수 쥬리치의 활약이 더해지면서 그야말로 무서운 팀으로 변모했다.

한 경기 한 경기 승리의 맛을 알아가면서 그 시너지는 배가됐고, 이제 그 어느 팀도 한국전력을 과거처럼 ‘승점자판기’로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패배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반면 V리그 출범해인 2005년부터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온 현대캐피탈은 이번 시즌 개막 당시만 해도 문성민과 아가메즈라는 확실한 원투펀치에 여오현이라는 훌륭한 리베로를 보유, 포스트시즌 진출은 당연하게 보였지만 시즌 중반 아가메즈의 부상과 함께 팀이 흔들렸다.

‘몰빵배구’라는 비난 속에서도 현실적으로 외국인 선수에 대한 의존을 포기할 수 없는 국내 프로배구의 특성상 아가메즈의 부상은 현대캐피탈에 치명상을 안겼다. 물론 이후 교체되어 팀에 합류한 케빈이 잘 해주고는 있지만 아가메즈의 파괴력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현대캐피탈의 몰락의 원인을 단순히 아가메즈의 부상이라는 한 가지 원인으로만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현대캐피탈의 몰락은 매 시즌 개막을 앞두고 신치용 감독이 어김없이 ‘죽는 소리’를 해도 시즌 마지막에 가면 어김없이 우승을 차지하는 삼성화재의 모습과 대비되면서 더욱 더 초라하게 비쳐지고 있다.

스포츠 전문 블로거, 스포츠의 순수한 열정으로 행복해지는 세상을 꿈꾼다!
- 임재훈의 스포토픽 http://sportopic.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