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주가지수 1000포인트가 무너지는 등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국내 경제위기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이명박 정부에 우호적이었던 <조선일보> <중앙일보>마저 빗나간 정책 판단과 발언으로 국민의 빈축을 샀던 MB경제팀에 대해 ‘책임론’을 꺼내들었다.

특히, 중앙일보는 지면에서 과거 김대중 정권과 현 정부 경제팀 인사의 차이점까지 거론하며 “현 정부는 (실력보다) 인연을 중시했다”고 쓴소리를 아끼지 않고, 사설에서 ‘식물상태인 현정부 경제팀의 전격 교체’를 언급하고 나섰다.

▲ 중앙일보 27일자 6면
중앙일보는 1면 톱기사인 <오늘 당장 금융시장이 걱정인데 청와대는 “달러부족 거의 해결”>에서 “지금 한국경제는 단단히 탈이 났는데도 불을 끄는 모습이 숭례문 진화때를 빼 닮았다. 정부가 외환보유액이 넉넉하고, 기업과 은행의 기초체력이 괜찮다고 외쳐도 불은 계속 타들어 가고 있다”며 정부의 안이한 상황 인식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3면 <“외환위기와 다르다” 열흘만에 “그때보다 더 어렵다”>에서 이명박 대통령,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등 경제정책 책임자들의 빗나간 판단과 상황인식을 보여주는 발언을 보도하고, 5면 <“단합해 위기 타개” 호소>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국회 시정 연설을 다루며 “‘한국의 경제규모가 커서…’ ‘종합대책에는 시간이 좀…’ ‘금리 인하는 한은의 몫이라서’ 등의 한가한 대응 대신 대통령이 나서 강도 높은 대책을 가장 신속히 취하는 게 해법”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6면 <“DJ때는 실력 위주”…“MB는 인연 중시”>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경제팀은 이규성 재정경제부 장관,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 진념 기획예산위원장, 김태동 청와대 경제수석과 강봉균 정책기획수석 등이 주요 인사로 각 분야에서 누구나 수긍할 만한 실력자이기도 했다. 특히 이 장관과 이 위원장은 DJ와 일면식도 없던 사이였다”며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는) ‘시장보다 인연을 중시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시장의 냉혹한 판단에도 강 장관의 독주체제가 이어지고 있는 탓”이라고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사설 <새 리더십으로 용감하게 국가 위기를 이겨내자>에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금 금융시장에서 식물인간 상태다. ‘전쟁 중에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는 말을 모르는 게 아니지만 뇌사상태의 사령부로는 승리를 담보할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비상한 각오로 경제팀을 다시 꾸려야 한다”며 “지금은 ‘대통령의 신뢰’보다 ‘시장의 신뢰’가 유일한 잣대가 돼야 한다. 새로운 리더십으로 용감하게 정면으로 맞서야 이 위기를 이겨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늘자 조선일보도 중앙일보보다 강도가 약하긴 하지만 ‘경제팀 책임론’을 꺼내들었다.

조선일보는 27일자 5면 <행동보다 말부터 쏟아내는 정부 경제팀>에서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처하는 경제부처 장관들의 자극적이고 섣부른 발언이 금융시장 불안을 가중시키는 것은 물론 해외 투자자들에게도 나쁜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며 “정부가 개입을 해도 통제하기 힘든 환율이나 시중금리마저도 ‘곧 안정될 것’이라는 식으로 예단했다가 빗나가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금융시장에 나쁜 영향을 미친 정부의 발언들’이라는 도표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전광우 금융위원장 등의 금융시장 악영향 발언을 정리하기도 했다.

‘대외여건이 불안한 상황에서 강만수 경제팀의 잇단 정책 실기와 안이한 대응, 정부 부처간 혼성 등이 맞물리면서 경제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다’(경향신문), ‘전쟁 중에 말을 갈아탈 수 없다는 이 대통령의 뜻이 완고하지만 '강만수 경제팀'을 경질하라는 목소리는 날이 갈수록 높아만 간다’(서울신문) ‘재정부, 한은, 금융위 등 정부 당국간 엇박자가 정책대응을 지연시켜 금융불안을 키웠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세계일보)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에 비해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이 과도하게 무너지고 있는 것은 결국 현 경제팀의 정책실패 탓이다. 강 장관을 비롯한 경제팀 교체가 위기 해소의 실마리’(한겨레) ‘경제팀에 대한 불신이 우리 금융 시장의 과민 반응을 촉발하는 측면이 상당하다. 수많은 대책보다 리더십 회복이 더 중요한 때’(한국일보) 등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외의 오늘자 다른 신문들도 이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변신’은 여러 가지 해석의 뒷맛을 남긴다. 무엇보다 두 신문도 지금 경제위기의 심각성이 더는 외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인식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위기가 신문사 경영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실존적인 위기의식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갈수록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는 정치권의 앞날에 대비해 현 정권으로부터 한발을 빼는 보험성 ‘알리바이’일 수도 있다. 두 신문 가운데서도 유별나게 중앙일보의 논조가 강한 것은 이 신문과 혈연관계에 있는 보광그룹·삼성그룹이 경제위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사정도 닿아 있을지 모른다.

▲ 동아일보 27일자 4면
하지만 동아일보만큼은 ‘경제팀 책임론’을 찾아볼 수 없다. 사설에서 “이명박 정부는 반성할 점에 대해서는 겸허해야 한다”고 한 줄 뭉뚱그려 걸쳤을 뿐이다.

이밖에 지면에서도 정부의 금융위기 대책을 받아쓰고, 경제활성화를 위해 규제완화를 부르짖는 등 늘 ‘한결같은’ 모습을 선보인다. 쌀 직불금 문제에서 딱히 새로 밝혀진 게 없는데도 며칠째 한 가지 정황을 물고 늘어지며 ‘노무현 정부 탓’을 확대재생산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동아일보는 3면 <한은 “증시 월요병 막아라” 금리카드 꺼내 선제조치>에서 금리 인하, 은행채 매입, 유동성비율 완화 추진, 증권 거래세 인하 검토 등 금융당국의 금융위기 대책를 보도했다. 같은 면 <“비상국회 각오로 여야 초당 협력 예산 증액-개혁법안 조속 처리를”>에서도 이명박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 내용와 정부의 계획만을 내보냈다.

오늘자 다른 신문들이 지면에서 정부의 경제위기 대책을 대대적으로 분석·비판한 것과 달리 동아일보는 생뚱맞게 4면 <세계의 기업도시를 가다 (1)‘아우디의 도시’ 독일 잉골슈타트>에서 납세자의 약 40%가 아우디 직원인 기업도시인 독일의 잉골슈타트를 찾아가 아우디 자동차 활성화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 현지상황을 전하며 제목을 <“아우디차 가는길 규제는 없다” / 시, 물류센터 1년반만에 ‘뚝딱’>으로 뽑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사설 <이 대통령, 시장 신뢰 회복의 원점에 서야>에서 “이 대통령이 오늘 국회에서 하는 예산안 시정연설은 경제위기 극복의 전제조건인 시장 신뢰회복의 새로운 출발선이 됐으면 한다. 지금 경제상황에서 정부는 당연히 금융뿐 아니라 실물 전반에 걸쳐 신속하고 강도높은 대책을 내놔야 한다”며 “정부가 반성할 점에 대해서는 겸허해야 한다. 대통령이 정책 운용상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알고 있어야 하고, 이를 진솔하게 사과하는 편이 시장의 신뢰회복에 도움을 줄 것”이라며 ‘정부 책임론’은 완곡한 권유형으로 슬쩍 끼워넣는다.

조선일보, 중앙일보까지 무능한 경제팀을 비판하고 나선 마당에 동아일보가 현 위기상황의 원인 중 하나인 이들을 비판하기는커녕 아예 거론하지도 않고, 주로 정부의 경제위기 대책을 받아쓰기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동안 보도 태도에서도 드러났듯이, 동아일보는 조선·중앙과 비교해도 현 정권에 대해 유독 맹목적이다. 현 정권 실세 가운데 동아일보 출신들이 많아서일까. 정권과 자신의 정체성을 동일시하고 있다고 봐도 크게 무리는 아닐 정도다. 그도 아니라면, 현 정권, 특히 경제부처를 비판하고 싶어도 비판할 수 없을 만큼 내부 사정이 취약하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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