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무장세력 IS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 김 군이 “훈련을 받고 있다”는 짤막한 내용의 보도가 24일 하루 종일 핫이슈였다. 국회 정보위원회에 국가정보원이 확인해줬다는 게 출처였다. 25일 현재(오후5시) 관련 기사만 약 600여개가 검색될 정도로 여전히 뜨겁다.

해당 기사는 24일 17:36분 <연합뉴스> 속보로부터 시작됐다. 그 후 YTN, 국민일보, SBS, JTBC, 세계일보, 경향신문, 뉴시스, 한국경제, MBN, 중앙일보, 연합뉴스TV, 매일경제, 조선일보, 한겨레 등 거의 모든 언론이 줄을 이어 ‘속보’, ‘긴급’의 타이틀을 붙여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 2월 24일자 KBS '뉴스9' 보도 캡처
연합뉴스는 이후 기사인 <IS 가담 확인된 김군, 어디서 어떤 훈련 받을까>를 통해 “IS는 외국인이 가입하면 시리아 북부 훈련소에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김 군은 이미 훈련을 마치고 전선이나 군사시설 등으로 배치됐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IS는 시리아 북부 알레포에 청소년을 훈련시키는 ‘샤다드 알투니시 캠프’를 운영하고 있어 18세인 김 군은 이곳으로 보내졌을 수도 있다. 아울러 김 군이 시리아가 아닌 이라크의 훈련소에 갔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전했다. 묘사는 구체적이지만, 출처는 불분명하다. 온갖 추측 뿐이다. 머니투데이는 이 기사에 이어 김 군의 어머니의 문자를 받아 <IS 가담 김모군 어머니 “아이가 건강하길 바랄뿐”> 기사를 내보냈다.

여야 정보위원들, “김 군 훈련중 보도는 오보”

그런데 국민일보 보도는 한참 달랐다. 국민일보가 24일 오후 9시 경 출고한 <이철우 “김군 ‘IS훈련’ 보도는 오보…논산훈련소 가면 다 훈련받을 거란 얘기”> 기사(▷링크)는 국회 정보위 여당 간사인 이철우 의원의 말을 빌어 “IS에 가입하면 외국인들은 무조건 훈련을 받아야 한다. 논산훈련소에 가면 다 훈련받으러 가는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김 군이 IS에서 훈련중이라는 사실은 아직 확인된 게 아니라고 보도했다. 그 전까지 이어진 어뷰징 기사들이 전부 ‘오보’라는 얘기였다. 비슷한 시각 정보위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 역시 자신의 트위터(@jwp615)를 통해 “국정원 보고에서 ‘IS에 가입했다는 김 군은 그 후 어떠한 소식도 없다’고 했지 ‘훈련을 받고 있다’는 내용은 없었다”며 “정보위 회의 결과는 여야 간사 간 합의 하에 발표하는 바 어떻게 이런 민감한 사항이 발표됐을까”라고 보도 출처에 의문을 제기했다.

▲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 트위터
그러나 야당 의원들의 확인에도 언론의 보도에는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았다. 기존 기사가 정정 되기는커녕 관련 보도는 오히려 더 확대재생산됐다. “한국인으로서 최초”라는 문구가 달렸고 ‘충격’, ‘경악’, ‘눈길’ 등의 낚시성 기사들이 줄을 이었다. 김 군의 훈련 장소와 그 내용을 추정하는데 초점이 맞춰졌고, 김 군의 어머니 등 가족들의 심경 또한 소환됐다. 1보 성격이라고 볼 수 있던 연합뉴스와 머니투데이의 기사를 교묘하게 짜깁기한 보도들이었다. 이후에도 무수한 언론들이 이미 알려진 김 군의 SNS 글과 가담 경로 등을 다시 반복적으로 기사화했다. 대개의 어뷰징 기사들이 그러하듯 제목만 달리하면서 같은 내용이 끊임없이 반복됐다.

아래는 자칭 1등신문 <조선일보>와 그 계열사들이 쏟아낸 김군의 IS 가담 및 훈령중 보도들을 모은 것이다. 24일 오후 5시경부터 하루 동안 총 37개의 기사를 써댔는데, 그 중에는 제목만 바꾼 것도 있고, 제목은 그대로해서 시간대만 달리해 송고된 것도 다수이다. 어뷰징 기사의 거의 모든 것이 담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조선일보, <국정원 “터키서 실종됐던 김군, IS에서 훈련받고 있다”>
조선일보, <IS 김군, 지금 훈련 받고 있다…추정되는 장소는 바로>
조선일보, <[속보] 터키 실종 김군, IS서 훈련 받고 있다>
스포츠조선, <국정원 “터키 잠적 김군, 현재 IS서 훈련 중…납치 아냐” 충격>
스포츠조선, <터키 잠적 김군 IS 훈련 중 ‘충격’…결국 서방에 총칼 겨누나>
스포츠조선, <터키 잠적 김군 IS 훈련 확인…“새로운 삶 찾고 싶다”더니 결국>
스포츠조선, <터키 잠적 김군 IS 훈련 충격…김군 어머니 “아이가 건강하길 바랄 뿐”>
스포츠조선, <터키 잠적 김군 IS 훈련…김군 어머니 “건강히 안전하게 돌아오길”>
스포츠조선, <터키 잠적 김군 결국 IS 훈련…한국인으로는 첫 사례>
스포츠조선, <터키 잠적 김군 IS 훈련…“나라와 가족 떠나 새 삶 살겠다” 마지막 말 남기고>
스포츠조선, <국정원 “터키 잠적 김군, IS 훈련지에 있다” 장소는?>
스포츠조선, <국정원 “터키 잠적 김군 IS 종합 훈련지에 있다” 장소 미확인>
TV조선 [뉴스 7], <“국정원, 김군 IS 가담 보도 사실. 어딘가에 살아있어”>
조선일보, <터키 잠적 김군 IS 훈련, “돌려보내 달라” 요청도 거절… 이제 어떻게 되나?>
스포츠조선, <터키 잠적 김군 IS 훈련 중…한국인 첫 사례 ‘충격’>
TV조선 [뉴스 9], <“국정원, 김군 IS 가담 보도 사실. 어딘가에 살아있어”>
스포츠조선, <터키 잠적 김군 IS 훈련, 한국인으로는 첫 사례…생사 여부는?>
조선일보, <터키 잠적 김군, IS 훈련 확인 ‘충격’… 테러도 가담하나?>
조선일보, <터키 잠적 김군 IS 훈련, 국정원 공식 확인...“송환 요청도 거절당해”>
조선일보, <터키 잠적 김군 IS 훈련 중, 국정원 IS에 김군 보내달라 했지만…>
조선일보, <터키 잠적 김군 IS 훈련, 실제 가담 확인…'한국인 가입 첫 사례'>
조선일보, <터키 잠적 김군, IS 훈련 확인… “부모에게 돌려달라” 요청도 거절>
스포츠조선, <터키 잠적 김군 IS 훈련 중 ‘충격’…한국인으로 첫 사례>
조선일보, <터키 잠적 김군 IS 훈련, 설마 태권도 사범?>
조선일보, <터키서 잠적한 김군, IS 훈련 중…. 한국인 사례 “이번이 처음이다”>
조선일보, <국가정보원 “터키 잠적 김군, IS 훈련 가담 확인”>
조선일보, <IS로 간 김군 母 “안전하게 돌아오길…심려 끼쳐 죄송”>
조선일보, <터키 잠적 김군 IS 훈련, 국정원 “김군, IS 합류 확인돼”…‘충격’>
조선일보, <국정원 “터키 잠적 김군 IS 훈련받고 있어”.. 네티즌들 “대단한 놈일세”>
조선일보, <터키서 잠적한 김군, “실종․납치 아닌 IS에 가담… 훈련 받고 있어”>
스포츠조선, <터키 잠적 김군 IS 훈련 ‘충격’…母 “숨 못 쉴 정도로 답답하고 힘들어”>
조선일보, <터키 잠적한 김군, IS 훈련 가담… “부모에게 돌려달라” 요청도 거절>
조선일보, <터키 잠적 김군, IS 훈련 포착… “부모에게 돌려주세요” 요청도 ‘거절’>
스포츠조선, <터키 잠적 김군 IS 훈련 ‘충격’…母 “숨 못 쉴 정도로 힘들어”>
조선일보, <‘터키 잠적’ 김군 IS에서 훈련?…“부모에게 돌려주세요” 요청해봤지만>
조선일보, <터키 잠적 김군, IS 훈련 가담 확인… 母 “건강히 안전하게 돌아오길”>
조선일보, <터키 잠적 김군 IS 훈련, 국정원이 포착 “부모에 송환을 요청 했지만...”>

다른 매체들 역시 조선일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동일한 내용을 두고 속보 경쟁을 벌이다 보니, 무리한 기사들도 많았다. 중앙일보와 에너지경제는 각각 ‘또 다른 한국인의 IS 가입 가능성’과 ‘김 군의 실전배치 가능성’을 제기했는데 역시 근거는 미약하다. 서울신문과 아시아투데이는 김 군이 각각 폭발물 교육과 총기사용법, 아랍어 교육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추정일 뿐이다. 동아일보는 한 발 더 나아가 훈련중 낙오될 가능성과 함께 인질이 될 수 있다고까지 썼다. 또, 데일리안은 이슬람으로 개종했을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모두 소설에 가까운 기사들이다.

서울신문, <터키 잠적 김군 IS 훈련 “도대체 어디있나 봤더니…” 폭발물 교육 추정>
중앙일보, <IS 복면요원 태권도 훈련 … 또 다른 한국인 가입 가능성>
에너지경제, <‘터키 잠적 한 달’ 김군 IS 훈련 중… 실전 배치 됐을 가능성도>
서울신문, <시리아 북부 훈련소에서 총기사용법 교육받는 듯>
서울경제, <터키 잠적 김군 IS 훈련, 태권도 무술 시범대원 정체는? 한국산 차량 ‘눈길’>
서울신문, <터키 잠적 김군 IS 훈련 “조직원, 총기·폭발물 사용법 등 1개월 이상 교육”>
아시아투데이, <터키 잠적 김군 IS 훈련 장소, 시리아? “총기 사용법과 아랍어 배운다”>
헤럴드경제, <터키 잠적 김군 IS 훈련 영상 “정확한 태권도 품새…16동작 선보여”>
동아일보, <터키 잠적 김 군, 훈련 성공 시 IS 요원, 낙오 시 ‘인질’>
파이낸셜뉴스, <터키 잠적 김군, IS 훈련 낙오시 인질 가능성도>
한국경제TV, <터키 잠적 김군 IS 훈련 추정 동영상 ‘충격’··한국인 태권도 교관까지?>
데일리안, <김영미 PD “IS 참여 김군, 이미 이슬람으로 개종했을 것”>

▲ 2월 24일 JTBC '뉴스룸' 캡처
이 같은 보도는 방송뉴스까지 이어졌다. KBS는 단신으로 처리했지만 MBC <뉴스데스크>와 SBS <8뉴스>는 별도의 리포트를 배치했다. 손석희 JTBC <뉴스룸> 또한 <“실종 김군, IS서 훈련 중”>(▷링크) 리포트를 배치하고 “IS가 며칠 전 공개한 훈련 영상 속에 정확한 태권도 품새를 하는 대원이 끼어 있어 눈길을 끈다”며 관련 동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사실 확인 안 된 기사들 확대재생산…확인할 필요가 있기는 했나

약 600여개의 관련 기사들이 쏟아지는 동안 ‘오보’의 가능성을 제기한 기사는 손에 꼽힐 정도였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국회 정보위 여야 간사 모두 국정원의 발언(김군은 훈련중)은 없었다고 확인해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보위 자체가 비공개로 진행되고 있어, 회의 결과 또한 여야가 합의한 수준 이상의 것은 공개되지 않는다. 과연 그 많은 기사들이 상호 복제된 것이 아니라면, 누구를 출처로 하는 것인지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다수의 언론은 김 군이 IS에서 훈련중이라는 사실을 새정치민주연합 신경민 의원(정보위 간사)의 발언인냥 보도했다. 그러나 신 의원은 <미디어스>와의 전화연결에서 “(훈련중이라는 보도는)브리핑한 내용이 아니다”라면서 “IS는 당연히 현안이기 때문에 관련 내용이 오간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 이야기가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이야기하기 힘들다.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상도의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여야 합의된 내용 이상의 발언을 하는 순간 정보위의 존립 근거를 위협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경민 의원은 또한 “(만약 정보위 의원 중 누군가가 그 같은 내용을 발설했다면)언론의 게임이 빠졌거나 상도의를 어긴 것”이라고 덧붙였다.

▲ 2월 24일 SBS '8뉴스'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실 관계자도 “야당 의원들이 던진 얘기를 (언론들이)크게 쓴 것 같다. (야당 의원들의 발언은)군대에 가면 훈련소를 가듯 김 군도 IS에 가감했다면 훈련을 받지 않았겠느냐는 뜻이 아니었나 싶다”며 “정보위에서 그 같은 발언이 나왔는지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국정원 대변인실 또한 “정보위 자체가 비공개라는 점에서 그 같은 발언이 나왔는지 자체를 이야기해줄 수 없다”고 답했다. 또 다른정보위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의원실 한 관계자 역시 “김 군이 IS에서 훈련중이라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국정원 원장이 정보위에서 김 군이 훈련중이라는 언급은 하지 않았다고 확인했다”고 말했다.

과연, 600여 개의 기사가 쏟아지는 동안 언론은 어떤 근거로 김군이 IS 가담해 훈련을 받고 있다고 확정적으로 판단했던 것일까. 국회 정보위 그 누구도, 국정원도 그걸 확인해 줄 수 없단 대답만 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지에 도저히 밝힐 수 없는 '빨대'라도 꽂은 것일까. 김 군이 IS에 가담했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 어뷰징 기사들은 잘못됐다. 사실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채, 최대한 선정적으로 사건을 빨리 전달하려고만 하는 집단을 언론이라고 불러도 좋은 것일까. 언론은 그저 조회수를 낚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600여 개의 기사가 쏟아졌지만, 김 군이 무얼하고 있는지 여전히 궁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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